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숨죽인 미술시장…조정기냐 침체기냐[박현주 아트클럽]
개인 수집가들, 미술품 구매 신중 모드
투자 심리 위축 "유찰 증가·가격 하락 급물살" 전망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국내는 물론 세계 미술시장이 조정기에서 침체기 양상으로 들어서고 있다. 최근 몇 년간 호황기를 누린 미술시장이 올 들어 매수 관망세가 짙어지고 있다. 경매시장도 활기를 잃었다. 낙찰률이 예년과 달리 반토막 수준으로 내려앉았다. 경기불황 속에도 성장세를 유지했던 미술시장이 갑자기 숨죽이고 있는 모양새다. 시장 전문가들은 고물가·고금리 속 투자와 매수 심리가 위축, 작품 거래량이 감소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11월 발표한 Art Basel과 UBS 보고서에 따르면 수집가들은 미술품 구매에 점점 더 신중을 기하고 있다. 2800명의 고액자산가(HNW)를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실시한 이 보고서에서 2023년 개인 수집가들은 다른 금융 자산에 비해 미술품에 소요되는 자금 비중을 2022년 24%에서 2023년 19%로 낮췄다.
미술품 판매에 대한 보수적인 태도도 드러났다. 소장하고 있는 작품을 판매할 의향을 밝힌 수집가는 전체 비중의 26%로 2022년 보고된 39%에 비해 감소한 수치를 나타냈다.
숨죽인 미술시장…3분기 경매시장 낙찰률 급감
올해 3분기 국내 미술품 경매 시장(서울옥션·케이옥션·마이아트옥션)의 낙찰 총액은 259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3.5% 떨어졌다. 판매 작품 수(414점)와 낙찰률(65.51%)은 각각 14.67%, 10.23% 낮다. 10억 이상에 낙찰된 작품은 총 5점으로, 이 가운데 3점은 고미술이며, 이우환과 야요이 쿠사마 작품이 각각 1점이었다.
해외 미술품 경매 시장도 마찬가지. 지난 10월 5~6일 진행된 소더비와 필립스의 홍콩 경매 판매 총액은 10억6000만 홍콩 달러(약 1779억 원)로 전년 동기 대비 5.45% 감소했다. 올 봄 경매와 비교하면 28.11% 급감한 수치다.
유명 대가의 작품은 팔리지만 가격이 높게 치고 나가지 못하고 있다.
10월5일 열린 소더비홍콩 경매에서 3490만 홍콩 달러(약 471억원, 수수료 포함)에 낙찰된 모딜리아니의 ‘폴레트 주르댕’이 보여준다. 이 작품은 2015년 뉴욕 소더비 경매에서 4281만 달러(약487억원, 수수료 포함)에 낙찰, 당일 경매 최고가를 기록하면서 아시아의 구매력 상승을 보여주는 지표가 되기도 했다.
소더비는 이 작품의 낙찰가를 4500만 달러(약 609억원)로 추정했지만 2015년 보다 낮은 가격에 낙찰되면서 실질적으로 손해를 보고 판매를 한 결과를 보였다. 또한 같은 날 경매에 출품 된 40점 중 10점이 유찰 되기도 했다.
한국미술품 감정연구센터 정준모 대표는 "불과 몇 년 전 까지만 하더라도 경합을 이루며 거래되었던 작품들이 하한가 선에서 겨우 낙찰되거나 유찰이 되는 사례가 많아지고 있다"며 "이런 양상이 지속되면 침체기는 가속화된다. 결국 가격을 조정해서라도 팔겠다는 판매자가 나서고 이후부터는 가격 하락의 급물살을 탈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술시장 전문가들에 따르면 조정기는 공급 부족 현상에서부터 시작된다. 호황기 최고점을 찍었던 작품들은 그 가격을 유지하고자 하는 원리다.
