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수의 인터스텔라] 여성자살자 64.5%증가, 20대 마음 무너진다
정신질환자 딸, 의사 엄마가 커밍아웃한 이유
10대 말에 뇌질환 폭발… 과잉 정보, 경쟁적 친구
아이가 아픈 것… 죄도 벌도 아닌 그냥 인생
부모 탓 하면 위험… 재정적 심리적 선 그어야
아픈 청년 자립 위한 ‘유연한 일자리’ 많아지길
‘아이는 천천히 팔소매를 걷어 보였다. 하얀 팔에는 헤아릴 수도 없이 많은 가로로 그어진 칼자국들이 있었다. 사회성이 없어 힘들어하는 큰애에 비해 둘째는 모든 사람의 사랑을 받았다. 그런 둘째가 무너지고 있었다.’-김현아 에세이 ‘딸이 조용히 무너져 있었다’ 중에서.
정신질환자에 대한 따스한 시선을 담은 넷플릭스 드라마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가 조용한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에 햇살이 비춰지는 가운데 ‘딸이 조용히 무너져 있었다’를 쓴 한림대학교성심병원 류마티스 내과 교수 김현아를 만났다.
걸어들어오는 발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정도로, 사뿐사뿐 기척 없이 고요한 내향인이었다. 가을볕 아래 멈춰 선 그 앞에서, 사진가가 찰칵찰칵 셔터를 누르자, 어깨가 소라게처럼 움츠러들었다. 나서는 것을 싫어하고 열변을 토하는 것 자체를 어색해하는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어떻게 이토록 침착하고 치밀하게 뇌 질환자 딸과의 동행을 글로 남길 수 있었을까.
‘내 새끼 지상주의’가 만연하는 한국 사회에서 성공한 아이의 엄마가 아니라 아픈 아이(양극성 인격장애)의 엄마로 커밍아웃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우리나라 통계청이 발표한 데이터를 보면 2015년 이후 남성 자살자가 19.7% 증가한 데 비해 여성 자살자는 64.5% 증가했다. 우울증 등의 기분장애는 2020년 기준으로 여성이 남성의 두 배 수준이었고 특히 20대가 가장 많았다. 한 사람이 아프면 개인 문제지만, 여러 사람이 아프면 사회 문제라고 했다.
‘딸이 조용히 무너져 있었다’에는 정신질환자 가족으로 사는 구체적인 애환과 뇌 질환의 스펙트럼을 파고드는 사회 의사로서의 확대경이 교차하고 있다.
김현아의 둘째 딸 안나는 7년 동안 정신 병동에 16번 입원했다. 카카오톡 메시지 확인 표시가 바뀌지 않아도 내 아이가 이 세상 사람이 아닐 수 있다는 두려움을 안고 사는 삶. 그건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을 안고 사는 것과 같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통에 달관한 초연한 얼굴로, ‘공포와 취약함이 삶 그 자체’라고 얘기하는 의사 엄마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보자.
-지금, 안나의 상태는 어떻습니까?
“요맘때는 늘 입원했는데, 지금은 잠잠해요. 자기 집에서 음악 작업도 하고 ‘알바’도 틈틈이 해요. 스물여덟인데, 여전히 아기 같죠. 병원비는 다 부모가 내는데도(웃음)... 아이가 자존심 때문에 증세가 어떤 상황인지 자세히 얘기하지 않아서, 일상이 늘 조마조마해요.”
들릴 듯 말듯 고요한 목소리로 김현아가 웃으며 말했다. 큰딸은 적응 장애, 둘째 딸은 자살 충동과 자해로 7년째 보호 병동을 오가는 양극성 장애 환자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찌든 기색이 없는 해사한 얼굴이었다.
-양극성 장애는 어떤 병인가요?
“양극성 장애는 조증과 울증이 주기적으로 나타나는 병이에요. 우울증은 본인이 가장 힘들고 조울증은 옆 사람이 함께 힘듭니다. 20대 초반에 가장 흔하게 발병하고 나이를 먹으면서 좋아지죠.
