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 과학자의 이름, 과학 꿈나무 키우는 데 쓰겠습니다”
핵연료 피복관 국산 기술 'HANA' 개발
2015년, '대한민국 최고과학 기술인' 수상
은퇴 후 대중과 소통 '과학 커뮤니케이터'로
정용환(66) 박사는 1985년 한국에너지연구소(現 한국원자력연구원)에 입사했다. 이후 국제원자력기구(IAEA) 장학생 제도를 통해 독일의 원자력기업 KWU(Kraftwerk Union)로 연수를 떠난 그는 1991년 핵연료 피복관 성능 시험을 참관하고 크게 감명받는다. 핵연료 피복관은 방사성 물질의 외부 유출을 막고, 핵분열 연쇄반응으로 생기는 열을 냉각수에 전달하는 원자력 발전소의 핵심 소재다. 당시 핵연료 피복관은 전량 수입에 의존해 매년 300억 상당을 지불하고 있던 상황. 유일하게 국산화가 되지 않은 핵연료 기술이기도 했다. 1993년, 34살의 청년은 피복관 기술 자립이라는 꿈을 품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는 연구 시작조차 쉽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핵연료 피복관 기술은 미국의 원자력 발전기업 웨스팅하우스(Westinghouse)와 프랑스의 아레바(AREVA) 등 선진국이 독점하고 있어 국산화에 의심이 팽배했다. 그는 긴긴 설득을 통해 1997년이 돼서야 피복관 국산화 프로젝트를 시작할 수 있었다.
“11전 12기였어요. 고비를 수도 없이 넘겼죠.”
핵연료 피복관 연구를 일생의 업적으로 삼고 수많은 고비를 넘긴 그는 고성능 지르코늄 합금 핵연료 피복관 ‘하나(HANA·High performance Alloy for Nuclear Application)’를 결국 완성했다. 하지만 끝이 아니었다. 2004년 한국과 미국·유럽·중국 등에 등록한 특허를 두고 아레바에서 이듬해 무효 소송을 걸어 7년 반의 기나긴 소송전이 시작됐다. 1997년 시작된 연구부터 2013년 거대 기업과의 국제 소송에서 이겨 원천기술을 확보하기까지 장장 16년이 걸렸다. 2015년, 결국 그 공로를 인정받아 우리나라 과학계의 노벨상 격인 ‘대한민국 최고 과학기술인상’을 받았다.
지난 1일 대전 유성구의 한 카페에서 라이프점프와 만난 그는 이제 퇴직한 지 딱 한 달을 맞은 참이었다. 이제는 대중에게 과학을 쉽고 재미있게 알리는 ‘과학 커뮤니케이터’의 길을 걷겠다는 정 박사의 얼굴에서 설레임이 묻어났다.
“내 울타리 안에서만 살았어요. 다른 연구소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관심도 없었죠.”
연구하다 자정을 넘긴 시간에 귀가해 라면 반쪽을 먹고, 뉴스를 보며 잠들었다 다음날 해가 뜨면 연구실에 나오는 일상을 반복했다. 연구 외의 분야에 도통 무관심했던 그를 세상으로 나오게 한 건 오로지 HANA다. HANA 개발에 성공하자 언론이나 다른 연구자 등 세상과의 접점이 많아졌다. 연구소를 벗어나고 보니 이공계 기피 현상과 과학에 대한 사회의 무관심이 온몸으로 느껴졌다. 연구자로서의 성과만큼이나 길을 이어갈 후배 과학자 육성도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2013년 대덕특구의 과학자 재능기부단체 ‘사단법인 따뜻한과학마을벽돌한장’을 세운 이유도 과학이 대중에게 쉽게 다가가야 한다고 생각해서다. 10년 전부터 과학 대중화에 뜻을 품은 이들을 수소문했고, 대전 대덕연구단지의 과학자 10명이 구심점이 돼 활동을 시작했다. 그 모임이 이제는 과학자와 기업인, 교사 등 회원이 150명에 달할 만큼 커졌다.
과학 정책 토론회와 과학 페스티벌도 간간이 열지만 주 활동은 과학 강연이다. 알파고나 챗GPT 등 새로운 이슈를 다루고 토론하는 ‘과학마을 이야기’ 강연을 매달 연다. ‘찾아가는 과학교실’도 인기다. 여러 과학자가 함께 초·중학교를 방문해 강의를 열면 학생들이 관심사에 따라 골라 듣는 ‘백화점식’ 강연이다. 학생들이 스스로 원하는 강의를 선택한 만큼 집중도도 높다.
