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사 1품목’ 세계 1등 만들자…고객만족경영 마스터플랜 짜
삼성 신경영 30년, 혁신의 길을 묻다 ③ 목표는 세계 일등이다
인재 확보·R&D·과감한 투자 병행
이 회장이 1993년 10월 비주류였던 현명관 사장을 그룹 2인자인 비서실장으로 앉힌 것도 자신이 꿈꾸는 세계 일등을 실현하라는 명령이었다. 큰 그림을 짜라는 지시도 있었다. 현 실장의 관심은 온통 여기에 집중됐다. 목표는 명확하다. 세계 1등이고 초일류기업이다. 방향도 정해졌다. 질 경영이고 경쟁력이다. 남은 과제는 어떻게 할까였다.
신경영을 하려면 경영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꿔야 한다. 어떻게 바꿀까? 해답은 고객만족경영이었다. 사실 질 경영이 바로 고객만족경영이다. 질 경영은 품질과 가격, 납기, 애프터 서비스 등 모든 면에서 고객을 만족시키는 경영이라서다. 그렇게 만든 게 사진(아래)과 같은 신경영의 마스터플랜이다. 요약하면 이렇다. 신경영의 궁극적 목표는 세계 일등이고 초일류다. 가장 중요한 건 경쟁력이다. 일등이 되려면 경쟁력이 강화돼야 한다. 그런데 경쟁력은 고객이 판단한다. 이때의 고객은 넓은 의미의 고객이다. 임직원과 협력업체, 대리점은 내부고객이고 사회와 국민, 소비자는 외부고객이다. 내부고객이든 외부고객이든 고객들이 신뢰하고 만족할 때 기업은 경쟁력을 갖게 된다. 그때 비로소 세계 1등이 되고 초일류기업이 된다.
이 같은 큰 그림에서 나온 게 ‘1사 1품목’ 전략이다. 한 계열사에서 적어도 한 개 이상의 1등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운동이다. 현 실장의 말이다. “세계 초일류기업에 비하면 삼성의 역량이 부족하다. 링에서 일대일로 싸우기는 역부족이다. 전면전을 하면 백전백패할 거다. 국지전으로 바꾼 이유다. 1등 제품을 많이 만들면 좋겠지만 우리 역량이 부족하니 각 계열사가 한 품목만이라도 만들자는 취지였다.”
그룹 차원에서 10개 제품을 선정해 적극 지원하기로 했다. TV, 무선전화기, D램, 낸드플래시 메모리, MLCC(적층세라믹콘덴서), 브라운관, 2차전지 등이 선정됐다. 대성공이었다. D램 반도체는 연속으로 세계 최초 개발 기록을 세웠다. 1994년 8월 256메가 D램, 1996년 8월 1기가 D램이 그것이다. 1995년 8월에는 CDMA방식의 디지털 휴대폰을 세계 최초로 상용화했고, 이를 발판으로 2003년 세계 2위의 휴대폰업체가 됐다. 1998년 3월에는 128M 플래시 메모리를 세계 최초로 개발했고 그해 7월에는 TFT-LCD 세계 시장 점유율 1위, 10월에는 세계 최초의 디지털 TV 양산 기록을 세웠다. 현 실장은 “세계 1등 제품을 만들어낸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거기에 맞는 인재 확보는 물론 연구개발 및 투자가 오랫동안 꾸준하고 과감하게 행해져야 가능하다. 삼성은 이 회장의 결단으로 그 일을 시작했고 그것이 적중해 세계 일류기업로 우뚝 서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세계 일등이 되려면 삼성만 잘해선 안 된다. 부품도 세계 일류여야 하므로 협력업체도 세계 일류가 돼야 한다. 협력업체와 대리점도 신경영철학을 공유하도록 지시한 이유다. 게다가 고객 만족경영의 고객에는 협력업체와 대리점도 포함된다. 신경영에 협력업체와 대리점의 동반 육성이 들어 있던 까닭이다. 우선 협력업체와 대리점도 신경영 세미나에 참석하도록 했다. 1994년부터 4개월간 협력업체의 경영자 7천명, 대리점주 1만1천명이 참석했다. 신경영 철학을 공유하라는 의미였다. 또 원청업체인 삼성 계열사에 대한 협력업체와 대리점의 만족도 지수도 조사했다. 이렇게 조사한 FSI (Factory Satisfaction Index)를 계열사의 업적 평가에 반영했다.
