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벽면 스크린으로 덮일거야” 백남준 예언 현실로: 호크니 몰입형 전시 연 도형태 갤러리현대 대표

2023. 11. 11. 0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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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입형 전시장 '라이트룸 서울' 연 도형태 갤러리현대 & 에트나컴퍼니 대표
라이트룸 서울 전시장 내부에 앉아있는 갤러리현대와 에트나컴퍼니의 도형태 대표. [사진 안지섭]
“백남준 선생님이 90년대 말에 제게 말씀하셨어요. ‘나중에 네가 더 커서 자리 잡고 비즈니스를 할 때는 너희 어머니처럼 벽에 그림을 걸어놓고 파는 건 많이 하지 못할 거야. 모든 벽면이 스크린으로 덮이게 될 테니.’ 지금 점점 실현되고 있죠.”

한국의 대표 화랑 중 하나인 갤러리현대 도형태 대표(54)의 말이다. 비디오아트 거장 백남준(1932~2006)이 언급한 도 대표의 모친은 1970년 현대화랑을 설립해 지난 반세기 동안 한국 미술사의 한 축을 이끌어 온 박명자 회장(80)이다. 이렇게 유서 깊은 정통 화랑의 2세가 지난 11월 1일 서울 강동구 고덕동에 몰입형(immersive) 전시를 위한 공간 ‘라이트룸 서울’을 열었다. 그가 메타버스 전문가인 구준회 대표와 공동 창립한 기업 에트나컴퍼니가 운영하는 공간이다. 그간 순수미술계에서 몰입형 전시에 대해 거부감이 강했던 것을 생각하면 놀라운 일이다.

메타버스 전문가와 공동 창립·운영

빛을 뿜어내는 영상과 입체적인 사운드가 공간을 가득 채우는 몰입형 전시는 10여년 전부터 일본 ‘팀랩’의 프로젝트와 프랑스 ‘빛의 채석장’ 등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세계적으로 유행하고 있다. 국내에도 ‘빛의 벙커’, ‘아르떼 뮤지엄’ 등 몰입형 전시 공간이 잇달아 문을 열고 성업 중이다. 하지만 클림트, 반 고흐 등 유명 화가의 작품을 재구성한 전시가 많다는 것 외에는 오히려 미술계와 접점이 별로 없었다. ‘예술이 아니라 기술에 의존한 볼거리 오락일 뿐’이라는 시각이 많았다.

그런데 최근 몇 년간 순수미술계와 몰입형 전시가 급속히 가까워지고 있다. 2020년 정통 대형 화랑인 미국의 페이스 갤러리가 몰입형 미디어아트 전문 기업 ‘슈퍼블루’를 세웠다. 또한 올해 초 런던 ‘라이트룸’에서 현대미술 거장 데이비드 호크니가 직접 제작에 참여한 몰입형 전시 ‘데이비드 호크니: 비거 & 클로저(David Hockney: Bigger & Closer)’가 공개됐다. 라이트룸 서울이 개관전으로 시작해서 내년 5월 31일까지 여는 전시가 바로 이것이다. 라이트룸 서울은 라이트룸 런던과 독점 콘텐트 IP(지식재산권) 계약을 맺었다. 라이트룸 런던의 리처드 슬래니 CEO는 높이 12미터에 달하는 서울 전시장의 공간과 테크놀로지가 런던 전시장과 똑같다며 만족감을 표했다.

예전에는 예술 취급을 받지 못하던 몰입형 전시에 정통 화랑과 미술가가 참여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이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 중앙SUNDAY는 도 대표와 만났다. 다음은 일문일답.

라이트룸 서울의 몰입형 전시 ‘데이비드 호크니: 비거 앤 클로저’. 문소영 기자
Q : 순수미술계의 대표 갤러리가 몰입형 전시 사업을 하니 비판도 있을 것 같습니다.
A : “이것을 그저 몰입형 전시라고 보면 당연히 그러실 수 있지만, 저는 이것을 새로운 미디엄(예술을 구현하는 재료나 매체)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머니가 80년대 중반부터 백남준 선생님과 함께 일하시면서 저도 도와드렸고 그러면서 백 선생님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이번에 프리즈 런던에서 테이트 미술관에 작품이 팔린 김아영 작가 같은 미디어 아티스트를 자꾸 발굴하려고 하는 것도, 새로운 미디엄에 관심이 많은 것도, 백 선생님 영향입니다. 화가들이 더 좋은 캔버스, 더 좋은 붓을 찾는 것처럼, 백 선생님은 저를 보면 ‘삼성에서 새로 나온 모니터 없어?’라는 식으로 찾곤 하셨어요. 그리고 벽이 다 스크린으로 덮이는 날이 올 것이라 예언하셨죠. 과연, 최근 10년간 LED가 대중화되고, 그 LED라는 미디엄 덕분에 미디어아트와 대중이 훨씬 편하고 쉽게 만나게 됐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휴대폰을 들고 있는 젊은 세대에게는 미디어아트가 편해요. 미디어아트를 다루다 보니 몰입형 전시와도 어떤 접점들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처음에는 저도 몰입형 전시가 재미는 있는데 일회성이고 눈요기거리밖에 안 된다고 생각을 했어요. 하지만 저기에 독창성 있는 새로운 콘텐트 IP를 가지고 뭔가를 해볼 수도 있겠다고 고민하던 차에 마침 데이비드 호크니 몰입형 전시를 알게 된 것이죠. 이건 해볼만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아티스트가 프로젝트에 직접 참여했기 때문이죠. 지금까지의 몰입형 전시는 대개 이미 작고한 작가의 작품들에 그래픽 작업 넣고 움직이게 해서 재미를 주고 눈을 즐겁게 해 주는 것에 그쳤습니다. (몰입형 전시로) 깊이 있게 어떤 작가의 작품을 표현하려면 그 작가가 직접 관여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려면 생존 작가의 전시여야 하고요.”
프리즈 런던 갤러리현대 부스에 전시된 김아영 작가 작품. [사진 갤러리현대]