유사 증상 환자까지 포함하면 유병률은 6.4% 정도로 봅니다. 참고로 천식의 유병률이 4%, 위궤양 3%, 우울증 유병률은 30%예요. 통계로 보면 양극성 환자는 천식보다 흔한 거죠. ADHD 증상과도 중복되는 지점도 있고요.
이 병을 가진 환자들이 대부분 문제를 주변 사람에게 투사하면서 환자와 부모가 원수지간이 되는 경우가 흔해요. 다행히 저희 아이는 공격성도 없고 부모 탓도 안 해서 예후가 좋은 편입니다. 주변을 보면 가족에게 폭력을 휘둘러 경찰을 부르는 경우도 많습니다.”
안타깝게도 양극성 장애 환자는 2000년대 들어서 성인은 두 배. 젊은 층은 40배 가까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치료는 요원한가요?
“저희 가정은 7년이 됐습니다. 아직도 갈 길이 멀어요. 고혈압 고지혈증 약처럼 약으로도 잡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부작용도 만만치 않아요. 우리 애는 약 먹으면 3일을 못 일어날 때도 있어요. 뇌라는 복잡계를 이해할 수 없으니 어려워요. 힘들어도 가족이 정서적으로 지지할 수밖에 없습니다.”
-견디기 쉽지 않았을 텐데, 겉으로는 저보다 더 평온해 보이십니다.
“사회적으로 보면 남편과 저 같은 안정된 사람들은 냇물 따라 흘러가는 인생을 살아요(김현아는 류마티스, 남편 정청기 교수는 신경외과 의사다). 그러다 50대에 이르러 망망대해를 만났죠. 저희 집안에 공개할 수 없는 법적 송사가 16개가 걸렸고 지금은 그중 14개를 해결했어요.
큰 애는 성장기 내내 내내 괴롭힘을 당한 적응 장애였지만, 둘째가 뒤늦게 자해와 자살 시도를 반복하는 양극성 장애가 발병해서 이중고를 겪었어요. 그럴 땐 가족이 뭔가 싶지요. 하하. 이 소용돌이에서 내 탓 네 탓 했으면 깨졌을 텐데, 다행히 저희는 함께 잘 헤쳐가고 있습니다. 저나 남편이나 둘 다 매우 낙천적인 성격이거든요.”
-성경의 창세기에도 선악과를 따먹은 후 아담은 이브 탓부터 합니다. 남 탓의 죄의 뿌리가 깊은 데, 거기 빠지지 않은 게 신기하군요.
“남 탓이 나쁜 건 자기 파괴적이기 때문이죠. 몹쓸 부모를 만나도 성인이 되면 선을 긋고 자기 기준을 세워야 합니다. 뇌 회로의 문제겠지만, 남 탓 특히 가족 탓을 하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어요. 남 탓은 미성숙의 시그널입니다.”
-하지만 병원의 카운슬러들은 성장기 겪은 트라우마를 세밀하게 들여다보며 부모와의 관계를 체크하지 않습니까?
“글쎄요. 양극성 장애도 열 명, 백 명 다 증상이 달라요. 진단도 오락가락하지요. 양육 환경 탓을 하면 엄마들이 제일 불쌍해져요. 저희 아이 주변에 시설에 간 아이, 히키코모리가 된 아이, 뛰어내린 아이가 다 있어요. 예후가 나쁠수록 1부터 10까지 부모 탓을 합니다.
어릴 때 종아리 맞은 것부터, 말로 받은 상처… 하나하나 애매한 영역까지 들춰내면 전부 부모 잘못이 돼요. 하지만 부모들은 의식도 못 한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오은영 선생의 ‘금쪽같은 내 새끼’ 프로그램이 기여한 부분이 ‘내가 양육 받은 방식으로 아이들 키우면 안 된다’거든요. 그렇다고 엄마에게 과하게 책임을 물으면, 엄마가 또 깊은 우울로 갑니다. "
-가장 큰 발병 이유는 뭔가요?