대학교에서도 강의를 해봤지만 초·중학교에서의 강의가 훨씬 까다로웠다. 은퇴하기 5년 전부터는 본격적으로 과학 커뮤니케이터의 길을 준비했다. 한국과학관협회의 과학해설사 양성교육, 대전관광공사의 과학해설사 양성 프로그램을 이수하며 대중에게 과학을 쉽고 재미있게 알릴 방법을 하나하나 터득해갔다.
“과학자들이 제일 못하는 게 소통이에요. 10분만 지나면 초등학생들은 다 졸고 있어요.” 그는 TV에서 하는 강연 프로그램과 유튜브의 인기 강연을 찾아보며 배울 점을 하나씩 꼽아봤다. 파워포인트 한 장에 사진 2개 이상 쓰지 않기, 폰트는 크기 24 이상, 영어와 전문용어는 쓰지 않기 등 자신만의 가이드라인을 만들었다. 그 노하우를 은퇴 과학자들에게 공유해 지역사회에 공헌할 수 있도록 돕기도 한다.
“연구하면서 정부의 수혜를 많이 받았다고 생각해요. 안정적인 분위기에서 정년까지 보장받고 한 우물만 팠죠. 이제는 제가 지역사회를 위해 뭔가 기여하고 싶었어요."
“전문 지식을 갖고 30년은 일했는데 퇴직하는 순간 갈 곳이 없어요. 대전에서만 매년 100명이 은퇴하는데 그 경력을 활용해야 해요.” 그는 대전에 대해 ‘식당 어느 곳에 들어가도 손님 절반은 박사인 곳’이라고 소개했다. 이들이 은퇴한 순간 그 기술과 전문성을 쓸 곳이 마땅치 않아 지식이 사장되고 만다. 정 박사는 고경력 은퇴 과학자를 활용하기 위해서는 중소기업 매칭을 확대하고 과학 커뮤니케이터 지원 사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과학계에는 성과를 인정받은 연구원들의 연구 활동을 정년까지 보장하는 ‘영년직 연구원’ 제도가 있지만 만 61세까지만 지원하는 등 한계가 있다. ‘ReSEAT 프로그램’ 등 고경력 과학기술인 활용 지원사업도 곳곳에 보인다. 하지만 연구개발특구진흥재단에 따르면 2018년에만 대전 대덕연구단지에 과학자가 3만 5000명이 넘어 좀더 규모가 큰 제도가 필요한 상황이다. 정 박사는 “연구원들이 안정적으로 연구할 수 있도록 보조하고 업적을 인정해준다면 자연스럽게 과학자의 길을 택하는 청년들도 많아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과학 대중화를 위해 과학 커뮤니케이터를 키우는 일도 중요하다. 과학 커뮤니케이터로 활동하는 많은 은퇴 과학자들은 무료 재능기부로 청소년 과학교육이나 멘토링 역할을 맡는다. 최근 들어서는 ‘궤도’나 ‘엑소’ 등 과학 커뮤니케이터가 슬슬 주목받기 시작했다. 은퇴 과학자들이 그와 같은 길을 갈 수 있도록 비용을 지원하고 육성 프로그램을 다양화하면 아이들이 과학과 친해지는 데도 분명 기여할 것이란 의견이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과학자는 초등학생의 장래희망 10위 안에 꼽혔다. 지금은 크리에이터, 연예인, 운동선수 등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정 박사는 아이들이 장래 희망에 ‘과학자’를 써내는 미래를 상상해보곤 한다. 이를 이루기 위해서는 선배 과학자의 역할이 중요하다. 김연아나 박지성 같은 국민 스포츠 스타처럼, 아이들이 동경하며 미래를 그릴 ‘과학자 스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종종 정 박사에게 “왜 최고 과학기술자 상까지 타고선 이런 활동을 하느냐”고 묻는다. 그는 “최고 과학자니까 한다”고 답한다. 롤모델이 되어 보여줄 작정이다. 인생 2막의 목표다.
정예지 기자 yeji@lifejump.co.kr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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