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사람이고 싶은 사람들의 '집 이야기' [책과 세상]

진달래 2023. 11. 11. 0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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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진 소설집 ‘축복을 비는 마음’
한국 사회에서 복합적 욕망의 대상인 ‘집’
"집을 둘러싸고 있는 마음" 단편 8편에 담아
계급, 노동, 부동산 등 바라본 날카로운 시선
2011년 등단한 소설가 김혜진은 소설집 '어비' '너라는 생활', 장편소설 '중앙역' '딸에 대하여' '9번의 일' '경청' 등을 펴내 중앙장편문학상, 신동엽문학상, 대산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신간 소설집에는 2021·2022 젊은작가상을 수상한 단편 '목화맨션' '미애'가 수록됐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내 집을 갖고 싶다. 더 좋은 집에 살고 싶다. 그리고 누구에게도 나쁜 사람이고 싶지 않다.'

등단 12년 차를 맞는 김혜진(40)의 세 번째 소설집 '축복을 비는 마음'에는 그런 마음들이 녹아 있다. 어쩌면 지극히 평범한 마음이고 욕망이다. 김혜진 작가는 여덟 편의 단편에서 그 욕망 때문에 발생하는 아이러니한 상황들을 차분히, 그리고 담담하게 끄집어 내보인다. 어떤 이의 편도 들 수 없지만 동시에 그들의 어떤 점도 이해하지 않을 수 없도록 말이다. 작가는 이번 소설집을 "집을 둘러싸고 있는 어떤 마음들에 대한 이야기"('작가의 말')라고 표현했다. 그는 물리적 공간으로서 집(House·하우스), 심리·정서적 기반으로서 집(Home·홈)을 오가며 계급, 젠더, 지역과 같은 우리 사회의 균열을 예리하게 읽어낸다.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상황은 '재개발'이다. 욕망이 뒤엉킨 가장 한국적 소재인 재개발은 필연적으로 희망과 기대, 불안과 상실감을 불러일으킨다. 재개발로 촉발되는 인물들의 갈등이 핍진하게 그려진다.

축복을 비는 마음·김혜진 지음·문학과지성사 발행·292쪽·1만6,000원

예컨대 수록작 '목화맨션'에서 집주인 '만옥'과 세입자 '순미'의 관계는 재개발 무산 소식에 결국 끊어진다. 8년을 서로 살뜰히 챙기며 집주인과 세입자 이상의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던 두 사람. 그러나 남편이 병을 얻고 기대했던 재개발이 무산되면서 형편이 어려워지자 만옥은 순미에게 일방적으로 퇴거를 요구한다. 당장 현금이 필요한 상황에 세입자를 내보내야 주택을 사겠다는 매입자가 나타났기 때문. 또 다른 수록작 '산무동 320-1번지'는 재개발이 오늘내일하는 지역(산무동)의 큰손인 '장 선생'과 그의 대리인 '호수 엄마', 세입자 '재민 엄마'의 관계가 여러 층위에서 묘사된다.

흥미로운 대목은 '좋은 사람이고 싶다'는 욕망이 어떻게 작동하는가의 문제다. 타인에게 적어도 무해하고 싶다는 욕구는 인물들을 아이러니한 상황에 처하게 한다. '목화맨션'에서 만옥은 사실상 자신이 내쫓은 순미에게 이사 비용이라도 하라면서 돈을 쥐여주려고 한다. '산무동 320-1번지'에서 호수 엄마는 장 선생 대신 월세 독촉을 하러 간 자리에서 받은 현금 5만 원 중 3만 원을 모친상을 당한 재민 엄마에게 돌려준다. "어쩌자고 서로의 사정을 이렇게 속속들이 알아버려"서 자신만 잘 살아보려 한 일들에 죄책감 비슷한 것을 느끼기도 한다. 월세를 연체하는 세입자 때문에 스트레스 받으면서도 "쫓겨나는 사람들의 미움을 받는 일도, 원망을 듣는 일도" 영 내키지 않아 내쫓지 못하는 집주인('이남터미널'), 원룸보다 넓은 집으로 이사 가고 싶은 자신을 위해, 교통사고 피해 사실을 꾸며내 합의금을 받은 할머니에게 화를 내면서도 그 돈을 뿌리치지 못하는 이('자전거와 세계')도 있다. 그들의 속사정을 알게 될수록 섣부르게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없다.

김혜진 작가는 소설집 '축복을 비는 마음'을 통해 복잡한 욕망이 얽힌 한국인의 집 이야기를 다각도로 펴냈다. 연합뉴스

작가는 계급이란 프리즘을 통해 더 선명하게 삶의 부조리함을 드러낸다. 호수 엄마는 헐값에 얻은 전셋집 사수를 위해 장 선생의 대리인 업무를 수행해야 하지만, 재민 엄마(세입자)를 압박하면 월세를 받을 수도 없고, 세입자를 관리하는 자신의 일거리가 사라질 수도 있는 처지에 놓여 있다. 다른 작품 '미애'에는 한층 더 복잡한 심리들이 그려진다. 친구의 임대 아파트에 딸과 함께 얹혀사는 인물 '미애'는 아파트 단지 독서모임에서 만난 '선우'를 동경한다. 그녀의 친절이 때론 동정으로 느껴져도 괜찮았다. 어떤 사건으로 관계가 틀어진 후 선우가 '임대동 사람을 모임에 넣지 말자'고 말했다는 사실조차도 받아들일 수 있었다. 하지만 자신에게 묻지 않고 '추구하는 가치'가 다르다는 이유로 선우를 모임에서 내보내고 자신을 감싸는 모임 사람들을 보면서 미애는 더 불편함을 느낀다.

좋은 사람이고 싶은 마음 따위는 부질없는가. 특히 불안으로 채워진 삶에서 타인에게 무해하고 싶은 욕구는 사치인가. 책을 덮을 때쯤 독자는 이런 질문 앞에 선다. 김혜진의 소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답을 하는 것 같다. 표제작에서 힘든 이사 청소를 악착같이 해내는 '인선'은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는 집을 청소할 땐 마음이 너무 불행해지지 않으냐"는 물음에 이렇게 대답한다. "축복을 비는 마음으로 하는 거죠." 농담처럼 던진 그 말은 인선에게 되돌아와 봄 공기 같은 희망을 품게 한다. 우리에게도 말이다.

진달래 기자 az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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