“유전적인 영향이 가장 커요. 자살, 알코올… 섬세하게 들여다보면 가족 백그라운드가 있습니다. 면역질환보다 정신질환이 유전 요인이 더 많아요. 넓게 퍼져 있다가 강박, 편집증 성향이 한데 모이는 거죠. 누구나 그런 성향을 미세하게 갖고 있다가 자살 등 문제 행동이 드러나면 진단이 될 뿐입니다. 요즘엔 사회적 요인도 커지고 있어요.”
-또래 집단의 영향을 많이 받는 10대나 20대는 ‘프레너미(Friend+Enemy)’가 위험하다고도 하셨어요.
“자기들끼리 경쟁이 너무 심하잖아요. 우리 애도 학업 스트레스가 심한 친구가 저희 아이를 감정의 쓰레기통으로 삼아서 풀었던 것 같아요. ‘별꼴이야’ 하며 넘기면 될 일을, 예민한 아이라 그대로 상처받고 자기 비하로 빠져들었어요. 다행히 저는 자식이 부모의 트로피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서, 아이를 계속 지지해 줬어요.”
-어찌 보면 남들은 부끄러워 감추는 집안의 약점을 공개적으로 드러내셨어요. 어떻게 용기를 내셨나요?
“통계적으로 10대 말에서 20대 초에 정신질환이 폭발합니다. 인생 초창기에 학교도 못 다니고 무너지고 타격을 받는 거죠. 아이들이 어려운 상황을 딛고 자립하려면 도움이 필요하잖아요. 치료에 중요한 건 약보다는 생활의 자립이에요. 플렉서블한 일자리와 행정적 지원이 절실하죠.
저는 장애는 낙인이 아니라 인생의 한 모습이라고 아이에게 가르쳤어요. 그래서 안나가 병세가 나아질 때까지 국가의 보조를 받을 수 있는 장애등급을 신청했는데, 매번 거절당했어요. 자살, 자해, 보호 병동 입원 기록, 진단서를 첨부해도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내가 꾀병도 아닌데…” 아이도 속상해하더라고요. 그래서 용기를 냈어요. 책을 써서 공론화하는 것에 가족 모두가 동의했습니다. 정신질환자들이 일하고 자립할 수 있는 시스템이라면, 일반 사람들에게도 숨 쉴만한 환경이 되지 않겠어요?”
개인의 어려움을 공중의 문제로 넓혀서 사회 전체가 수혜자가 되도록 만든 현명한 ‘게임 체인저’들을 나는 그동안 여럿 보았다. 대체로 그들은 장애가 있는 자식을 둔 부모였다. 조금만 삐끗해도 ‘내 새끼 지상주의’나 ‘괴물 부모’로 빠질 수 있는 세상에서, 그들 가족이 낸 용기가 고마웠다.
‘딸이 조용히 무너져 있었다’라는 책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특별히 20대 여성들의 정신질환 유발률과 자살률의 증가 속도가 소름 끼칠 정도로 가팔랐다. 우리나라 통계청이 발표한 데이터를 보면 우울증 등의 기분장애는 2020년 기준으로 여성이 남성의 두 배 수준이었고 특히 20대가 가장 많다. 2020년 상반기 20대 여성 자살사망자 수는 전년 대비 43% 늘었다.
2015년 이후 남성 자살자가 19.7% 증가한 데 비해 여성 자살자는 64.5% 증가했다. 젠더 미디어 ‘슬랩’은 ‘조용한 학살이 시작됐다’라는 영상을 통해 90년대생 여성들이 목숨을 끊고 있는 현상을 조망하기도 했다. 대체 생물학적 생존과 사회적 생존의 암울한 연관 임상은 언제까지 계속될까.
한 사람이 아프면 개인 문제지만, 여러 사람이 아프면 사회 문제다.
