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레터] 읽는 이웃
복도에서 툭, 소리가 나길래 나가 보았더니, 과일이 잔뜩 든 쇼핑백이 문 앞에 놓여 있었습니다. 주문한 적 없는 것들이라 오배송인 줄 알고 그냥 문을 닫았는데 곧 이런 문자 메시지가 오더군요. “몰래 두고 오려 했는데 집에 불이 켜져 있길래 내일까지 못 보실까 봐 문자 드려요. 책 선물 이상이 될 순 없지만 최대한 건강한 음식으로 드리고 싶었어요.” 발신인은 3층 이웃. 책장 정리하다가 도스토옙스키의 ‘악령’이 두 권 있길래, 한 권을 그 집 현관 앞에 살짝 놓아두고 왔더니 답례품을 보냈습니다.
책이 맺어준 인연입니다. 몇 달 전 안 읽는 책들을 아파트 로비에 놓아두고 ‘필요하신 분 가져가세요’라고 쪽지를 붙여 놓았는데, 어떤 여자분이 반색하며 “정말 이 책들을 다 가져가도 되나요?” 하더군요. 지난번에도 제가 내놓은 책들을 가지고 가 재미있게 읽었다면서요. 그럼요, 얼마든지요! 이후에도 몇 번 더 책들을 챙겨 그 집 앞에 놓아두었습니다.
“저 어제는 지난번 주신 기욤 뮈소 책 보다가 손에서 놓을 수 없어서 새벽 4시에 잤어요.” “기욤 뮈소 재밌죠! 집은 좁은데, 버리기엔 마음이 아파서 갖다 드렸어요.” “맞아요. 버리는 건 살을 도려내는 느낌이에요.” 문자 메시지 대화가 끊일 줄 모르고 계속되었습니다.
책을 쓰레기 분리 수거장에 내놓으면 폐지로 분류돼 막 다뤄지더군요. 밑줄 그은 책이나 출판사 증정본은 거저 줘도 헌책방서 받지 않고요. 그렇다고 매번 기증하기엔 번거롭습니다. 그래도 책인데, 책이니까, 그냥 버리기보다는 누군가 읽어주었으면 좋겠다 바란 덕분에 좋은 이웃을 얻게 되었습니다. 읽는 이웃이라니, 아름답지 않나요? 과일 담겨 있던 쇼핑백에 그가 좋아할 만한 소설책을 가득 넣어 돌려 보냈습니다. 곽아람 Books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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