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위는 KIA 최고 레벨… 히든카드 꼬리표 뗀다, 유승철과 KIA의 설렘이 만나다
[스포티비뉴스=오키나와(일본), 김태우 기자] 정재훈 KIA 신임 투수 코치는 한 투수의 불펜 피칭을 유심히 살피더니 몇 마디를 툭 던졌다. 이것도 모자라 우타석, 좌타석에 번갈아가며 서며 가상의 타자 임무도 자청했다. 선수의 불펜 피칭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방법이기도 하지만, 어쩌면 타자의 시선에서 이 투수의 공을 확인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정 코치가 주목한 선수는 KIA 우완 유승철(25)이었다. 정 코치는 유승철의 공을 지켜본 소감에 대해 “불펜 피칭에서의 모습이 실제 마운드에 섰을 때로 이어져야 한다”고 전제하면서 “구위가 굉장히 좋다”고 미소와 만족감을 드러냈다. 1일부터 진행 중인 오키나와 마무리캠프에서 구단의 시선을 한몸에 받는 이유를 증명하고 있다. 김종국 KIA 감독도 “구위 하나는 예전부터 좋았다”고 엄지를 치켜세웠다.
사실 유승철이 이런 평가를 받은 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효천고를 졸업하고 2017년 1차 지명을 받은 유승철은 고교 시절부터 패스트볼 구위는 일품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같은 구속이라도 차고 들어오는 힘이 다르다는 호평이 쏟아졌다. 지난 2월 오키나와 스프링캠프 불펜 피칭 당시에도 “현재 여기에 있는 선수 중 공이 가장 좋다”는 칭찬이 이어졌을 정도였다.
트래킹 시스템이 발전한 지금, 이제 우리는 왜 유승철이 그런 평가를 받는지 알고 있다. 구위에 연관이 있는 구속은 물론, 회전 수와 수직 무브먼트까지 모두 좋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는 선천적으로 타고 난 부분이 있는 셈이다. 회전 수와 수직 무브먼트가 동시에 좋은 선수를 찾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은데 유승철은 이를 다 가지고 있다. 팀 내 최고이자 리그 최정상급 수준인 김기훈 이의리 전상현과 비교해도 뒤처지지 않는 수준이다. 팀에서 괜히 기대를 거는 게 아니다.
그러나 이를 1군 성적으로 이어 가지 못하는 게 구단의 아쉬움이다. 프로 데뷔 후 1군 64경기에 나갔으나 평균자책점은 5.55로 특별하지 않다. 올해도 스프링캠프 당시 큰 기대를 모았으나 정작 1군에서는 1경기 뛰는 데 그쳤다. 2군 성적이 좋지 않으니 아무리 좋은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1군 우선 순위에서 밀렸다. 결국 기회를 얻기 위해서는 실적이 필요하다. 유승철도 이를 잘 알고 있다.
큰 기대를 받으며 시작한 시즌이지만, 스스로의 기대에 못 미쳤다. 사실 스스로 불안감이 있었다고 털어놓는 유승철이다. 유승철은 “그때도 공은 좋다고 생각했는데 내 스스로 모르겠는 거다. 왜 좋은지, 내가 이 공을 어떻게 던지는지도 몰랐다. 내 것이 없었다. 계속 그 생각만 하고 타자를 생각하지 않았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그러다 부상이 찾아왔다. 연습을 하다 광배근이 찢어져 공백이 길어졌다.
자신을 모르는 상황에서 부상까지 겹쳤으니 시간이 허송세월 지나갔다. 다행히 주위의 도움으로 그 공백에서 빨리 빠져 나왔다고 말하는 유승철이다. 유승철은 “부상 복귀 이후 내 것이 무엇인지 찾아가는 과정이 있었고 그때 이상화 코치님께서 많이 도와주셨다. 계속 연습을 했는데 이제 정재훈 코치님까지 오셨다. 정재훈 코치님께서 알려주신 노하우와 지금까지 했던 것이 딱 연결돼서 이게 무엇인지를 조금씩 알아가는 것 같다”고 근황을 설명했다.
1년의 시간 동안 남긴 게 없는 것 같지만 유승철은 그 시간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다. 누가 가르쳐주는 것보다는 스스로 자신의 것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공부를 많이 했다고 말했다. 향후 더 큰 선수가 되기 위한 1년이었다고 위안을 삼는다. 유승철은 “당장 내일이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올 시즌이 가장 많이 성장한 시기였던 것 같다. 던지는 쪽으로나 야구선수로서의 마인드 모두 그렇다”면서 “실망도 많이 했지만 실패를 맛보다보니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고, 옆에서 누가 도와주기도 하면서 귀가 열렸다”고 돌아봤다.
구위는 여전히 좋다. 데이터로 나온다. 다만 유승철은 지금까지 그 데이터에 너무 집착했다고 반성한다. 투수는 트래킹 데이터와 싸우는 게 아니다. 상대는 타자다. 그것을 느낀 1년이었다. 유승철은 “공이 빠른 게 문제가 아니라 타자랑 싸우는 법을 알아야 한다. 올해 그것을 배웠다”면서 “타자의 시선을 분산시킬 줄 알아야 하는데 너무 데이터적 장점만 믿고 직구만 던지려고 했던 것 같다. '나는 직구가 좋으니까 무조건 직구를 살려야 하고 공이 떠올라야 한다'는 몰입만 하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성숙하지 못했다”고 달라진 모습을 예고했다.
실패가 많았던 선수인 만큼 진단도 비교적 확실하게 나와 있다. 유승철은 “탄착군이 높았다”고 단언했다. 패스트볼을 낮게 던지는 연습을 많이 한다. 낮게 던질 때 변화구도 말을 잘 듣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금까지의 과정은 스스로도 만족한다. 슬라이더는 물론, 패스트볼과 반대 스핀이 걸리는 커브를 시선 분산용으로 더 활용할 생각이다. 정재훈 코치가 포크볼을 잘 던졌던 만큼 좌타자 상대용으로 포크볼을 배워보고 싶다고도 했다. 뭔가 자신을 더 정확하게 알고, 보완점을 찾은 유승철의 얼굴에는 설렘이 가득했다.
유승철은 “미래가 희망적으로 보이느냐”는 물음에 “지금은 굉장히 긍정적이다”고 웃었다. “결과가 좋든 나쁘든 실전에서 이 감을 실험해보고 싶은데 경기를 하지 못한다면 아쉬울 것 같다. 너무 해보고 싶은 게 많다”고 입맛을 다실 정도다. 이 설렘을 유지하면서 비시즌 동안 운동을 열심히 하고, 내년에는 원 없이 던져보겠다는 각오다. 유승철의 설렘만큼이나 KIA의 설렘도 커지고 있다. 히든카드 꼬리표는 7년이면 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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