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인들이 사재기했는데... 인구감소로 쪼그라든 이 전자제품 [이용재의 식사(食史)]
편집자주
※이용재 음식평론가가 격주 금요일 흥미진진한 역사 속 식사 이야기를 통해 ‘식’의 역사(食史)를 새로 씁니다.
오늘날 우리는 전기밥솥을 너무 당연하게 여긴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냄비 밥의 기억을 간직하고 있다. 가스조차 보급되지 않았던 시절, 밥은 석유풍로에 양은 냄비를 올려 지었다. 어린 나는 누룽지를 먹을 수 있다고 좋아했지만 짓는 사람 입장에서 냄비 밥은 만만치 않았다. 밥을 짓는 동안 앞에 버티고 서서 불 조절을 잘해야만 했다. 안 그러면 밥이 설거나 타기 일쑤였다.
전기밥솥의 등장과 더불어 냄비로 밥 짓는 시대는 막을 내렸다. 이제 밥솥은 쌀만 잘 챙겨 넣어 주면 타이머에 따라 알아서 밥을 지어준다. 더군다나 압력 기능을 탑재해 밥알이 고스란히 살아 있는 맛있는 밥을 지어준다. 게다가 기술도 국산이다. 그렇다, 우리는 전기밥솥 종주국인 일본을 이미 이십여 년 전에 뛰어넘었다.
'신입사원 연봉 3분의 1'이던 금값 밥솥
일본에서 전기밥솥의 개발은 다이쇼 시대(1912~1926)에 최초로 이루어졌다. 미쓰비시의 NJ-N1(1923)이 시초였다. 전기가 가정에 널리 보급된 시기가 아니었으므로 배에서 사용될 용도로 개발된 기기였다. 구조도 아주 단순해 그저 열선이 부착된 솥 수준이었다. 이후 1937년 중일 전쟁 당시 전기밥솥의 개발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졌다. 시간을 줄이기 위해 사각형의 나무통에 쌀과 물을 넣고 전선을 연결해 순식간에 밥을 끓이는 취사법이 등장했다.
이런 원천 기술을 바탕으로 1940, 50년대에 가정용 전기밥솥의 개발이 시작되었다. 미쓰비시와 마쓰시타(파나소닉), 소니가 열선이 부착된 밥솥을 출시했지만 판매 실적은 좋지 않았다. 성능이 나쁘고 자동화도 되지 않은 탓이었다. 성공적인 가정용 전기밥솥이 등장한 건 1955년이었다. 5년간의 개발을 거쳐 도시바에서 출시한 ER-4는 가열용 외솥 안에 쌀을 담은 내솥을 넣어 밥을 짓는 방식이었다.
ER-4는 섭씨 98도에서 20분간 지었을 때 밥이 가장 맛있다는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개발된 제품이다. 취사가 끝나면 전원이 자동으로 차단되는 기능도 탑재됐다. 당시 가격은 3,200엔으로 대졸 신입 사원 연봉 3분의 1에 맞먹는 금액이었다. ER-4 700대가 초도 물량으로 생산되었지만 잘 팔리지 않았다. 이후 치열한 판촉 활동을 통해 판매량이 증가했고 출시 4년 뒤인 1960년에는 일본 가정의 절반이 ER-4를 구비하게 되었다. 1960년에는 보온 기능과 타이머를, 1979년에는 내부의 온도 조절이 좀 더 섬세하게 가능한 마이크로 컴퓨터를 탑재한 밥솥이 등장했다.
1965년 국내 밥솥의 탄생
국내에서는 1965년 금성사(현 LG)가 최초로 밥솥을 출시했다. 1972년에는 한일전기주식회사에서 일본의 산요와 기술 제휴를 맺어 제품을 생산했고, 대원전기와 한상전자에서도 뒤이어 전기밥솥을 내놓았다. 하지만 밥이 그다지 맛있지 않았기 때문에 당시 사람들에게 전기밥솥은 큰 인기를 누리지 못했다. 당시의 기술적 한계로 인해 전기밥솥으로는 가마솥에 필적할 만한 밥을 지어낼 수 없었다.
하지만 밥솥의 지평은 1980년대에 큰 폭으로 바뀌게 된다. 냉장고, 세탁기, 전화기 등 첨단 가전 제품이 일반 가정에 속속 보급되는 가운데서도 전기밥솥은 수요가 크게 늘지 않았었다. 열등한 밥맛 탓이었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어 경제활동을 하는 여성의 비율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변화의 흐름을 타고 시간을 줄여줄 뿐만 아니라 신경을 덜 쓰게 도와주는 전기밥솥의 수요 증가는 필연이라고 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국산보다 앞선 성능의 일제, 특히 제조사의 마스코트에서 따와 ‘코끼리 밥솥’이라 불리던 조지루시사의 전기밥솥이 인기를 누리기 시작했다. 출장이나 주재원 근무 등을 겪은 직장인들이 하나둘씩 사서 들어오면서 국내에 유입된 코끼리 밥솥은 입소문을 통해 중상류층에서는 거의 필수품으로 자리를 잡았다. 결국 일본 여행 및 방문 시 꼭 사야만 하는 물건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게 됐다.
