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만화방 아닙니다"…빨래 널고 이불 덮고 사장님표 라면까지[르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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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 광장을 지나 숙대입구역 방향으로 걷다 보면 'ㅇ만화'라고 쓰인 허름한 간판 하나가 눈에 띈다.
서울역 인근에 만화방이 들어선 건 1988년 서울올림픽부터다.
서울역 만화방은 젊은 층이 주로 드나드는 최신식 만화방과 성격이 다르다.
주로 고된 일에 지쳐 잠시 몸을 누이고 싶어 하는 일용직 노동자들이 서울역 만화방을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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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만 안 나눴지 식구 같아요. 만화방이 아니라 숙소죠."(ㅇ만화 사장)
서울역 광장을 지나 숙대입구역 방향으로 걷다 보면 'ㅇ만화'라고 쓰인 허름한 간판 하나가 눈에 띈다. 이 만화방 입구로 들어서자 내부엔 모기향 냄새가 가득했다. 벽면은 여느 만화방처럼 만화책이 빼곡했지만 입구 앞 소파 5개 위엔 만화책 아닌 이불이 펼쳐져 있었다.
서울역 인근에 만화방이 들어선 건 1988년 서울올림픽부터다. 천국만화, 경일만화, 제일만화 등 1980~90년대에 이 지역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던 만화방은 이제 2곳만 남았다.
서울역 만화방은 젊은 층이 주로 드나드는 최신식 만화방과 성격이 다르다. 주로 고된 일에 지쳐 잠시 몸을 누이고 싶어 하는 일용직 노동자들이 서울역 만화방을 찾는다. 일을 나가기 전 들러 짐을 맡기기도 한다. 실제 서울역이 있는 용산구 동자동에는 약 10개 인력 사무소가 모여있다.
지난 9일 찾은 ㅇ만화방. 사장 A씨는 휴대폰으로 바둑을 두고 있었다. 그는 "손님은 일용직 노동자가 대부분"이라며 "매일 여기서 씻거나 밥을 먹고 숙소처럼 쓴다"고 설명했다.
이 만화방 이용료 하루 1만원. 1~2시간 자러 온 노동자에겐 돈을 받지 않는다. 새벽부터 인력 사무소를 다녀온 노동자들은 비싼 숙박비를 피해 ㅇ만화방을 찾는다고 한다. 사장이 무료로 라면이나 쌀밥을 해줄 때도 있다. 이렇게 이 만화방을 찾는 사람은 하루에 6명 남짓이다.
만화방은 노동자들에게 사랑방 같은 역할을 하기도 한다. 새벽 일을 나가기 전 노동자들끼리 안면을 트거나 자신들이 아는 정보를 공유한다. A씨는 "어려운 사람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돕고 종종 이상한 업체에서 돈을 꾸려는 손님을 막기도 한다"며 "분란을 막기 위해 노숙자는 받지 않는다"고 말했다.
과거 11년 동안 고시원 생활을 했다는 사장 A씨는 계속해서 만화방을 노동자들을 위한 휴식처로 남길 요량이다. 그는 "손님들 모두 사정이 있겠지만 자세히 묻지 않는다"며 "내 목표는 돈을 버는 게 아니라 죽을 때까지 여기 사람들에게 휴식처를 제공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ㅇ만화방에서 5분 거리에 있는 경일만화 풍경도 비슷했다. 입구 앞 벽에는 빛바랜 만화 포스터가 덕지덕지 붙어있고 그 아래론 만화방과 어울리지 않는 빨래 옷걸이가 걸려 있었다. 화장실 옆 싱크대에는 스테인리스로 된 식기가 쌓여있었다.
만화방 입구에서 담배를 피우던 60대 남성 B씨는 "일하다가 쉬러 왔다"고 말했다. 그는 "3000원 정도면 이용할 수 있다"고 한 뒤 다시 일터로 발걸음을 옮겼다.
만화방 손님들은 각자만의 방식으로 휴식을 취했다. 한 60대 남성은 줄 이어폰이 연결된 휴대폰을 보고 있었고 또 다른 40대 남성은 맨 뒷자리에 앉아 꾸벅꾸벅 졸았다. 맨 앞자리에서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고 자던 손님은 "아는 사람끼리 쉬는 공간"이라고 말하곤 다시 잠을 청했다.
일부 손님들은 타인의 온기를 느끼려 만화방을 찾는다고 했다. 손님 C씨는 "나이 먹으면 외로워지지 않나"며 "삶을 포기한 사람들은 여기 없고 예전부터 오던 사람이 모여 정을 나누는 공간이 됐다"고 말했다. 이어 "이제 휴대폰으로 만화를 보는 시대이니 어쩔 수 없지만 우리 모두 아쉬운 마음을 갖고 있다"며 "추억이 담긴 공간이 없어지지 않으면 좋겠다"고 했다.
정진솔 기자 pinetree@mt.co.kr 김지성 기자 sorry@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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