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갗 물씻김의 세련미 가득한 자연박물관[전승훈의 아트로드]

자은도(신안)=전승훈 기자 2023. 11. 11. 0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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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신안군 자은도의 해송숲이 우거진 양산해변에 들어선 1004뮤지엄파크는 수석미술관과 세계조개박물관, 자생식물원 등을 한꺼번에 둘러볼 수 있는 해양복합문화단지다. 사진은 기암괴석과 연못으로 꾸며진 수석정원.
전남 신안군 자은도는 황금빛 모래와 해송숲이 아름다운 섬이다. 섬에는 바람이 불고, 거친 파도가 몰려온다. 바람은 모래언덕을 만들어내고, 파도는 기암괴석을 만들어낸다.

자은도는 신안군의 1004개 섬의 경이로운 자연을 담은 수석(壽石)과 조개, 자생식물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자연박물관의 섬이기도 하다.》

● 섬과 바다를 품은 돌과 정원

KTX 목포역에서 자동차로 1시간이 걸리는 자은도의 양산해변에는 분홍색 핑크뮬리가 바람에 흩날리는 모래언덕이 있다. 넓게 펼쳐진 해송숲 옆으로 사막의 풍경을 방불케 한다.

양산해변 모래언덕 위 두 개의 나무의자는 푸른 물결을 멍하게 바라보기 좋은 곳이다.
모래언덕 위에는 두 개의 나무로 만든 의자가 놓여 있어 해변의 푸른 물결을 멍하게 바라볼 수 있다. 양산해변의 50만 ㎡에 이르는 모래사장은 바람의 방향과 세기에 따라 크기와 모습이 달라지는 모래언덕을 만들어낸다.

사구의 표면에는 파도처럼 잔물결이 일어나는가 하면, 달 표면처럼 무언가로 긁은 듯한 독특하고 신비로운 문양이 새겨져 있다. 바람이 만들어낸 생생한 아트다. 모래언덕 앞에는 피아노 한 대가 놓여 있다.

자은도는 ‘피아노의 섬’으로 불리기도 한다.
‘피아노의 섬’ 자은도에서는 문화의 달 10월에 104대의 피아노를 함께 연주하는 피아노 축제가 펼쳐지기도 했다. 양산해변에 조성된 ‘1004뮤지엄파크’(입장료 1만 원)에는 수석미술관과 세계조개박물관, 자생식물원, 새우란전시관, 자연휴양림 등을 한꺼번에 둘러볼 수 있다. 가장 먼저 발길이 닿는 곳은 수석미술관과 수석정원이다. 수석은 기이한 모양의 자연석이다. 섬에는 파도의 물결에 오묘한 색깔과 문양이 새겨진 돌멩이들이 많이 난다. 흑산도는 문양석, 홍도는 월석, 장도는 괴석, 태도는 꽃돌, 장산도는 항아리석, 하의도는 초코석, 안좌도는 옥석, 영산도는 태양석, 비금도는 꼭지석, 선도는 혹돌이 많이 난다고 한다.

수석미술관에는 원수칠 관장과 기증자들이 수십한 약 1004개의 수석이 전시돼 있다. 어떤 돌은 섬을 닮았고, 산맥을 이루는가 하면, 폭포처럼 흘러내린다. 그런가 하면 사람의 얼굴이나 동물 모양의 돌도 있다. 신안의 명물인 뻘낙지와 홍어의 모습이 새겨진 돌도 있다. 수석은 자연의 아름다움이 돌 하나에 담긴 축경(縮景)의 오묘함을 즐길 수 있는 예술품이다.

옛사람들은 실제 여행을 다니며 풍경을 보기 어려우면 집 안에 산수화 그림을 걸어놓거나 나무를 작은 화분에 심은 분재, 자연을 닮은 수석을 놓고 즐겼다. 집 안에서도 자연의 기운생동을 느끼는 ‘와유산수(臥遊山水)’의 풍습이다. 자은도 수석미술관에는 실제로 유명한 화가의 산수화 그림과 닮은 수석을 전시해 눈길을 끈다.

민화 ‘운룡도’와 닮은 수석 ‘운룡도의 용’.
김홍도의 ‘구룡연 폭포’와 겸재 정선의 ‘단발령에서 바라본 금강산’, 국립민속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민화 ‘운룡도’를 걸어놓고 그 밑에 그림과 빼닮은 수석을 놓아 비교해보는 즐거움을 준다.

“수석은 움직이지 않으며 감각이 없는 무생물이지만 상상의 나래 속에 수석은 다양한 몸짓과 연상으로 우리에게 큰 감흥을 안겨주는 살아 있는 생물이다.”(원수칠 수석미술관장)

수석미술관에는 좋은 수석을 고르는 방법도 적혀 있다. 그중에 ‘돌갗(돌의 피부)의 물씻김이 세련돼야 한다’는 말이 인상깊었다. 사람의 살갗(피부)처럼 수석도 돌갗을 갖고 있기 마련이다. 수석은 물로 씻으면 선명하고 진한 색채를 드러내 ‘水石’이라는 한자를 쓰기도 한다. 물에 씻긴 ‘쌩얼’이 가장 화려하고 세련된 것이 바로 좋은 수석이라는 설명이다.

