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멀 아트 알리자" 한·미·일 작가 오작교 된 야마구치

2023. 11. 11. 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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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와 친구들
지난 9월부터 아시아 최초로 칼 안드레 개인전을 개최 중인 대구미술관에 일본 갤러리스트 야마구치 다카시의 갤러리가 협력했다. [사진 대구미술관]
1991년. 세계적인 작가 도널드 저드의 전시회가 서울 인공화랑에서 열렸다. 도널드 저드가 개인전을 하러 서울에 온다는 건 상상하기 힘든 시절이었다. 그런 전시가 국립미술관이 아닌 개인화랑에서 열렸다는 것도 충격적이었다. 전시의 배후에는 야마구치 다카시(山口孝)라는 일본인 갤러리스트가 있었다.

야마구치, 대구·경주 등 돌며 한국 익혀

지난 9월부터 아시아 최초로 칼 안드레 개인전을 개최 중인 대구미술관에 서 있는 일본 갤러리스트 야마구치 다카시. [사진 황인]
야마구치는 1948년 오사카부 도요나카시에서 태어났다. 초등학생 때부터 미술에 관심이 많았다. 대학을 다닐 때는 이미 미술품 컬렉터가 되어 있었다. 주로 일본과 유럽의 근대 미술을 취급하는 오사카의 갤러리에서 7년간 근무했다. 갤러리의 폐업을 계기로 독립하여 1981년 오사카에서 야마구치갤러리를 개관했다.

오사카는 일본의 다른 지역에 비해 현대미술이 강하다. 그럼에도 야마구치가 주력한 미니멀 아트는 현대미술을 제법 안다는 일본인의 지각과 교양을 넘어서는 낯선 세계였다. 화랑의 경영이 힘들어 파산지경에 이르렀다. 야마구치는 자신의 미학에 대한 신념이 강했다. 작품도 미학도 생소한 미니멀 아트의 세계를 자신의 힘으로 일본인들에게 전해주고 싶었다. 결기 하나로 힘든 처지를 버티다 보니 세계의 미술인들이 점점 야마구치의 진가를 인정하기 시작했다.

1990년 오사카의 국립국제미술관에서 열린 ‘미니멀 아트’란 전시가 당시의 상황을 짐작케 해준다. 이 전시에서 평론가 타테하타 아키라(1947~)는 미국의 미니멀 아트와 일본의 미니멀리스틱 아트를 분명하게 구별하고 있다. 미니멀과 미니멀스틱을 제대로 구별하지 못했던 건 일본의 현대미술계나 한국의 현대미술계나 마찬가지였다. 미니멀 아트의 본고장 미국에서 들여온 진정한 미니멀 아트 작품들이 일본에서 쉽게 유통될 리가 없었다.

야마구치는 나고야 유마니테화랑의 소개로 화가 윤형근(1928~2007)을 알게 되었다. 유마니테화랑과 야마구치갤러리는 공동기획으로 오사카에서 윤형근의 전시회를 개최하기로 했다. 야마구치가 서울 홍대앞의 윤형근 아틀리에를 방문한 것은 1989년이다. 윤형근은 위엄이 있었다. 윤형근은 식민지 시대를 담담하게 회고했다. 식민지 시절의 일본정부는 강하게 비판하되, 청주에서 다닌 초등학교 때의 일본인 선생님을 그리워 했다. 윤형근이 나중에 호쿠리쿠(北陸)에 살고 계시던 노경의 은사를 찾아가서 인사를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야마구치는 깜짝 놀랐다. 한국인은 일본인이라면 무조건 미워할 거라는 야마구치의 선입견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야마구치는 그런 윤형근이 좋아졌다.

런던 웨딩턴갤러리의 협력으로 야마구치갤러리에서 도널드 저드(1928~1994)의 개인전이 1989년 10월에 열렸다. 그 전시회의 카탈로그를 저드에게 보냈더니 감사의 편지가 돌아왔다. 야마구치는 1990년, 뉴욕에서 처음으로 저드를 만났다. 이때 저드의 일본 미술관 순회 개인전 개최에 대해 논의했다.

야마구치가 만난 도널드 저드는 수줍음이 많은 한편 다른 예술가들의 사유방식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포용력을 갖춘 사람이었다. 그건 저드가 작가이자 동시에 평론가였기 때문이라고 야마구치는 판단했다. 저드의 서가에 동양미술에 관한 책들이 많았던 것도 인상적이었다.

1988년, 서울 동숭동에 윤형근의 경제적 도움으로 황현욱(1948~2001)의 인공화랑이 세워졌다. 미니멀 아트를 선호했던 황현욱은 저드의 전시 유치가 필생의 꿈이었다. 그 꿈은 의외로 빨리 찾아왔다. 그는 1990년 10월, 오사카 국립국제미술관의 미니멀 아트 전시회를 보고 난 뒤 도널드 저드 전시회에 대한 꿈을 구체화하기로 했다. 황현욱은 윤형근이 야마구치를 설득하여 서울에서 저드의 전시회가 열릴 수 있기를 원했다. 황현욱의 꿈을 존중하던 윤형근은 그리 하겠다고 했다.

