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약자, 도와줘요 맘카페”… 그릇된 공감이 ‘엄마 혐오’ 불러
맘카페라는 세계
정지섭 지음|사이드웨이|324쪽|1만8000원
서이초 교사 사망 사건 때, 교사를 극단적인 선택으로 몰고 간 ‘갑질 학부모’가 3선 국회의원의 가족이라는 가짜 뉴스가 돌았다. 이를 확산시킨 진원지로 회원 41만명을 둔 한 맘카페가 지목됐다. 이 내용에 대한 기사 온라인 댓글은 이랬다. “맘카페는 없어져야 할 집단으로 보인다. 문제를 일으킨 게 한두 번이 아니지 않은가!” “맘카페 폐쇄 부탁드립니다” “맘카페, 악의 축이다”….
‘맘카페’는 엄마들이 모여 육아, 교육, 지역, 살림 정보 등을 공유하기 위한 인터넷 커뮤니티로, 2000년대 중반 탄생했다. 현재 네이버에만 1만2000여 곳이 존재한다. 이들에 대한 시선은 곱지 않다. 루머를 퍼뜨려 동네 소아과나 식당, 학원을 망하게 하고, 교사를 조리돌림해 죽음에 이르게 하는 사례가 거듭되면서 이기적이고 탐욕스러운 모성의 집합소로 여겨진다. 이 공간은 정녕 ‘마녀들의 소굴’인가. 정지섭(38·필명)씨의 책은 이런 의문에서 시작했다. 정씨는 대학에서 행정학을 전공하고 10년간 국책 은행에서 일했다. 현재는 두 아이를 둔 전업주부로 수도권 어느 지역의 맘카페를 5년 넘게 운영하고 있다.
맘카페의 구조와 특성을 분석하고, 문제점과 나아가야 할 방향을 짚은 이 책은 전문 연구자의 저술은 아니지만 저자의 경험과 꼼꼼한 자료 조사가 맞물린 덕에 인류학이나 사회학 보고서처럼 읽힌다. 저자의 문제의식이 가장 돋보이는 부분은 맘카페 내부 분위기가 어떻게 스스로를 사회에서 고립시켰는지를 분석한 제5장이다. “그중에서도 자신을 ‘약자’로 여기는 문화는 내가 가장 주목하고 있는 지점이다.”(203쪽)
“제가 앞에서 바로 뭐라고 할 성격이 아니어서요”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여기 (맘카페에) 올리는 것밖에 없어요”…. 맘카페에 단골로 등장하는 표현이다. 작성자는 ‘나는 힘이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명시하며 공감을 유도한다. “이 상황…, 저만 불편한가요?”라는 맘카페 ‘상투어’는 “아니요, 저도 불편해요” “그러고 보니, 저도 불편해요”라는 동조를 이끌어내며 무시무시한 폭발력을 가져오고, 결국 폭력이 되어 저격 대상을 파괴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오랫동안 약자의 위치에 있었던 여성들이, 무의식적으로 자신이 약하고 수동적인 존재임을 은연중에 내재화해 “도와줘요, 맘 카페’ 정서를 합리화한다고 저자는 분석한다. 그러다 문제가 터지고 그 시발점이 된 당사자를 찾아 비난의 화살이 돌아갈 때, 그는 다시 ‘약자의 프레임’ 뒤로 숨는다. 그런데 과연 맘카페 이용자들이 이 공간의 ‘공적’인 의미를 의식하지 못하고 있을까? 저자는 “대부분의 이용자는 집단 무의식의 차원에서 맘카페의 공공적인 힘을 분명히 의식하고 있다고 본다”고 주장한다. “’약자는 선하다는 프레임’ 안에서 ‘착한 사람들의 정의로운 행동’이라 합리화하며 생겨난 사건들이 있었고, 이는 결국 남을 굴복시키고 자신의 우위를 점하려는 이기심을 만족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걸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맘카페는 왜 지나치게 ‘정치화’되었다는 비난을 받게 되었나. 저자는 다른 커뮤니티와 달리 맘카페에서 유독 두드러지는 특성인 ‘둥글둥글함’에서 원인을 찾는다. “실제로 엄마가 되어 보면 자식을 위해서 둥글둥글해져야 함을 본능적으로 깨닫는다. 나의 날카로움은 자식에게 해가 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즉, 엄마라는 페르소나는 둥글둥글함의 원천이 된다.” 이 ‘둥글둥글함’이 역설적으로 맘카페의 ‘정치화’를 부추긴다. 트러블메이커가 되어 소외될 위험에 빠지는 것보다는 침묵을 선택하는 맘카페의 특성 때문에 어떤 이슈에 대해 큰 목소리를 내는 소수 의견이 여론으로 오도된다는 것이다. 일부 맘카페가 정치 편향적이라는 프레임이 씌워지면서 신뢰를 잃고, 결국 맘카페 혐오, 엄마 혐오, 여성 혐오 등으로 이어지면서 많은 맘카페가 ‘정치글 금지’를 규정으로 내세우게 되었다고 한다.
저자는 이러한 혐오가 결국 여성들이 엄마가 되는 걸 꺼리도록 하며, 장기적으로 저출산에 영향을 준다고 우려한다. 해답은 어디에 있을까? 결국 ‘모성(母性)’이다. “애 키우는 엄마가 쓴 게 맞나요?” 카페에서 분란이 있을 때마다 등장하는 이 자정(自淨)의 질문에서 저자는 내 새끼 아끼는 마음이 남의 자식 위하는 마음으로 확장되는 이타적인 모성의 희망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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