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근무표에 내 이름이 없으면 잘린 거였다. 그러나…"
[최용락 기자(ama@pressian.com)]
문재인 정부를 기록하며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 정책을 빼놓기는 어려울 것이다. 간접고용 노동자의 '정규직화'를 선언하고도 굳이 직접고용이 아닌 자회사 고용 길을 열어둔 정책의 불합리함에 맞서 저항한 이들의 이야기를 그 시대의 사회사에서 빼놓기도 어려울 것이다. 직접고용을 요구하며 가장 거세게 싸운 이들 중 하나가 정규직화 정책 발표 전 직접고용 판결을 받고도 대량해고까지 당하는 어이없는 상황에 놓인 한국도로공사 간접고용 노동자들이었다. 200일이 넘게 이어졌던 싸움 뒤 그들의 삶은 나아졌을까.
<캐노피에 매달린 말들>을 보면, 이에 대한 답을 엿볼 수 있다. 책에는 격렬한 싸움터의 한복판에 섰던 도로공사 노동자 12명의 이야기가 구술 기록 형식으로 담겨있다. 저술은 다양한 분야의 활동가와 기록노동자로 구성된 톨게이트여성노동자 구술기록팀이 맡았다.
저항의 전사(前史)부터 보면, 12명의 인터뷰이 중 11명이 여성인 이 책에서 먼저 눈에 띄는 문제 중 하나는 경력 단절이다. 결혼 전 다양한 직장에서 일했지만 출산과 결혼으로 일을 그만뒀고, 도로공사의 요금수납 업무 하청 업체에 입사했다는 증언이 반복적으로 나온다. 특히 IMF 때 결혼해 일을 그만뒀고 "일을 구하려다 보니까 다 아웃소싱 업체 통해서 들어가야" 했다는 말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제한된 이들의 가능성을 떠올리게 한다.
일 자체에는 좋은 면도 있었다. "독립된 공간에서 자기 일만 딱 잘 하면 되어"서 "너무너무 재미있"었다는 말도, "고속도로를 지겹게 운전하고 왔는데 여기서 사람이 웃으면서 반갑게 맞아주니까 자기네들도 기분이 좋고 피로가 풀리는 것 같다"고 말해주는 사람, 수박을 좋아한다니 농사지은 수박을 차에 가득 싣고 와 선물해 준 사람이 있었다는 경험담도 나온다. 과적 단속 일을 한 노동자는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꼭 필요한 일"을 하며 "보람"을 느꼈다고 말했다.
하지만 용역업체만 바꾸면 사람도 쉽게 자를 수 있는 간접고용 구조의 필연적 결과인 고용불안, 취약한 지위에 놓인 이들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행해지는 갑질, 성희롱과 성차별적 괴롭힘 같은 것들이 이들을 짓눌렀다. "1월 근무표에 내 이름이 없"으면 "잘린 거"였다. 자신들이 미납요금을 잡아내 도로공사에서 내려온 성과금은 사장이 독식했다. 직원 중 한 명을 "애인"으로 만들고 직원을 감시하게 하는 사장, 김장을 시켜 부식비를 아껴놓고 좋은 김치는 가족들에게 주는 사장도 있었다. 그 사장 대부분 도로공사 퇴직자였다.
저항의 후사(後史)를 보면, 나아진 것도 나아지지 않은 것도 있다. 먼저 나아진 것. 고용불안 걱정은 덜었다. 전에는 휴가만 많이 써도 잘릴까 걱정이었는데 이제는 연차 휴가를 눈치 보지 않고 쓸 수 있게 됐다.
다음 나아지지 않은 것. 도로공사는 일에서 오는 즐거움을 빼앗아 갔다. 이들에게 부여된 일은 기존에 하던 요금수납이나 과적 단속이 아닌 '현장지원'이다. 대체로는 휴게실이나 도로 주변을 청소하고 정비하는 일이다. "청소 자체가 자존심 상하는 일이 아니라"고 되새겨 보지만 "입사할 때부터 해온 우리의 일"을 하지 못한다는 데서 오는 무력감은 어찌하기 어렵다. '공정', '능력주의'라는 미명 하에 던져지는 차별적 시선도 끈질기게 따라붙는다. 심지어 임금도 떨어졌다.
낙관하기만은 어려운 상황이지만 희망을 버리기는 이르다. 아직 말하지 않은 변화가 하나 더 있다. 노동조합으로 뭉쳐 저항한 경험이 이들에게 남긴 흔적이다. 예컨대, 도로공사 안에서 눈치 보지 않고 병가를 쓸 수 있는 문화는 이들이 직접고용된 뒤 싸워 만들어냈고 그 혜택은 모두가 보고 있다. 더 나은 일터를 만들기 위한 이들의 활동은 계속되고 있다. 아직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최용락 기자(ama@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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