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매도 규제해도 증시 냉·온탕…선진시장 진입 저해 우려
공매도 금지 어떤 영향 끼쳤나
“거품 낀 종목, 제동 못걸게 돼”
앞서 5일 금융위원회는 최근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전쟁 등으로 지정학적 리스크가 커진 가운데 국내 증시의 불안이 가중되고 있다며 내년 6월 30일까지 약 8개월간 공매도를 금지한다고 발표했다. 공매도는 주가 하락을 예상하고 주식을 보유하지 않은 상태에서 주식을 빌려 매도 주문을 행사, 체결해 수익을 내는 투자 기법이다. 한국은 증시에서 ‘큰손’ 기관·외국인 투자자들이 대규모 공매도로 하락장을 유발한다는 지적이 많았다. 따라서 공매도 금지는 증시에 대형 호재로 보였는데, 시장은 아직 갈팡질팡하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그 이유를 몇 가지로 분석한다. 우선 조치 첫날의 상승장은 숏커버링(공매도를 했지만 주가 반등이 예상되자 손실을 줄이기 위해 주식을 더 매입하는 것) 때문이었을 뿐, 중·장기적으로 외국인 자금 이탈 가능성이 커지면서 단기 차익 실현 수요가 늘고 있다는 해석이다. 통상 공매도는 외국인 투자 수요 증가와 이에 따른 증시의 유동성 공급 확대가 순기능으로 꼽힌다. 하지만 이번 조치로 공매도를 8개월간 못하게 된 점을 고려했을 때 한국 증시의 투자 메리트가 떨어졌다고 보고 다른 투자처로 눈을 돌리는 외국인이 늘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국내 증시에서 공매도 주체는 최근 한 달간 외국인 74%, 기관 24%, 개인 투자자 2% 등으로 외국인 비중이 월등히 높다.
개미에게 기울어진 운동장 개선해야
한국 증시의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선진국 지수 편입에 걸림돌이 되는 조치일 수 있다는 것이다. 블룸버그는 이번 조치가 한국의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나온 것으로 정치적 목적이 강하다는 해석도 덧붙였다. 이는 윤석열 정부의 달라진 태도와 무관치 않다. 윤 대통령의 복심으로 꼽히는 검찰 출신의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3월만 해도 “올해는 규제 완화의 해”라며 “연내 공매도 금지 해제를 희망한다”고 언급했다. 그런데 이번 조치가 나온 직후엔 “공매도 금지는 불가피하다”고 말을 바꿨다.
전례로 보면 공매도 금지가 상승장으로 직결되진 않는다는 점도 시장에서 드라마틱한 신규 투자 수요 유입을 확신하지 못하는 이유다. 금융위기에 따른 국내 첫 공매도 금지기였던 2008년 10월 1일부터 2009년 5월 31일까지를 보면 코스피는 조치 1개월 뒤 -23%, 3개월 뒤 -22%, 조치 해제 직전에도 -3% 등으로 수익률이 마이너스였다. 당시 외신은 공매도 금지 뒤 외국인의 잇따른 주식 매도로 국내 증시가 힘을 못 내고 원화 가치도 급락했다고 평가했다.
반면 코로나19 팬데믹으로 2020년 3월 16일부터 이어진 세 번째 공매도 금지기에는 증시도 활짝 웃었다. 조치 직전 1700선까지 내려앉았던 코스피는 2021년 1월 25일 3200선까지 상승했다. 그사이 금융위는 당초 6개월 예정이던 공매도 금지 기간을 2021년 5월 2일까지 연장하고, 이후 코스피200과 코스닥150에 한해 공매도를 부분 재개했다. 이 같은 세 번째 공매도 금지기에 코스피 수익률은 78%, 코스닥은 88%에 달했다.
그러나 팬데믹에 따른 경기 침체 우려로 전 세계가 유동성 공급에 사활을 걸었던 시기이기에 증시에도 자연스레 유동성이 몰렸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때의 증시 호황을 단순히 공매도 금지 때문으로 보기엔 무리라는 분석도 나온다. 자본시장연구원은 최근 보고서에서 “공매도 규제는 증시에서 가격 효율성 저하, 극단수익률 발생 빈도 증가, 거래 회전율 하락 등을 유발하는 것으로 관찰된다”며 “공매도의 순기능을 유지하되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운영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관건은 앞으로 8개월간 공매도 제도를 어떻게 개선하느냐다. 정부는 이번 공매도 금지기에 전문가 및 유관기관과 협의를 거쳐 공매도 제도 개선 방안을 마련, 시행한다는 계획이다. 국내에서 공매도 자체가 개인 투자자와 기관·외국인 간 ‘기울어진 운동장’을 만드는 주범이라는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한 만큼, 정부가 당장의 증시 향방에 일희일비하기보다는 이를 근본적으로 해소할 방안을 제시하는 게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정의정 한국주식투자자연합회 대표는 “정부 조치를 환영하지만, (정부가) 단순한 공매도 금지에 그치지 않고 금지기 동안 제대로 된 제도 개선에 힘써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창균 기자 smi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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