윤형근의 설득으로 야마구치는 1991년 도널드 저드의 서울 전시를 진행했다. 이 무렵 야마구치가 기획한 저드의 일본 미술관 순회전은 이미 일정이 잡혀 있었다. 야마구치는 일본의 순회전에 출품될 저드의 작품들을 먼저 서울로 보내어 전시를 열었다. 도널드 저드는 해방 직후인 1946년, 10대의 나이에 미군 공병으로 한국에 와서 서울과 대구에서 1년간 근무한 적이 있었다. 10대의 소년이 환갑을 넘겨 다시 서울을 방문했다.

저드, 세계적 예술가들에게 윤형근 소개

맨 앞 왼쪽 끝이 야마구치 다카시 오른쪽 끝이 도널드 저드, 1990년 미국 텍사스 말파의 차이나 티파운데이션에서. [사진 야마구치 다카시]
저드는 서울의 전시장에서 처음 만난 동갑내기 윤형근과 의기투합했다. 저드의 초대로 저드의 뉴욕 스프링빌 공간과 텍사스 마파의 차이나티 재단에서 윤형근의 대규모 개인전이 열렸다. 저드는 윤형근을 세계적인 예술가들에게 소개했다. 윤형근은 국제적인 유명세의 작가로 비약했다. 야마구치는 존경하는 윤형근의 성공을 축하해주었다. 이 무렵 저드는 한지나 일본의 와시(和紙)로 수많은 판화를 제작했다. 저드는 언제나 극동의 두 나라, 한국과 일본을 생각하고 있었다.

야마구치가 선호하는 미국의 미니멀 아티스트는 도널드 저드, 솔 르윗, 댄 플래빈 등이다. 이들은 모두 한국과 인연이 있다. 솔 르윗(1928~2007)은 6.25 전쟁에 참전했고 댄 플래빈은 휴전 이후 오산비행장에서 근무했다. 미국의 미니멀 아트 아티스트들은 한국과 인연이 깊은데 막상 미니멀 아트를 제대로 이해하는 한국의 미술인은 드물었다.

이광호(1955~)가 대구에서 연 갤러리신라는 처음부터 미니멀 아트에 주력했다. 이광호는 같은 대구 출신의 황현욱과 가까웠다. 갤러리신라는 일본에서 제작된 도널드 저드의 판화들로 1992년 전시회를 열었다. 야마구치를 의식하던 이광호는 2003년 오사카에서 야마구치의 주도로 열린 ‘카소’ 아트페어에서 드디어 야마구치를 만났다. 대구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미니멀 아트를 수용할만한 정신적 풍토를 갖고 있다. 윤형근, 황현욱이 사라진 공간을 이광호가 메꾸어나갔다.

야마구치는 자신과 미적 취향이 비슷한 이광호와 함께 일하는 게 좋았다. 쿠와야마 다다아키(1932~2023), 스즈키 다카시(1957~), 이가라시 아키오(1938~) 등 뉴욕과 일본의 미니멀, 미니멀리스틱 아트 계열의 작가들을 갤러리신라에 소개했다. 야마구치와 일본계 작가들이 직접 대구를 방문하면 대구, 서울의 미술인들과 어울려 활발한 대화가 오갔다. 야마구치는 이광호와 함께 대구에서 가까운 경주, 안동 등지를 여행하며 한국을 익혀나갔다. 일본 시가현의 후나즈시와 비슷한 지독한 발효음식인 가자미식해가 안동에 있다는 게 신기했다. 야마구치는 김치를 무척 좋아한다. 일본식으로 응용된 김치제육볶음 야키소바를 자주 먹는다.

2023년 9월부터 대구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미국의 미니멀 아트의 대표적인 조각가 칼 안드레(1935~)의 전시는 뉴욕의 폴라쿠퍼갤러리, 야마구치갤러리, 갤러리신라의 합작품이다. 칼 안드레의 소속화랑인 폴라쿠퍼갤러리는 2017년부터 칼 안드레의 아시아 순회전을 기획했다. 그러자면 폴라쿠퍼와 협력관계에 있는 야마구치가 그 역할을 맡아야 한다. 순회전을 하려면 아시아 여러 나라의 미술관이 전시 유치에 참여해야 하는데 코로나의 여파인지 중국과 대만, 인도네시아의 미술관들이 난색을 보였다. 이 전시의 유치를 위해 2018년부터 갤러리신라는 대구미술관을 설득했다. 칼 안드레 전시회는 대구미술관에 이어 일본의 가와무라미술관이 개최하는 것으로 일정이 잡혔다. 덕분에 아시아에서 최초로 열리는 거장 칼 안드레의 개인전을 대구에서 감상할 수 있게 되었다.

야마구치는 미술에 대한 평가가 시장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경계한다. 미래를 생각한다면 미술에 대한 진정한 평가는 작가는 물론 평론가, 갤러리스트, 미술관 등, 미술에 진지하게 임하는 사람들을 옹호하는 체제의 구축 위에서 비로소 성립할 수 있다고 야마구치는 주장한다. 꾸준한 신념이 멋있는 미니멀 아트 갤러리스트, 그의 이름은 야마구치 타카시다.

황인 미술평론가. 미술평론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전시기획과 공학과 미술을 융합하는 학제 간 연구를 병행하고 있다. 1980년대 후반 현대화랑에서 일하면서 지금은 거의 작고한 대표적 화가들을 많이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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