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갗 물씻김의 세련미 가득한 자연박물관[전승훈의 아트로드]
자은도는 신안군의 1004개 섬의 경이로운 자연을 담은 수석(壽石)과 조개, 자생식물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자연박물관의 섬이기도 하다.》
● 섬과 바다를 품은 돌과 정원
KTX 목포역에서 자동차로 1시간이 걸리는 자은도의 양산해변에는 분홍색 핑크뮬리가 바람에 흩날리는 모래언덕이 있다. 넓게 펼쳐진 해송숲 옆으로 사막의 풍경을 방불케 한다.
사구의 표면에는 파도처럼 잔물결이 일어나는가 하면, 달 표면처럼 무언가로 긁은 듯한 독특하고 신비로운 문양이 새겨져 있다. 바람이 만들어낸 생생한 아트다. 모래언덕 앞에는 피아노 한 대가 놓여 있다.
수석미술관에는 원수칠 관장과 기증자들이 수십한 약 1004개의 수석이 전시돼 있다. 어떤 돌은 섬을 닮았고, 산맥을 이루는가 하면, 폭포처럼 흘러내린다. 그런가 하면 사람의 얼굴이나 동물 모양의 돌도 있다. 신안의 명물인 뻘낙지와 홍어의 모습이 새겨진 돌도 있다. 수석은 자연의 아름다움이 돌 하나에 담긴 축경(縮景)의 오묘함을 즐길 수 있는 예술품이다.
옛사람들은 실제 여행을 다니며 풍경을 보기 어려우면 집 안에 산수화 그림을 걸어놓거나 나무를 작은 화분에 심은 분재, 자연을 닮은 수석을 놓고 즐겼다. 집 안에서도 자연의 기운생동을 느끼는 ‘와유산수(臥遊山水)’의 풍습이다. 자은도 수석미술관에는 실제로 유명한 화가의 산수화 그림과 닮은 수석을 전시해 눈길을 끈다.
“수석은 움직이지 않으며 감각이 없는 무생물이지만 상상의 나래 속에 수석은 다양한 몸짓과 연상으로 우리에게 큰 감흥을 안겨주는 살아 있는 생물이다.”(원수칠 수석미술관장)
수석미술관에는 좋은 수석을 고르는 방법도 적혀 있다. 그중에 ‘돌갗(돌의 피부)의 물씻김이 세련돼야 한다’는 말이 인상깊었다. 사람의 살갗(피부)처럼 수석도 돌갗을 갖고 있기 마련이다. 수석은 물로 씻으면 선명하고 진한 색채를 드러내 ‘水石’이라는 한자를 쓰기도 한다. 물에 씻긴 ‘쌩얼’이 가장 화려하고 세련된 것이 바로 좋은 수석이라는 설명이다.
● 갯벌을 맑게 하는 보석 조개
섬에는 갯벌이 있고, 건강한 갯벌에는 조개가 살고 있다. ‘1004뮤지엄파크’의 또 다른 볼거리는 세계조개박물관이다. 입구에 들어서면 커다란 유리 안에 형형색색의 조개와 고둥이 벽을 채우고 있는데 자연이 만들어낸 보석처럼 반짝반짝 빛난다.
신안의 갯벌은 우리나라 전체 갯벌 면적 중 15%를 차지할 정도로 중요한 지역이다. 그중 증도갯벌은 세계 람사르협약 등록습지이고, 비금-도초도 갯벌은 해양수산부가 습지보호구역으로 지정했다. 갯벌의 유기물을 먹으며 생존하는 조개와 고둥은 갯벌을 정화하는 가장 중요한 생물이다. 껍데기가 두 장인 조개류는 각종 장신구와 나전칠기로, 껍데기가 하나로 돼 있는 고둥은 악기로 활용돼 온 역사도 전시된다.
특히 앵무고둥이 껍데기 속 공간에 공기를 채워 부력을 조절해 바닷속을 떠다니는 원리가 잠수함과 선박 설계에 응용되기도 했다는 부분은 매우 흥미롭다. 조개박물관 전시장 끝부분에는 각종 조개로 만든 꽃이 전시돼 있다. 홍합, 꼬막, 바지락, 대합, 가리비로 만든 꽃잎이 어떤 그림이나 조각보다 더 감동을 준다.
● 무한의 다리
폭 2m의 나무로 만든 다리는 중간에 작은 섬인 구리도를 거쳐 종점인 할미도까지 이어진다. 다리의 총 길이는 정확히 1004m. 원형의 다리 난간이 빙글빙글 돌아가는 ‘무한의 다리’를 걷다 보면 섬과 섬을 돌며 끝없이 이어질 것만 같다. 다리를 걷다 보면 갯벌의 풍경이 드넓게 펼쳐진다. 이곳엔 밀물 때 들어온 물고기가 썰물 때 갇혀 나가지 못하도록 하는 전통 어로 방식인 ‘독살’도 남아 있다. 종점인 할미도에 가면 섬의 이름이 유래가 된 할미바위가 외롭게 서 있다.
고기잡이를 나가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기다리던 아내가 소나무 위에서 남편을 기다리다가 거꾸로 땅에 떨어져 죽은 뒤 나무가 자라났다는 슬픈 전설이다. 분계해변은 여인송 외에도 200년 전 방품림으로 조성된 울창한 해송군락이 멋진 곳이다. 해수욕과 산림욕을 함께 즐길 수 있는 해변 산책길이다.
자은도(신안)=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Copyright © 동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집값 하락하자 급락한 종부세 세수… ‘곳간 빈’ 정부는 내년 어떻게 할까[황재성의 황금알]
- “노란봉투법, 5000여 하청사 노조가 현대차에 임협 요구할 수도”
- 바이든-시진핑, 15일 美서 1년만에 정상회담
- 이준석 신당의 길 [오늘과 내일/정연욱]
- 가자지구 유치원·학교·병원 방패 삼은 하마스
- 챗GPT 1년… “AI 강사와 회화 공부” 급증, 학원가는 일자리 걱정
- 세상에 홀로 있는 듯 외로우신가요?
- ‘바비’ 케네디 아들의 돌풍… 확인된 정치 브랜드의 힘 [횡설수설/김승련]
- 부모 신분증으로 몰래 카드발급·연금도 빼먹은 40대 아들 부부
- 野 “탄핵안 30일 재발의” vs 與 “법적조치 총동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