Q : 말씀대로 호크니 전시는 기존 몰입형 전시들과 차별화되는 면이 있지만, 몰입형 전시라는 새로운 미디엄을 이용한 호크니의 새로운 작품이라기보다는 몰입형 전시로 펼쳐 보인 호크니 다큐멘터리에 가까워 보였습니다. 그 때문에도 영국의 몇몇 미술전문기자들이 부정적인 리뷰를 한 것 같은데요?
A : “그렇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일단은 유명한 미술가가 몰입형 아트에 관여한 거의 최초의 사례라서 의미가 있습니다. 지금 호크니의 아이패드 그림이 널리 인정받지만 처음에는 평론가들이 아이패드로 그림 그려 작품화 시키는 것에 대해 굉장히 부정적이었어요. 그런데 작가는 그것을 넘어섰습니다. 이번 몰입형 전시에서도 작가는 자신이 직접 그리는 과정을, 점들이나 선들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무빙 이미지로 관람객에게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다큐멘터리적 성격이 강하긴 하죠. 하지만 그림이 그려지는 과정을 후대에까지 볼 수 있도록 하고 작가가 왜 이렇게 했는지 생각해 보게 하는 건 중요한 일입니다. 빠른 동영상에 익숙한 젊은 세대는 그걸 이렇게 (몰입형 전시로) 보는 게 편하고요. 호크니 선생님은 많은 연세에도 이걸 캐치하신 것이고, 이게 또 백남준 선생님이 예언하신 것과 같은 맥락이죠. 당연히 유명한 평론가들은 전통적인 면이 있기 때문에 악평을 할 수 있어요. 하지만 젊은 세대들에서 그에 대한 반대 의견들이 이미 나오고 있고 또 더 나올 겁니다.”
라이트룸 런던과 독점 콘텐트 계약

갤러리현대에서 2016년에 열린 백남준 회고전. [사진 안지섭]

Q : 그렇다면 갤러리현대 소속 미디어 아티스트들이 이 공간을 활용해 몰입형 아트 작품을 만드는 것도 지원하실 생각이 있나요?
A : “저희가 이 공간을 10년 20년 넘게 쓸 건데, 항상 이런 (대중적인) 전시만 할 건 아니지요. 갤러리현대가 1995년에 신관을 오픈했을 때 그 (천장이 드높은) 지하 공간과 2층 공간을 보고 작가 선생님들이 갑자기 회화 작품을 크게 그리기 시작했어요. 그 정도로 공간은 중요합니다. 당연히 새로운 공간을 저희가 자랑하는 미디어 아티스트들에게 제공하고 ‘제가 2년 드릴 테니까 2년 후에 한두 달만 전시해 봅시다’ 이런 제안을 할 용의가 있습니다. 다만 라이트룸 서울 공간이 워낙 거대하기 때문에 작가들이 이걸 소화해서 작품을 내놓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거예요.”

Q : 라이트룸 런던이 제작하는 콘텐트만 전시할 것은 아니라고 들었습니다. 그런데도 공간의 이름을 라이트룸 서울이라고 한 이유는요?
A : “라이트룸 서울이 우리와 같이 일하게 된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저희 갤러리가 순수미술을 53년 다루어왔고 그로 인한 IP가 있다는 것을 알아서입니다. 특히 그들이 저희와 만날 때 백남준 선생님 때문에 우리 갤러리를 알고 있다고 말문을 열더군요. 따라서 라이트룸 런던과의 계약은 단순히 뭔가를 받아다가 라이센스 피(fee) 내고 여기서 틀고 돈 벌고 터는 그런 방식이 아닙니다. 우리가 가진 (작가 등 미술계) 네트워크를 활용하고 장기적으로 새로운 콘텐트 IP를 함께 만드는 게 그들한테 큰 이익이기 때문에 저희와 함께 하게 된 것이지요.”

Q : 에트나컴퍼니가 본래 NFT아트 거래 플랫폼으로 출범했는데 NFT아트는 거품이 꺼지고 몰락했다는 의견도 있는데 어떤가요?
A : “에트나가 NFT 회사라는 건 오해이고, 원래부터 콘텐트 IP 회사로 만들어졌습니다. NFT 또한 하나의 미디엄이에요. 그걸 그저 돈 벌어주는 마법 같은 존재로 착각하고 아무 콘텐트나 집어넣어서 돈을 벌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거품과 문제가 생긴 것이죠. 저는 NFT가 판화처럼 대중을 위한 에디션을 줄 수 있는 하나의 미디엄이며 여전히 중요한 미디엄일 것이라고 확신해요. 이건용 선생님과 최초로 NFT를 만들 때 선생님이 가장 바라시는 게 뭐냐고 여쭈니 ‘관람객들과의 인터액션(상호작용)’이라고 답을 하셨고 그래서 인터액티브 NFT를 만들었죠. 관객이 작품의 색상도 선택을 하고 작가 아바타가 직접 나타나서 작품을 그려주는… 언제나 중요한 것은 새로운 미디엄에 대한 탐구입니다.”

문소영 기자 sym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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