-20대의 여성 자살률이 이렇게 높은 이유가 뭔가요?
“자랄 땐 평등하게 컸는데 졸업해 보니 이 사회는 그들의 기대에 훨씬 못 미친 거죠. 일자리도 급여도 차이가 나고, 폭력적인 환경을 접하면서 미래에 대한 기대를 접는 겁니다. 우울이 시대의 정서처럼 번져가고 있어요. 20대 여성들은 그렇게 디스토피아적인 우울로 무너지는데 정부는 아이 낳으면 돈 주겠다고 목소리를 높이니, 번지수가 한참 틀렸어요.”
일본은 더 심각해서 2020년 여성 자살률은 전년에 비해 70%나 늘었다고 했다. ‘지뢰계’라는 신조어까지 생겼다며, 그가 옅은 숨을 내쉬었다.
-지뢰계가 뭐죠?
“밟으면 지뢰처럼 터져서 ‘지뢰계’라고 부릅니다. 딸아이가 말해줘서 알았어요. 버블 경제 붕괴 후에 부모와 연이 끊어진 아이들이 거리로 나온 거죠. 양극성 장애, 경계성 인격장애 아이들이 화장 진하게 하고 자해 상처를 드러낸 채 번화가 전철역에 모여 노숙하는 광경이 흔해요. 그들 사이에서 자해도 점점 늘고 있고요.”
-자해 얘기를 해보지요. ’죽고 싶지 않지만 자해는 하고 싶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요?
“고대 이집트에도 자해 기록이 있어요. 손목을 칼로 긋거나 하는 걸 통해서 통제감, 존재감을 느끼는 거죠. 영화 ‘세 자매’를 보면 노래 부르다 말고 마이크로 자기 머리를 치는 남자아이한테 주인공이 다가가서 “그렇게 하면 좀 시원해지죠?” 하면서 공감하는 장면이 나와요. 자해를 하면 좀 터지는 느낌이 있다고 해요.
우리 아이도 날카로운 것만 봐도 충동이 일어났어요. 커터 칼을 다 없애고 칼을 파는 문구점도 피해야 한다고 주지시켰어요. 영국 통계에 따르면 16~24세 여성 중에 다섯 명 중 한 명꼴로 자해를 경험한다고 합니다. 요즘 심각한 마약 문제도 자해의 연장선에서 심리적 고통을 피하기 위한 행동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청소년들의 자해와 자살 통계에서 발견한 의외의 뉴스는 청소년 자살률이 가장 높은 나라가 뉴질랜드라는 사실이다. 원인은 학교 폭력. 그와 견주어 보면 한국은 과도한 학업 스트레스와 학교 폭력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이 잘 버티는 상황이라고 했다.
학교 폭력, 학업 스트레스와 함께 청소년 뇌 질환의 위험 수위를 높이는 심각한 원인으로 떠오르는 것은 쏟아지는 과잉 정보다.
-정보들이 소방 호스의 물처럼 거의 온종일 쏟아져 뉴런이 너덜너덜해질 정도라고요.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더 심각하더군요. 청소년기에 쏟아지는 과잉 정보가 그렇게 위험한가요?
“네. 요즘엔 24시간 내내 영화도 2배속 4배속으로 책 한 권도 유튜브 20분으로 끝내잖아요. 뇌의 연접과 가지치기를 돕는 것 중 하나가 수면인데, 청소년기에 전두엽을 통해 과도한 정보가 유입되면 가지치기에 차질이 빚어져 정신질환이 악화할 수 있죠.
자폐의 중요 발생 기전으로 신경망의 연접과 가지치기가 잘 안되는 현상을 꼽기도 해요. 유전적 소인이 있는 예민한 아이들에게 과잉 정보는 정말 위험합니다.”
