"한국서 사업할 이유가 없다"…노란봉투법 후폭풍, 허탈한 재계
"노동문제가 기업 경영 전반에 악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결국 한국에서 사업할 이유가 없어지는 거죠."(경제 6단체 관계자)
"중견·중소기업도 마찬가지로 큰일입니다. 결국 한국의 기업, 나아가 국가 경쟁력까지 악화될겁니다."(중견기업계 관계자)
재계가 도입 논의 초기 단계부터 강력한 거부의사를 밝힌 노란봉투법(노동조합법 2·3조 개정안)이 지난 9일 국회 본회의 문턱을 넘었다. 경제단체들은 노란봉투법 통과 직후 이를 강하게 비판했다. 특히 기업 경영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제도가 정치적 싸움의 도구로 악용됐다는 데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재계는 노란봉투법 시행을 막기 위해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재의요구권)을 행사해 줄 것을 요청했다.
노란봉투법을 담당했던 재계 관계자들은 허탈한 속내를 감추지 못했다. 노란봉투법은 지난해 2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환노위)에 처음 상정되고 1년 8개월 넘는 논의과정을 거쳤다. 2013년 '쌍용차 사태'로 47억원의 손해배상 청구를 받은 노동자들을 돕자는 취지로 처음 노란봉투법이 발의된 2015년 부터 따지면 논의 기간은 8년이 넘는다.
올해 2월 경제 6단체가 공식적으로 국회를 찾아 노란봉투법 통과 저지를 요청했다. 담당 실무진들은 '상시대기조' 처럼 국회 의원 보좌진들의 자료요구에 응했다고 한다. 국회나 정부 관계자들과 만남에서 노란봉투법은 꼭 주요 주제로 다뤄졌지만 정쟁의 도구로만 쓰였다. 재계 관계자는 "1년 넘게 수십번 국회를 찾았다. 질질 끌다가 결국 너무 안좋게 끝이 났다"고 말했다.
기업들이 가장 우려하는 건 노란봉투법의 '모호한 기준'이다. 노란봉투법은 △사용자 범위확대 △노동쟁의 개념 확대 △손해배상 청구 제한 등을 골자로 한다. 이에 따라 사용자 범위를 확대하고 노동조합(노조)의 불법 쟁의행위에 대한 손해배상이 제한되는데 법에 정해진 기준이 없어 사법부의 판단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노란봉투법의 대상·범위를 법으로 정하는 과정에서 혼란이 불가피 하다는 설명이다. 사용자와 노동쟁의 개념이 확대되면 경영주의 고유 권한인 법인 설립이나 설비 투자를 비롯해 인수합병(M&A) 등도 노조의 동의를 받야아 할 수도 있다. 손해배상 청구도 제한돼 불법 파업을 견제 할 수 있는 방법마저 사라지게 된다.
대기업 뿐만 아니라 중견·중소기업도 노란봉투법이 시행되면 타격이 불가피 하다. 협력업체(하청) 근로자들이 원청에 단체 교섭을 요구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대기업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결국 중견·중소기업이 더 큰 피해를 입게 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서정헌 중소기업중앙회 인력정책실장은 "대기업과의 공생관계가 무너지고, 기업 경쟁력 자체가 악화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나아가 노란봉투법으로 국가 경쟁력 자체가 악화될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온다. 노동 문제 하나에 그치지 않고, 기업 경영 자체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노동 문제를 겪는 주요 기업들이 불확실성을 줄이기 위해 해외로 이전하거나, 국내 생산량·인력을 최소화 할 수 있다. 중견기업계 관계자는 "불확실성과 비용을 줄이는 방안을 찾게 될 텐데, 국내 일자리와 사업 비중을 줄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대통령의 거부권을 요청하는 것 이외에 별다른 대책이 없어 무력감도 느낀다는게 재계 반응이다 . 여당에서 노란봉투법 저지를 위해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을 통한 합법적 의사진행 방해)을 하겠다고 밝혔지만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상정되면서 포기했다. 한 경제단체 관계자는 "기업들을 대변하는 단체로서,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데 실망감이 크다"고 말했다.
경제 6단체는 오는 13일 오전 9시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대통령의 거부권을 요청하는 긴급 기자회견을 가질 예정이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국회에 돌아온 법안이 다시 가결되려면 재적의원 3분의 2(200명) 이상 동의가 필요해 사실상 폐기 수순을 밝을 것으로 보인다. 반대로 노동계는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시 대규모 집회 등 강도 높은 투쟁을 예고하고 있다.
기업 중심의 '민간주도 성장'을 주요 정책과제로 추진 중인 윤석열 정부는 노란봉투법 시행에 대해 줄곳 부정적인 견해를 밝히고 있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노란봉투법의 본회의 통과 이후 "비통한 심정을 억누르기가 어렵다. 노동조합법의 목적과 정신에 명백히 위배된다"며 대통령 거부권 건의를 시사했다.
이재윤 기자 mto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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