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수·타자 겸업’ 가능성 재조명… 오타니 이후 메이저리그가 변했다

채민기 기자 2023. 11. 11.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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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리그서 직면한 의구심 떨치고 2021년 ‘만화 야구’ 선보이기까지
메이저리그 기자의 ‘오타니 연대기’

오타니 쇼헤이의 위대한 시즌

제프 플레처 지음|문은실 옮김|위즈덤하우스|368쪽|1만9800원

모든 시즌이 위대하지는 않았다. 오타니 쇼헤이(29·LA에인절스)는 메이저리그에 데뷔한 2018년 초반 반짝하다 부진에 빠졌다. 팔꿈치 수술 후 맞이한 2019년엔 투수로 뛰지 못했다. 2020년엔 두 차례 선발 등판에서 1패에 그쳤다. 타율도 2할을 밑돌았다.

만화 같은 반전은 2021년에 왔다. 23경기에 선발 등판해 9승 2패, 평균자책 3.18. 그때까지 던지는 날에는 타석에 서지 않았던 오타니는 그해 4월 4일 미국 진출 이후 처음으로 한 경기에 투수와 타자로 나섰다. 15분 사이에 시속 161㎞짜리 강속구를 던지고 시속 185㎞로 뻗어가는 홈런을 날렸다. 5월 12일엔 투수 겸 2번타자로서 삼진 10개를 잡고 안타를 치고, 강판된 뒤에는 우익수로 옮겨 상대 땅볼 안타를 처리했다. 7월엔 메이저리그 최초로 투수와 타자로서 동시에 올스타에 선발됐다.

오타니와 자주 비교되는 베이브 루스(1895~1948)는 두 시즌만 투타를 겸했고 그나마도 달가워하지 않았다. 반면 오타니는 “타석에서 일을 낼 수 있다면 얼마든지 나간다”고 말하며 투타 분업이 뿌리내린 현대 야구사를 다시 쓰고 있다. 미국의 베테랑 메이저리그 기자인 저자가 본인과 동료·코칭스태프·팬들의 발언, 상세한 경기 기록을 바탕으로 위대했던 2021 시즌에 이르기까지 오타니의 야구 인생을 연대기로 엮었다.

◇”경쟁을 순수하게 즐기는 사람, 그게 오타니”

경기장 안팎에서 메이저리그가 돌아가는 방식을 세밀하게 분석해 ‘오타니 현상’을 보다 객관적으로 이해하게 해준다. 가령 2017 시즌이 끝난 뒤 미국행을 선언한 오타니를 둘러싸고 역대 가장 뜨거운 영입 경쟁이 벌어진 것은 특출 난 재능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 무렵 메이저리그의 규정이 바뀐 덕에 스물세 살 오타니는 아마추어로 분류됐고 25세 이상 선수에 비해 입찰액 상한선이 낮았다. 자금이 넉넉하지 못한 구단에도 해볼 만한 판이었다.

일본에서 보여준 투타 겸업이 빅리그에서도 통할지는 미지수였다. 에인절스 구단은 처음에 오타니 사용법조차 제대로 알지 못했다. 지칠까 다칠까 전전긍긍하며 오타니를 “도자기 인형”처럼 조심스럽게만 다뤘다. 고삐를 푼 것은 2020년 취임한 조 매든 감독이었다. 2021 시즌에 그는 오타니를 등판 전날에도 타석에 세웠고 한 경기에 투수와 타자로 내보냈다. 더 뛰고 싶다는 본인의 뜻을 존중해 “오타니를 오타니이게” 하자 오타니는 펄펄 날았다.

이 책에 ‘이도류’의 비급은 나오지 않는다. 유니콘(오타니 별명)의 생태를 알 수 없듯 오타니의 천재성도 설명이 불가능한 것이다. 다만 남다른 면모를 보여주는 일화들이 촘촘하다. 고교 시절 내내 숙소 화장실을 청소하면서도 불평 한마디 없었다는 이야기는 겸손하고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성품을 보여준다. “세상 꼭대기에 있게 될 선수들이 하찮은 일도 해봐야 한다”며 화장실 청소를 맡긴 인물이 오타니에게 만다라트(한 가지 목표에 8가지 실천 과제를 설정하는 자기 단련법)를 알려준 사사키 히로시 감독이다.

에인절스 입단 초기 수직 점프력 테스트에서 평범한 결과를 냈던 오타니는 유튜브를 보며 익힌 기술로 한 달 만에 팀내 최고 수준으로 올라섰다. 5~6㎝만 늘어도 큰 발전인데 23㎝를 더 뛰었다고 한다. 경기가 끝나고 한참이 지나도록 라커룸 당구대에서 게임에 몰두하는 그를 보며 조 매든 감독은 서문에 이렇게 썼다. “늘 겨루고 경쟁 자체를 순수하게 재미있어 하는 사람, 그게 쇼헤이다.”

◇다른 이들을 꿈꾸게 하는 개척자

“나는 더 많은 사람들이 야구를 보고, 야구를 좋아하게 되기를 바란다.” 2018년 야구 시즌에 에인절스 연고지를 찾은 일본인 관광객은 직전 두 해에 비해 4% 늘었다. 오타니 선발 경기는 다른 경기에 비해 관중이 5000~6000명 더 들어온다. 오타니는 만족하지 않고 야구를 바꿔나가는 중이다. 저자는 오타니 이후 메이저리그 구단들이 투타 겸업의 가능성을 재고하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드물지만 오타니처럼 겸업을 시도하는 선수들의 플레이가 재조명받고, 오타니의 성공은 여러 포지션을 소화하고자 하는 어린 선수들의 롤모델이 되고 있다.

오타니는 지난 9월 두 번째 팔꿈치 수술을 받았다. 집도의의 전망처럼 그가 2025년에 다시 투수와 타자로 뛸 수 있을지, 올 시즌이 끝나고 FA(자유계약선수) 자격을 얻는 그가 에인절스에 계속 남을지는 지금 알 수 없다. 한 가지는 확실하다. 오타니의 ‘위대한 시즌’은 통념에 도전하는 개척자가 역사를 만들고 다른 이들을 꿈꾸게 하는 현장이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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