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뷰] 악재를 기회로 바꾼 ‘유틸리티’ 김하성
“어디든 내보내면 최선 다한다” 묵묵하고 열심히 일궈낸 결실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뛰는 야구 선수 김하성(샌디에이고 파드리스)이 올 시즌 분야별 최고 수비수에게 주는 미국의 ‘골드 글러브’를 받았다. 한국인 첫 수상이고 내야수로는 아시아인 최초다. 전쟁과 정쟁이 창궐하는 가운데 오랜만에 상쾌한 뉴스가 나왔다. 무엇보다 유틸리티(utility)라는 지난해 신설된 특수한 부문으로 상을 받았기에 더 의미가 크다.
유틸리티는 영어로 ‘다용도’란 뜻이다. 야구에서 유틸리티 선수는 ‘여러 위치에서 수비할 수 있는 선수’라고 정의한다. 만능이라 해석할 수도 있지만, 달리 보면 주전에게 사정이 생길 때마다 여러 역할을 전전하며 맡는 ‘땜빵’이란 뜻이기도 하다. 드라마·연극계에선 단역을 유틸리티라 부른다.
야구 전문기자 레너드 코페트가 쓴 책 ‘야구란 무엇인가’에 따르면 대부분 선수는 수비를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귀찮은 일”이라고 여긴다. 그토록 고된 수비 가운데 유틸리티는 특별히 더 지난(至難)한 직무다. 어느 자리에서 수비할지 모르니 훈련은 훨씬 더 열심히 해야 하지만 정작 언제 출전할지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미국 야구 전문지 ‘베이스볼 다이제스트’는 유틸리티에 대해 이렇게 썼다. “‘끝내주는 땜빵(super-sub)’이 목표인 선수는 없다. 정신 나가지 않았다면.”
‘유틸리티 김하성’도 악재(惡材)가 만들어냈다. 김하성은 어릴 적부터 지난해까지 유격수로 주로 뛰었다. 그런데 파드리스가 올해 초 메이저리그 최고의 유격수 중 한 명인 잰더 보가트를 영입했다. 내가 영업부장인데 회사가 업계 최고 영업통을 스카우트해온 격이니, 당혹스러웠을 것이다. 김하성이 스포TV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팀에서 (포지션을 바꾸라고) 문의가 왔다. 찬밥 가릴 때가 아니었다. 어디든 내보내면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많이 출전하는 것이 가장 필요했다.”
김하성은 이번 시즌 2루수로 98경기, 3루수로 29경기, 유격수로 16경기를 뛰었다. 하루에 두 개 역할을 소화하는 날도 적지 않았다. 예컨대 지난 9월의 경우 6일엔 2루수와 3루수, 10일엔 2루수와 유격수, 11일엔 2루수, 13일엔 유격수였다. 힘들지 않았느냐는 고교 후배의 질문에 김하성은 덤덤히 답했다. “내가 선택했으니 해야지. 회사원이 회사 가기 싫다고 안 갈 수는 없잖아.”
부각되진 않았지만 김하성은 올 시즌 38개 도루에 성공해 팀 1위, 리그 5위에 올랐다. 도루는 부상과 아웃의 위험을 걸고 하는 모험이다. 김하성은 그래도 죽어라 뛰었다. 지난 시즌(12개)보다 도루가 3배로 늘었다. 헬멧이 날아갈 정도로 전력 질주하는 모습은 대표 이미지로 굳어졌다. 샌디에이고 현지 언론은 김하성을 “쉬는 날도 훈련에 매진하는, 가장 열심이고 진심인 선수”라고 평가한다.
김하성은 한 방송에서 고교 후배들에게 “타자는 열 번 나가 세 번만 쳐도 잘한다고 한다. 즉 실패를 계속할 수밖에 없다”며 이렇게 조언했다. “실패할 때마다 사람은 스트레스를 받고 멘털이 깨진다. 이를 이겨야 하는데 방법은 그나마 루틴(반복적 훈련·행동)인 것 같다. 하루하루를 그렇게 이어가다 보면 버틸 힘이 된다.”
야구는 역시 투수가 가장 빛나는 스포츠다. 메이저리그 투수 류현진이 ‘승(勝)’ 하나를 챙길 때마다 열광의 박수가 터지고 뉴스가 도배된다. 자빠지고 굴러서 공 하나 잘 수비한다고 환호성이 쏟아지진 않는다. ‘야구란 무엇인가’를 다시 빌려 말하면 수비는 “열아홉 번 잘해도 한 번 실수하면 역적으로 몰리는” 고단한 행위다. 하지만 그런 공 하나하나를 누군가 뒤에서 잡아주지 않는다면 세계 최강 투수라도 이길 방법은 없다. 묵묵하고 열심히 하루하루를 이어가는, 김하성과 세상의 모든 ‘유틸리티 플레이어’에게 응원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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