-전두엽 공사 중인 시기에 자극과 경쟁 앞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으니…
“맞아요. 제 생각에 경쟁이 유의미한 분야는 스포츠 정도예요. 제가 속한 의학 분야도 해외 학계는 서로서로 협업해서 논문을 발표하거든요. 아이들에게 자극과 경쟁 말고 다양한 삶의 길이 있다는걸, 보여줘야 합니다.”
그것 말고는 20대 정신질환자와 자살자가 늘어나는 속도를 막을 방법이 없다고 했다. 말의 내용은 격렬하고 간절했으나, 눈빛과 목소리는 고요하고 온유했다. 자식으로 인해 오래 속끓인 후 남의 자식도 내 자식처럼 애틋하게 품게 된 ‘성숙한 부모’의 얼굴이었다.
-딸의 손목에 그어진 칼자국, 자살 시도의 흔적을 처음 보았을 때, 어땠습니까?
“(미소 지으며)말로 표현하기 힘들어요. 남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와 자기 자식일 때는 완전히 다릅니다. 자해 이후 지속해서 자살 충동과 시도를 반복한 후에도 우리 애가 살아남았다는 것만으로 감사할 뿐이죠. 그거 아세요? 아픈 아이들은 괜찮은 척하는 데 선수예요. 그래서 “도와달라”고 하기 전까지는 부모가 모르는 경우가 많아요.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파급 효과처럼, 충동적으로 자살을 저지르는 경우도 많습니다. 어떤 아이는 자기가 그린 만화가 원치 않는 방식으로 오픈되는 바람에 목숨을 끊었다고 해요. 상황이 이 정도인데 ‘극단적 선택’이라는 회피적 표현으로 ‘자살 왕국’을 덮고 갈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해야 하죠?
“터놓고 얘기해야죠. 자살을 어떻게 막을지를. 충동이 심하면 도움을 요청하고 보호 병동에 입원도 해야 합니다.”
-보호 병동은 어떤 곳인가요? 철커덩 문 잠기는 소리에 가슴이 내려앉는 부모들도 많다고요.
“일상의 감옥이죠. 하지만 달리 생각하면 자유롭게 출입이 안 될 뿐. 아픈 아이들은 대체로 빨리들 적응합니다. 그 안에서도 목을 매거나 위험물을 숨길 수 있어서 입원할 때 벨트, 끈 있는 신발, 호주머니가 있는 옷은 반입이 안 됩니다. 같은 이유로 면회도 직계가족만 되고요. 그래도 제 발로 병원을 찾는 아이들은 예후가 좋아요.”
잠긴 문 안에는 괴로워하는 비슷한 영혼들이 있고, 그런 환자들을 도와주는 것을 소명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어 감사하다고. 아이가 보호 병동에 입원해도 세상은 무너지지 않았고, 또 그렇게 삶은 흘러가더라고 했다.
안나는 엄마에게 웃으며 보호 병동 이야기를 들려주곤 했다. 한밤중에 ‘국정원에서 특명을 받았다’고 벗고 돌아다니며 소란을 일으키던 한 청년은 퇴원할 때 보니 멀쩡하게 잘생긴 훈남이더라고. 다양한 스펙트럼의 환자가 있고, 증세가 나아져 일상생활로 복귀하는 이들이 서로의 거울이 되어주는 보호 병동의 나날들.
-책에서 ‘속이 다 빠져나간 헝겊 인형 같은 내 아이’라는 표현에 마음이 아렸습니다. 7년간 딸과 함께 공황, 불안, 자해, 응급실, 보호 병동을 오가며… 그래도 안도가 되던 때는 언제던가요?
“응급실에서 전화 오면 매번 가슴이 철렁하죠. 그래도 오히려 공격성이 없는 아이가 나한테 화를 내면 안심이 되더라고요. 마음은 좀 상해도 이 아이가 엄마에게 대항할 힘이 있구나 싶어서… 뇌 질환은 만성질환이에요. 환자도 가족도 무한한 인내가 필요해요. 정신질환자의 부모들은 다 몸에서 사리가 한가득 나와요.
