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봉투법, 5000여 하청사 노조가 현대차에 임협 요구할 수도”

한재희 기자 2023. 11. 11. 0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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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봉투법 파장] “산업계 마비” vs “약자 보호”… 쟁점은
⑴ 근로계약 직접 안맺어도 ‘사용자’… 1, 2, 3차 협력사와도 교섭 나서야
⑵ 노동쟁의 발동 조건 대폭 넓혀… 임금 아닌 회사 이전 놓고 파업 가능
⑶ 회사에 파업손해 입증 책임 강화… 노조원 개별 물어야 할 돈 증명해야
“1년 내내 노동조합 파업에 대응만 하다 정작 기업을 성장시키는 데 집중하지 못할까 두렵습니다.”(대기업 A 임원)

이른바 ‘노란봉투법’으로 불리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 3조 개정안이 9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경영계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노조 파업에 보다 ‘관대한 기준’이 적용될 경우 불법 파업이 더 활개를 칠 것으로 예상돼서다. 반면 노동계에서는 “약자들의 교섭권을 보장하자는 것”이라며 노란봉투법 시행을 촉구하고 나섰다.

● 쟁점1: 하청업체 근로자와 원청 간 교섭

10일 재계와 노동계 등에 따르면 노란봉투법 시행과 관련한 핵심 쟁점 중 첫 번째는 ‘사용자의 범위 확대’에 있다. 사용자는 대법원 판례에 의해 지금까지 ‘근로계약 관계에 있는 자’로 해석돼 왔다. 하지만 노란봉투법은 사용자 개념을 ‘근로조건에 대해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자’라고 정의하고 있다. 결국 근로계약을 직접 맺지 않더라도 임금이나 근로시간에 실질적 영향을 끼치면 모두 사용자라고 볼 수 있는 셈이다.

노동계에서는 간접·특수고용 노동자의 경우 원청 기업이 근로조건에 실질적으로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한다. 원청과의 교섭권은 이들의 산업 안전과 처우 개선을 위한 장치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노란봉투법이 시행되면 지난해 CJ대한통운 본사 점거 농성까지 벌인 택배노조도 하청 대리점이 아닌 본사와 직접 교섭에 나설 수 있다.

경영계는 강하게 반발한다. 한 재계 관계자는 “현대자동차와 기아의 협력사가 5000개가 넘는다”며 “하청업체 근로자들이 원청을 대상으로 임금 협상을 요구하면 교섭이 가능하기나 할까”라고 반문했다. 삼성 SK LG 등 다른 대기업들도 1차 협력업체만 수백 곳에 이르고, 2∼3차로 범위를 넓히면 1000개가 훌쩍 넘는다.

김동욱 세종 변호사는 “항공모함에 여러 비행기가 실려 있듯이 여러 납품업체를 거느린 업체를 ‘기함기업’이라고 하는데 이들에 미치는 영향이 특히 클 것”이라고 말했다.

김상민 태평양 변호사는 “대법에서 사용자 범위에 대한 판례가 확정되는 데 5년까지도 걸린다. 그동안 산업계가 큰 혼란에 빠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 쟁점2: 합법적 파업 대상 확대

노란봉투법에서 노동쟁의를 벌일 수 있는 발동 조건을 대폭 넓힌 것도 논란거리다. 기존에는 ‘근로조건 결정에 관한 주장의 불일치’가 발생하는 다툼을 노동쟁의로 정의했다. 하지만 노란봉투법에서는 해당 문구에서 ‘결정’이라는 표현을 빼버렸다. 이전에는 노사가 합의해 결정하도록 돼 있는 임금, 근로시간, 복지 등에 대해 의견이 불일치할 때 노동쟁의가 발생했다. 하지만 노란봉투법이 시행되면 노사 합의에 의해 결정할 사안이 아닌 ‘해고자 복직’ ‘부당 징계 철회’ ‘회사 소재지 이전’ 등에서도 노사 간 의견이 불일치하면 파업이나 태업, 피케팅 등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노동계는 “지금은 사용자가 해고 등 부당노동행위를 해도 노동자가 대처할 수단이 없어 단결권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황용연 한국경영자총협회 노동정책본부장은 “법원이나 노동위원회에서 잘잘못을 가려야 하는 사안까지 임금 및 단체협약(임단협) 테이블에 올린 뒤 관철되지 않으면 쟁의권을 남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중소·중견기업들도 걱정이 크다. 경기의 한 가전 부품업체 대표는 “대기업 노조 파업과 농성이 길어지면 협력업체 피해도 커지게 될 것”이라고 했다.

● 쟁점3: 회사의 손해배상 입증 책임 강화

경영계는 이번 개정안이 시행되면 노동자의 불법적인 쟁의행위에 대한 손해배상 요구도 사실상 무력화된다고 본다. 파업에 대한 손해배상을 청구할 때 노조 개개인이 회사에 얼마의 손해액을 발생시켰는지 회사가 일일이 입증해야 한다는 조항이 신설됐기 때문이다. 재계 관계자는 “명찰을 떼고, 복면이나 마스크를 쓴 채 회사를 점거하거나 폭력행위를 한 경우 폐쇄회로(CC)TV로 가해자를 식별하기 어렵다”며 “형사고발을 해도 솜방망이 처벌이 나오는 경우가 많았는데 손해배상까지 막히면 노조의 불법행위를 통제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했다.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날 원내대책회의에서 “노조가 사업장을 불법으로 점거해도, 불법 폭력으로 공장 가동을 멈춰 막대한 손실을 끼쳐도 치외법권의 특권을 부여하겠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노동계에서는 이것이 기업의 보복성 손해배상 청구를 막기 위한 조항이라고 주장한다. 기업들이 ‘손배 가압류 폭탄’으로 노조를 윽박지르던 ‘나쁜 관행’을 막자는 것이다.

대통령실은 구체적인 언급은 삼가고 있지만, 대통령의 재의요구권 행사가 불가피하다고 보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덕수 국무총리도 이날 국무회의에서 “(경제와 국민 생활에 심대한 영향을 끼칠 법안이) 충분한 숙의 없이 처리되는 상황이 참으로 답답하고 안타깝다”고 했다.

반면 더불어민주당은 “노란봉투법은 노동 3권 보장을 위한 법”이라며 윤석열 대통령의 법안 공포를 촉구했다. 박주민 원내수석부대표는 이날 MBC 라디오에서 “(개정안은) 그동안 생성되고 축적돼 왔던 판례를 반영한 정도의 법”이라고 말했다.

한재희 기자 hee@donga.com
주애진 기자 jaj@donga.com
김준일 기자 ji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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