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택에 민폐 된 아산 '악취공장', 서울시민 똥냄새 맡는 고양시... "왜 우리가 피해 보나요" [출구 없는 사회적 공해 악취]
위법인데도 승인, 민원 쏟아지니 뒤늦게 취소
서울 분뇨시설 35년간 고양시민에 냄새 피해
두 지자체 개선 합의했으나 실현은 지지부진
악취시설-피해주민 관할 달라 생기는 갈등들
"지자체 간 해결 어려우면 중앙정부 나서야"
편집자주
전국 곳곳에서 '후각을 자극해 혐오감을 주는 냄새', 즉 악취로 인한 사회적 갈등이 사라지지 않고 있습니다. 악취 민원은 무수히 쌓이는데 제대로 된 해법은 요원합니다. 한국일보는 16만 건에 달하는 데이터 분석을 토대로 국내 실태 및 해외 선진 악취관리현장을 살펴보고, 전문가가 제시하는 출구전략까지 담은 기획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왜 아산에 있는 위법 시설 때문에 평택에 사는 우리가 고통받아야 합니까?
경기 평택 팽성읍 노양리 주민 이정복(가명·60대)씨는 분통을 터뜨렸다. 그를 만났던 지난 4일, 면적 약 1.5㎢의 작은 마을 전체에 코를 찌르는 악취가 진동하고 있었다. 암모니아 냄새였다. 또 다른 주민 구정근(가명·60)씨는 "아산에 저 공장들이 생긴 뒤부터 악취가 났다. 30분만 맡아도 머리가 깨질 것 같다"고 토로했다. 주민들이 가리킨 '공장들'은 폐기물처리시설 2곳이다. 구씨의 집과 직선거리로 각각 800m, 1.2km가량 떨어져 있다.
충남 아산시 관할인 해당 부지(둔포면 신남리)엔 원래 폐기물처리시설을 지을 수 없다. 그런데 운영사인 A와 B가 '꼼수'로 아산시의 허가를 받았다. 주민들 민원에 아산시가 뒤늦게 공장설립승인을 취소했지만, A와 B사는 반발하고 있다. 이씨는 평택시청에 민원을 제기했으나, 소용없었다. 관할이 아니라서 아산시에 이첩하는 것 외엔 할 수 있는 조치가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한국일보가 지난달 4일부터 보도한 '출구 없는 사회적 공해, 악취' 기획시리즈를 접한 주민들은 악취 민원이 많은 지역들의 고통에 공감하며, 애꿎은 평택 주민들을 기약 없이 악취에 시달리게 만든 아산시의 부실행정 역시 이참에 바로잡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냄새 내뿜으며 돈 버는 위법 시설들... 충남도·아산시 뒤늦은 '시정'
A와 B사의 폐기물처리시설이 들어선 곳은 농업진흥구역(절대농지)으로, 애당초 그런 시설을 못 짓는다. 농지법 등에 따르면 절대농지엔 유기질 비료 생산시설만 설치할 수 있고, 이 목적으로만 광역지자체의 농지전용(공장부지로의 용도변경) 허가를 받을 수 있다.
한국일보 취재 결과, 아산시청은 쌀겨 등을 주원료로 한 유기질 비료를 만들겠다며 A와 B사가 각각 2013년과 2015년 서류로만 제출한 사업승인 신청을 받아줬다. 충남도와의 농지전용 협의도 일사천리로 끝냈다. 문제는 그 이후다. A, B사는 시설을 정식 운영하기 전 돌연 폐기물처리업 허가를 신청했고, 아산시청은 위법임에도 허가를 내줬다. 결국 시설은 각각 2015, 2017년 폐기물처리시설로 탈바꿈해 가동을 시작했다.
아산시청 등에 따르면 A사의 시설에 반입되는 폐수와 분뇨 슬러지는 한때 하루 최대 109.5톤에 달했다. B시설이 처리하는 폐수 슬러지는 하루 최대 100톤에 이르기도 했다. 한국유기질비료산업협동조합 관계자는 한국일보와 통화에서 "유기질 비료 시설은 폐수 슬러지를 원료로 쓰지 않을뿐더러 악취가 거의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아산시가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18년부터 올 상반기까지 두 시설에 제기된 악취 민원은 약 230건에 이른다. 총 22차례 검사가 이뤄졌는데, 8차례나 악취 배출 허용 기준치를 넘겼다.