무엇보다 응급실과 입원실을 너무 자주 드나들면 치료가 어려워요. 일상생활을 영위할 수 있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 합리적인 선에서 장애 인정을 받아야 해요. 숨어 있지 말고 사회에서 자기 몫을 감당할 수 있으려면 더욱.”
우리는 잠시 끔찍했던 콜롬비아 총기 난사 사건과 그 가해자의 어머니를 다룬 영화 ‘케빈에 대하여’를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전형적인 양극성 장애 환자였던 사도세자와 그를 뒤주에 가둬 죽였던 아버지 영조의 비극에 대해서도.
여전히 ‘아픈 아이’의 뇌의 지도를 우리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고도 경쟁과 자기 착취의 대가로 전 세계 최저 출산율과 최고 자살률 기록하는 나라에 우리는 살고 있다. 전 지구적으로 가장 생명을 유지하고 싶지 않은 나라라는 통계적 오명 속에서, 살아야 할 이유를 묻는 자녀에게 우리는 무슨 말을 해줄 수 있을까?
-자녀는 지금 당신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세상에서 아무리 작은 역할이라도 자기 삶을 사랑하며 살았으면… 저는 아이에게 그것만 바랍니다. 자식은 부모에 의해서 세상에 던져졌어요. 그래서 저는 늘 미안합니다. 너무 삭막한 세상에 던져놓고 살라고 해서… 우리 아이에서 시작했지만, 우리 아이만의 문제는 아닌 거죠.”
-아픈 자식과 관계를 풀어나가는 데 도움이 될 만한 팁이 있을까요?
“정신질환 아이도 천식이나 면역질환과 다를 바 없는 환자라는 걸 잊으면 안 돼요. 과도한 연민 대신 이해하기를 멈추면 안 됩니다. 무엇보다 재정교육을 확실히 해야 합니다. ‘부모 세대가 부동산 폭등 같은 과실을 취해서 너희 세대가 가난해진 건 불공평하니, 그건 도와줄게. 하지만 나머지 생활은 네가 해결해 나가야 해.’ 지속해서 가르쳐야 합니다. 아픈 가족과의 생활은 부단한 선 긋기의 삶이에요. 이걸 안 하면 부모도 아이도 불행해져요. 단기 아르바이트를 해서라도 자기 자존감과 생활 감각을 지켜야 해요.
일례로 같은 질환을 앓는 딸아이 지인 중 매사 부모 탓을 하는 친구가 있어요. 부모도 저자세가 돼서 과하게 지원을 했어요. 카페 차리고 싶다고 하면 아르바이트하면서 경험부터 쌓아야 하는데, 부모가 그냥 돈을 대줬더니 사업 실패하니까 뛰어내렸어요. 다행히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습니다.
재정적 심리적 선을 긋고 언제 개입할지 기준을 정하지 않으면 같이 무너집니다. 자신의 생살여탈권을 책임지고 보호하려는 사람을 함부로 대하면 안 되죠. 다행히 우리 집 아이는 부모에 대한 신뢰가 있어서 비뚤지 않게 컸어요. 그런데도 아픈 거 부모에게 세세하게 이야기하면 엄마가 나를 버릴까봐 겁이 났었다고 해요.”
-남편인 신경외과 의사 정천기 교수는 뇌 질환을 앓는 딸들의 증세에 대해 어떻게 반응합니까?
“남편은 뇌를 연구하는 사람입니다. 약간의 경조증 증세가 있을 정도로 엄청난 에너지의 소유자예요. 지치는 법이 없죠. 남편은 정신질환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스펙트럼에서 극단의 뇌 기능이 있을 뿐이라고 보는 쪽입니다. 사회적 환경이 받아들이지 못할 뿐 기능이 특별한 아이들이라는 거죠. 그도 그럴 것이 미국의 표준진단 체계인 DSM-5 테스트에 따르면 정신질환이 아닌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예요.”