미술시장 애널리스트 이호숙 대표는 "시장 상황에 맞게 움직이고자 하는 구매 수요는 하락하기를 기다리게 되는데, 일정 기간 동안은 조금의 양보도 없이 이들의 욕구가 대립하게 되며 보합세를 유지하게 된다. 이같은 분위기는 경매를 해야하는 경매사들이 협상력을 발휘할 수 없는 상태가 돤다"면서 "때문에 높은 가격에 출품 된 작품들이 맥 없이 유찰되고, 낙찰율이 하락하는 결과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최적의 매각 타이밍을 놓쳤던 기존 수요 모두 관망세로 돌아서 거래 급랭으로 시장이 침체기로 접어들고 있다는 설명이다.
아트페어도 열기 식어…런던보다 파리서 판매 급증
미술시장은 경기와 정부 정책과 연동된다. 구매력의 관건은 세금 정책과 운송, 보관, 교통 등의 인프라의 경쟁력이다. 지난 10월 열린 '프리즈 런던'과 '아트바젤 파리'가 증명한다. 런던보다 파리에서 매출이 뛰었는데, 이는 정부의 지원과 브렉시트로 인해 변동된 세금 정책 등이 크게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조각투자 논란 속 시장 위축…가격 산정 근거가 문제
2018년부터 자본시장의 규제를 받지 않는 조각투자가 등장했지만 증권여부에 대한 논란이 제기되면서 2021년 11월, 증권선물위원회는 조각투자를 투자계약증권으로 판단했다.
이에 조각투자사들은 사업을 중단했고 2022년 4월, 조각투자 등 신종 증권 사업 관련 가이드 라인에 준하여 투자자 보호 조치안을 마련하여 제출하도록 해 지난 7월 제재가 면제됐다. 면제를 받은 조각투자사는 투게더 아트, 열매컴퍼니, 서울옥션블루, 테사 4개사와, 추가 면제된 바이셀 스탠다드와 알티너스, 총 6개사다.
하지만 '가격의 적정성 문제'가 발생하면서 1호로 투자이행증권을 발행한 투게더아트가 20일만에 자진 철회 했다. 투게더 아트는 공모 자금 7억9000만원을 조달해 미국 작가 스탠리 휘트니의 작품 'Stay Song 61'을 7억2000만원에 취득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최대주주인 케이옥션에서 취득 가격을 높게 산정할 수 있다는 논란이 불거지면서 문제가 됐다. 이같은 자진철회는 소싱, 발행, 감정, 보관, 관리, 처분을 발행사 및 연관 회사에서 담당하는 것에 대한 우려를 증폭시키는 사례였다.
정준모 대표는 "가장 우려되는 부분은 검증의 자격을 부여받은 감정평가사가 조각투자발행사 내부에서 자체적으로 평가한 가격을 그대로 받아서 인증해주는 구조적 역할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점을 지적했다.
한편 미술시장의 흐름(2000년부터 2023년)을 뒤돌아보면, 2006-8년/2020-2022년의 뚜렷한 호황기를 기점으로 그 이전과 이후의 양상이 거의 유사한 패턴으로 형성되었던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꼭지점에 이르러서는 일정 기간 보합세를 이루다가 급격히 하락하는 모양새를 보이고, 이후 완만한 상승선을 따라 가다가 일정 시점에서 또 다시 정점을 찍는 호황기 시장에 이르게 되며 이후에는 또 같은 양상이 반복된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미술시장 분석보고서를 분기별로 제출하는 한국미술품감정연구센터는 "현재 시장은 놀랄 만큼의 위기도 아니다. 기간으로만 본다면 오히려 다시 일상적인 시장으로 되돌아왔다고 할 수 있다"고 짚었다.
MZ 컬렉터들의 등장으로 미술시장이 과열된 건 사실이다. 플렉스(Flex·자기과시)의 최고 수단이지만 '아트테크'는 보는 만큼이 아닌 아는 만큼 돈 번다. '학이시습지(學而時習之)면 불역열호(不亦悅乎)아라, 미술품은 장기 투자다. 파는 것도 사는 것만큼 타이밍이 중요하다. 그림은 귀로 듣고 사면 안된다. 조정기이든 침체기이든 차분해진 시기, '그림 공부'하기 딱 좋은 시기다.
☞공감언론 뉴시스 hyun@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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