내부 고객은 또 있다. 임직원이다. 이들이 진짜 내부 고객이다. 임직원이 1등이 돼야 기업도 세계 1등이 될 수 있다. 이 회장이 인재의 중요성을 지속적으로 강조한 까닭이다. “기업이 인재를 양성하지 않는 건 죄악”이며 “사람이 일류가 돼야 기업이 일류가 된다”고 했다. 질 경영에 제품과 서비스의 질은 물론 ‘사람의 질’이 들어 있는 이유기도 하다. 그래서 추진된 게 지역전문가 육성, 여성 인력 양성, 학력 철폐 등이다. 세계 일등이 되려면 세계 시장을 상대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게 지역전문가였다. 현지 문화를 모르고선 제품을 못 판다는 인식의 산물이다. 선발되면 세계 곳곳에 나가 회사 업무와 직접 관계없는 생활을 했다. 인맥을 구축하고 시장 동향도 수집했다. 그럼으로써 제품 개발과 마케팅에 활용했다. 지역전문가는 사실 돈이 많이 들었다. 연봉과 체재비 합쳐 당시 돈으로 대략 1인당 1억 원 이상 들어갔다. 매년 200명 이상 보냈으니 막대한 돈이 아닐 수 없다. 삼성이 1990년부터 시행했지만 중도 폐지했던 이유다. 하지만 신경영 이후 세계 일등을 목표로 하면서 지역전문가제도가 화려하게 부활했다.
협력사·대리점도 신경영 철학 공유
외부 고객에는 소비자와 사회, 국민이 있다. 협의의 외부 고객은 역시 소비자다. 소비자 만족을 위해 삼성은 갖은 노력을 기울였다. 소비자 만족도 지수 개발은 그런 노력 중 하나다. 특히 효과를 발휘했던 건 현지화 전략이었다. 나라마다 문화가 다르고 소득 수준이 다르니 소비자가 원하는 것도 다르다. 선진국의 소비자들은 부가 기능이 많이 들어있고 가격도 비싼 가전제품을 원한다. 하지만 개발도상국은 다르다. 꼭 필요한 핵심기능만 있으면서 가격이 덜 비싼 제품을 더 원한다. 지역별 상품 기획을 하게 된 이유다. 제품의 기능과 구조를 현지에 맞도록 바꾸고, 과잉 품질도 없애고, 생산도 현지에서 하자는 생각이었다. 1990년대 인도에서 냉장고를 팔 때 자물쇠가 달려 있는 냉장고와 냉동팩이 있는 냉장고를 만들어 큰 성공을 거둔 게 좋은 예다. 가정부가 냉장고 속 물건을 훔치는 일이 많고, 전력 사정이 원활하지 않다는 점을 제품개발에 활용한 덕분이다.
외부 고객에는 사회와 국민도 있다. 신경영에서 사회공헌활동을 강조한 이유다. 삼성은 달동네 개선사업을 시작했다. 이 회장의 지론 때문이다. “달동네에서 불우하게 자란 애들이 많아지면 이 나라가 어떻게 되겠나? 삼성이 탁아소를 하면 달동네의 부부가 여기에 아이를 맡기고 몇 년 열심히 일하면 집이 한 채 생긴다. 이것이 확 퍼지면 달동네 전체가 열심히 일하게 된다”고 했다. 후일 경영학자들이 ‘탁아소 윤리학’으로 명명할 정도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안내견 사업, 국내 최초 민간 구조단인 ‘삼성 3119구조단’등도 있다.
현 실장은 또 “사장단 회의에서 ‘사회문제화 가능 사안 보유 현황’을 작성하고 점검하는 회의도 했다”고 한다.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사회 문제를 미리 예측해 최소화하고, 그럼으로써 사회와 국민의 신뢰를 얻으려는 목적에서다. 현 실장이 제시한 1996년 5월 사장단 회의 자료에 따르면, 그룹 전체에서 모두 201건의 ‘사회 문제 가능화’ 사안이 취합됐다. 삼성중공업 30건, 삼성전자 23건, 삼성물산 18건 등이다. 대책도 들어 있다. 가령 삼성전자는 ‘대기오염물질에 의한 주변 농작물 피해’가 사회문제화될 수 있다면서 ‘오염물질 처리 시설 공사중’이라는 대책까지 내놓았다. 현 실장은 “사회문제가 될 걸 미리 예측하고 대응방안까지 제시하는 경우는 국내 기업 사상 전무했다”고 설명했다. 이제 남은 과제는 세계 1등을 겨냥한 질경영과 고객만족경영을 꾸준하고 일관되게 지속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기업구조를 만드는 일이다. 바로 경영구조와 사업구조 얘기다. 〈계속〉
정리=김영욱 기업과 제도연구소 대표·전 중앙일보 논설위원
현명관. 1993년 6월 이건희 회장이 신경영을 시작할 당시 삼성종합건설 사장이었다. 이후 이건희 회장 비서실장을 거쳐 삼성물산 대표이사 회장으로 승진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현 한국경제인협회) 상근 부회장과 한국 마사회 회장을 지냈다. 신경영 초기의 자료를 중앙SUNDAY에 제공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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