수석정원에 있는 백두산 천지를 닮은 바위.
수석미술관은 외부 수석정원으로 이어진다. 고인돌 같은 석문을 지나면 7000㎡ 부지에 3000t에 이르는 기암괴석과 200여 종의 야생화, 100여 종의 분재로 이뤄진 경이로운 비원(祕苑)이 펼쳐진다. 기암괴석과 나무가 어우러진 사이로 시내가 흐르고, 연못과 폭포가 형성돼 있다. 커다란 바위는 주변이 뾰족뾰족한 봉우리로 둘러싸인 가운데 움푹 파인 곳에 물이 고여 있는데 백두산 천지를 연상케 하는 정원석이다.

● 갯벌을 맑게 하는 보석 조개

섬에는 갯벌이 있고, 건강한 갯벌에는 조개가 살고 있다. ‘1004뮤지엄파크’의 또 다른 볼거리는 세계조개박물관이다. 입구에 들어서면 커다란 유리 안에 형형색색의 조개와 고둥이 벽을 채우고 있는데 자연이 만들어낸 보석처럼 반짝반짝 빛난다.

세계조개박물관에 전시된 보석처럼 빛나는 조개와 고둥들.
이곳에는 세계 각국의 조개와 고둥 1만1000점이 전시되고 있는데, 임양수 땅끝해양자연사박물관 관장이 기증한 것이다. 40여 년간 원양어선 선장 생활을 했던 그는 태평양과 호주, 남극 바다의 조개, 고둥류까지 수만 점을 모았다고 한다.
세계조개박물관에 전시돼 있는 대왕조개.
전시장에 들어가면 크기가 89cm에 이르는 ‘대왕조개’가 있다.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 그림에 나오는 바로 그 조개다. 남태평양의 얕은 산호초에서 자라는 대왕조개는 다 크면 무게가 200kg을 넘고, 크기도 150cm 정도로 커진다. 평균 수명이 100년이 넘고, 최대 500세가 넘는 대왕조개도 있다고 한다. 거대한 조개이다 보니 ‘사람을 잡아먹는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지만 대왕조개는 양쪽의 껍데기가 완전히 닫히지 않아 사람을 물 수는 없다고 한다.

신안의 갯벌은 우리나라 전체 갯벌 면적 중 15%를 차지할 정도로 중요한 지역이다. 그중 증도갯벌은 세계 람사르협약 등록습지이고, 비금-도초도 갯벌은 해양수산부가 습지보호구역으로 지정했다. 갯벌의 유기물을 먹으며 생존하는 조개와 고둥은 갯벌을 정화하는 가장 중요한 생물이다. 껍데기가 두 장인 조개류는 각종 장신구와 나전칠기로, 껍데기가 하나로 돼 있는 고둥은 악기로 활용돼 온 역사도 전시된다.

특히 앵무고둥이 껍데기 속 공간에 공기를 채워 부력을 조절해 바닷속을 떠다니는 원리가 잠수함과 선박 설계에 응용되기도 했다는 부분은 매우 흥미롭다. 조개박물관 전시장 끝부분에는 각종 조개로 만든 꽃이 전시돼 있다. 홍합, 꼬막, 바지락, 대합, 가리비로 만든 꽃잎이 어떤 그림이나 조각보다 더 감동을 준다.

● 무한의 다리

자은도 ‘무한의 다리’는 둔장해변에서 구리도, 할미도로 이어진다.
자은도 둔장해변에는 ‘무한의 다리’가 있다. 2019년 8월 8일 ‘섬의 날’을 기념해 스위스 출신의 세계적인 건축가 마리오 보타와 조각가 박은선의 협업으로 지어진 다리다. ‘8’이라는 숫자를 옆으로 누이면 무한대를 의미하는 ‘∞’가 된다는 뜻으로 ‘폰테 델 인피니토(Ponte Dell Infinito)’라는 이름이 붙었다.

폭 2m의 나무로 만든 다리는 중간에 작은 섬인 구리도를 거쳐 종점인 할미도까지 이어진다. 다리의 총 길이는 정확히 1004m. 원형의 다리 난간이 빙글빙글 돌아가는 ‘무한의 다리’를 걷다 보면 섬과 섬을 돌며 끝없이 이어질 것만 같다. 다리를 걷다 보면 갯벌의 풍경이 드넓게 펼쳐진다. 이곳엔 밀물 때 들어온 물고기가 썰물 때 갇혀 나가지 못하도록 하는 전통 어로 방식인 ‘독살’도 남아 있다. 종점인 할미도에 가면 섬의 이름이 유래가 된 할미바위가 외롭게 서 있다.

자은도는 해수욕장 9개와 50여 개에 이르는 해변이 있어 ‘휴양의 섬’으로 불린다. ‘1004섬 뮤지엄파크’ 인근에 있는 백길해변엔 5성급 호텔인 라마다호텔이 들어서 있다. 가을에는 백산리 분계해변 인근으로 노을이 진다. 분계해변의 울창한 해송숲 산책로를 걷다 보면 물구나무선 미끈한 각선미의 소나무를 만나게 된다. 이름하여 ‘여인송(松)’이다.

고기잡이를 나가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기다리던 아내가 소나무 위에서 남편을 기다리다가 거꾸로 땅에 떨어져 죽은 뒤 나무가 자라났다는 슬픈 전설이다. 분계해변은 여인송 외에도 200년 전 방품림으로 조성된 울창한 해송군락이 멋진 곳이다. 해수욕과 산림욕을 함께 즐길 수 있는 해변 산책길이다.

자은도(신안)=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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