나중에는 코끼리 밥솥을 사기 위해 일본 여행을 갈 만큼 붐이 일어났다. 1982년 동아일보 보도에 따르면, 당시 일제 밥솥은 하루 40~60점, 한 해 약 1만5,000점 이상 반입되었다고 한다. 코끼리 밥솥은 기능뿐만 아니라 용량으로도 선두였다. 8인용은 기본이고 15인용까지도 출시했다. 지금보다 밥을 훨씬 많이 먹었던 시대 분위기를 감안한 제품이었다.
잘나가던 '코끼리 밥솥'의 그림자
그러다가 1983년 일명 코끼리 밥솥 사건이 터졌다. 1월 10일 부산 국제여객터미널, 전국주부교실 부산지부 회원 17명이 부관연락선 편으로 현해탄을 건넜다. 시모노세키 부인회와의 자매결연이 방일 목적이라고 했지만 관련 행사는 열리지 않았다. 대신 일정의 대부분을 쇼핑이 차지했다. 그들은 시모노세키와 후쿠오카의 상가를 훑으며 주방 기구와 전자제품, 손목시계, 화장품 등을 사재기했다.
직후에는 잠잠했던 이 사건은 한 달 뒤 일본 아사히신문의 보도로 온 나라를 뒤흔들었다. ‘한국 손님 덕분에 매상이 늘어난다’라는 제목으로 주부교실 회원들의 쇼핑 행적을 적나라하게 다룬 기사였다. 당시 한국은 경상수지 적자국이었던 데다가 해외여행 자유화의 부작용을 염려했던 시기라 한국 언론도 사건을 크게 다뤘다.
‘분별없는 아줌마들의 걸신들린 쇼핑 바람이 나라 망신을 시켰다’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부산에는 검찰이 여행사 직원 2명을 외환관리법 위반으로 구속까지 시켰다. 주부교실 회원들은 ‘남들처럼 샀을 뿐’이라고 둘러댔으나 반입품 중 40%를 자진 반납 형식으로 세관에 넘겼다. 하지만 화무십일홍이라고 했던가. 코끼리 밥솥의 권세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외환위기 영향이었다. 원화 가치가 떨어지니 상대적으로 수입품 가격이 올라 부담스러워진 틈을 타 성능 좋은 국산 브랜드가 등장했다. 결국 일제 밥솥의 시대는 막을 내렸다.
압력전기밥솥의 등장, 한국의 청출어람
그렇게 국산 밥솥의 시대를 연 브랜드가 바로 쿠쿠다. 역사가 1978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쿠쿠는 원래 성광전자로 시작해 LG전자에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으로 납품하는 협력업체였다. 1998년 외환위기를 맞자 ‘위기가 기회’라며 OEM을 청산하고 쿠쿠라는 자체 브랜드로 밥솥을 생산 및 판매하기 시작했다.
1980년대 이후 맛있는 밥을 위한 한일 양국의 기술 경쟁은 치열했다. 일본 3대 전기밥솥 제조사인 파나소닉이 1988년 바닥만 눋지 않도록 내솥 전체를 가열하는 밥솥을 선보이자 4년 뒤 쿠쿠는 압력전기밥솥으로 맞섰다. 당시 쿠쿠는 찰지고 구수한 가마솥의 밥맛을 최대한 재현한 전기압력밥솥을 개발해 코끼리 밥솥의 시대에 종지부를 찍는다.
돌솥과 같은 재질인 천연 곱돌의 내솥에 압력 조절 조작부를 장착한 뚜껑 등의 독창적인 기술을 탑재한 쿠쿠의 밥솥은 출시 1년 만에 시장 점유율을 35%, 2010년에는 75%까지 올린다. 이윽고 쿠쿠는 누적 판매 2,000만 대로 '국민 밥솥'으로 우뚝 선다. 2000년대 초에는 중국인들이 한국산 밥솥을 사재기할 정도였다.
치열했던 전기밥솥의 전성기도 이제 서서히 저물어 가고 있다. 인구 감소나 노령화도 영향을 미치는 가운데 한일 양국 모두 밥을 예전만큼 많이 먹지 않기 때문이다. 파나소닉은 일본 내 전기밥솥 생산을 중단하고 2023년 상반기 67년 만에 공장을 중국 항저우로 이관했다. 일본전기공업회에 따르면 2021년도 전기밥솥 출하량은 5년 만에 13% 떨어졌다.
한국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한국 가구의 연간 쌀 소비는 1970년 1인당 136kg에서 2021년 56kg으로 줄었다. 게다가 우리에게는 전자레인지 가열 즉석밥도 있으니 굳이 밥솥을 들여놓을 필요가 없어졌다. 이제 신혼부부 혼수 목록에서도 전기밥솥이 빠지는 추세다. 이런 현실 속에서 전기밥솥은 끊임없이 지속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 6인분이 기본 용량이었지만 2000년대 들어 3~4인용이, 2010년 이후엔 1인용이 등장하는 등 크기가 작아지고 있다. 한편 압력과 보온 기능을 활용해 식혜, 갈비찜 그리고 고구마나 감자도 구울 수 있는 종합 요리 기기로 거듭나고 있기도 하다.
음식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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