그런데도 두 업체가 아산시청으로부터 받은 제재는 시설개선 권고와 과태료 450만 원뿐이었다. 박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자료를 보면 두 업체는 정부 컨설팅 일환으로 2021년 11월 한국환경공단의 악취방지 기술지원을 받았다. 하지만 B시설의 악취는 2022년에도 배출 기준을 2배 이상 넘겼다. 두 업체는 2019~22년 최소 180억 원의 매출, 23억 원의 영업이익을 올렸다.1
충남도와 아산시는 2021년 여름 평택 주민 77명이 아산시에 집단 민원을 제기하고 나서야 악취 피해를 인지한 것으로 보인다. 시 관계자는 "행정 과정에서 농지법 위반 사실을 놓쳤던 것 같다"고 시인했다. 시는 두 업체의 공장설립승인을 취소했고, 지난해 말부터 두 시설을 악취배출신고 대상으로 지정하는 절차를 진행 중이다. 또 도 관계자는 "B사와 이달 1일 자로 농지전용 협의를 취소했고, A사에 대해서도 취소를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업체들은 반발하고 있다. A사 관계자는 "7, 8년간 어떤 조치도 없다가 갑자기 제재하는 건 불합리하다"며 "전 재산이 걸린 소기업 입장에선 차라리 보상받고 사업장 문을 닫고 싶은 심정"이라고 호소했다. 지자체가 두 시설의 농지법 위반을 묵인해온 사이 업체들은 돈을 벌고 주민들은 냄새에 시달리게 됐으니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위법임에도 내준 허가를 도로 취소하는 어처구니없는 행정이 결국 기업에도 손해를 떠안긴 꼴이 됐다.
주인 없는 악취에 피해 지속... 서울·고양 10년 넘게 '탁상공론'만
경기 고양시 덕양구 대덕동 주민들도 비슷한 고통을 겪고 있다. 원인은 1987년 이 지역에 설립된 서울난지물재생센터다. 35년째 센터 옆 난점마을에 살고 있는 임순자씨는 "우리 집에 처음 오는 사람들이 '누가 방귀 뀌었나' 싶어서 눈치를 볼 정도"로 악취가 심하다고 토로했다. 대덕동 주민자치회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1,211명 중 98.8%(1,196명)가 '센터 악취로 일상생활에 불편을 겪은 적이 있다'고 답했다. 악취가 스트레스로 이어진다는 응답도 75.7%(917명)나 됐다.
이곳도 평택 사례처럼 악취 시설과 피해 주민들의 행정구역이 다르다는 게 문제로 꼽힌다. 센터는 행정구역은 고양시지만, 서울 일부 지역의 생활하수(용산·은평·서대문·마포 등)와 분뇨(종로·용산·은평·서대문·마포·영등포) 처리를 주로 맡는 서울시 시설이다. 센터에서 나는 악취 피해는 대덕동에서 입고 있지만, 대책은 서울시에서 나와야 하는 것이다.
고양 주민들 민원이 계속되자 서울시와 고양시는 함께 대응하기로 하고 '2025년까지 센터를 지하화한다'는 내용의 공동합의문을 2012년 작성했다. 그러나 10년 넘게 지난 지난달에야 주민설명회가 처음 열렸다. 서울시는 하수·분뇨 처리시설을 복개화해 지상에는 공원을 만들고, 배출구에서 나오는 악취를 일정 수준까지 낮추겠다는 계획을 들고 나왔다.
주민 반응은 부정적이다. 김미경 주민자치회 사무국장은 "여태 서울시는 고양시민 문제라 소극적으로 대응했고, 고양시는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입장이었다"며 "악취가 공원 위로 배출되기라도 하면 (지자체 반응이) 불 보듯 뻔하지 않겠나"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서울시 관계자는 "지하화 이후에는 배출구에서 냄새가 나와도 공기와 희석돼 실제 악취를 느끼진 않을 것"이라면서도 "지역 주민이나 고양시가 시설 이전 외에 현실성 있는 의견을 제시한다면 검토할 가능성은 있다"고 했다.
"악취시설 관할 지자체와 피해 지역 지자체 협력이 우선"
전문가들은 하나같이 지자체의 책임 있는 행정과 중앙정부의 관심을 촉구했다. 류희욱 숭실대 화학공학과 교수는 "1차적으로는 악취 배출원 소재지 관할 지자체에서 법적 근거에 따라 배출 시설을 관리하는 게 맞다"면서도 "악취 피해가 미치는 지역의 지자체와 악취 저감 및 민원 해결을 위해 협력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중앙환경분쟁조정위원회 전문가 위원인 유미선 울산대 건설환경공학부 교수도 "관련 지자체들이 주민 의견을 충분히 반영한 합의나 결과를 이끌어 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양성봉 울산대 나노에너지화학과 명예교수는 "지자체 간 해결이 어려울 땐 환경부 등 정부 차원에서 나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아산= 윤현종 기자 belly@hankookilbo.com
고양= 오지혜 기자 5g@hankookilbo.com
이현주 기자 memor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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