-그런 의미에서 ‘치유 폭력’이라는 단어가 허를 찔렀습니다.
“네. 장애인을 비정상으로 보고 정상으로 만들어 주겠다는 의도에 폭력성이 내재해 있는 거죠. 장애는 없어지지 않습니다. 없애려는 노력보다 장애를 갖고 편하게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게 돈이 덜 들어요.
청각장애인인 김초엽 작가도 자신은 자막으로 소통하는 게 편한데, 그런 시스템을 만들 생각은 안 하고, 다들 비싼 보청기만 권한다고 답답해하더군요. ‘꼭 귀로 들어야 한다’는 발상 자체가 일종의 치유 폭력인 거죠. 청각장애인을 위해 자막이 일반화되면, 비장애인도 혜택을 볼 수 있잖아요.
일자리도 그래요. 아픈 친구들은 정시 출퇴근이 어려워요. 약을 먹고 괜찮을 때 일할 수 있도록 유연한 일자리가 많아져야죠. 아픈 친구가 일하기에 괜찮은 노동 환경이면, 아프지 않은 친구들에겐 더 쾌적하지 않을까요.”
-뇌 질환자들은 사회의 병리와 불안을 온몸으로 감지하는 센서 같은 존재로군요.
“네. 아픈 아이들은 예민해요. 인간 사회의 병폐와 부당함, 거절을 더 예민하게 캐치하고 몸으로 앓습니다. 제가 백화점에서 조금만 짜증을 내도 안나는 바닥에 쓰러져서 공황장애가 와요.
그렇다고 뇌 질환자들에게 낙인을 찍으면, 사회는 센서를 잃고 더 나빠져요. 저는 가족들에게도 누차 당부를 해요. 말 안되는 소리를 해도 개선이 안 되는 것 같아 기운이 빠져도, 가족이 놓으면 끝이라고요. 질환자 가족들이 오픈해서 더 터놓고 얘기해야 해요. 깜깜이가 안 돼야 희망이 있습니다.”
-요즘 안나는 자기 미래를 어떻게 그려가고 있습니까?
“우리 애는 손재주가 많아서 수선실에서 몇 시간씩 일할 수 있어요. 찢어진 옷도 잘 꿰매고 솜씨가 좋습니다. 아프지 않을 때는 그렇게 아르바이트해서 생활비를 벌고, 남는 시간에 음악 작업을 해요. 목표를 높게 잡으면 자괴감도 커질 테니 무계획으로 그날그날 삽니다(웃음).”
-마지막으로 아이가 아팠기에 얻은 것이 있습니까? ‘딸이 조용히 무너져 있었다’라는 책 제목 어디에 희망이 숨어있을까요?
“(희미하게 웃으며)무너져 있었다… 문득 붕괴되었다, 라는 말이 떠오르네요. 영화 ‘헤어질 결심’에 나오는 말… 그런데 붕괴된 곳을 메워가면서 그럭저럭 살아지는 게 삶이더군요. 목표지향적이었던 제가 가정의 송사와 아픈 아이들을 돌보면서 생각이 바뀌었어요. 덜 경쟁적이고 덜 핏발을 세운 사회를 꿈꾸고 있지요.
안나가 아프지 않았다면 능력주의의 환상을 버리지 못하고 좁디 좁은 반쪽짜리 인생을 살았을 거예요. 그래서 아이가 아픈 것…그건 업보가 아니라 그냥 인생이었어요. 죄도 벌도 아닌 그냥 인생. 아이에 대한 공격만 아니라면, 저는 타인의 손가락질도 크게 신경 쓰지 않아요. 알고보면 한국은 워낙 노동 시간이 길어서 다들 남한테 관심도 별로 없고요(웃음).
살아보니 완벽한 삶은 없었어요. 모든 가족은 다 상처가 있는 역기능 가족이에요. 시간이 갈수록 아픈 자식도 적응이 되고… 그럭저럭 살다 보면 가끔 좋은 날도 만나요…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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