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이전에 색인, 지성사 위대한 발명품
데니스 덩컨 지음
배동근 옮김
아르테
색인의 역사를 추적한 책 『인덱스』의 말미에도 어김없이 색인이 자리 잡고 있다. 이 책의 색인은 452쪽에서 487쪽까지 서른다섯 쪽이나 된다. ‘가독성/판독성 142’에서부터 ‘히에로클레스(Hierocles), 『히에로클레스가 고결하며 가치 있는 삶을 가르친 피타고라스의 황금 시편에 대하여』 404’까지 한글 표제어들이 가나다순으로 열거돼 있다.
맨 마지막 부분에는 기타 항목의 색인(A, a, a 123~125~Z, z, z[이제 잠들 시간이야-색인 작성자])이 붙어 있다. 색인업자 협회에 소속된 전문 색인 작성자 폴라 클라크 베인이 작성한 원작 영어색인을 한국어로 번역하고 필요에 따라 옮긴이가 항목을 추가하기도 했다.
하지만 인덱스는 지성사의 가장 위대한 발명품이라고 불린다. 인덱스는 책 내용 중 특정 개념을 일정한 순서에 따라 배열한 단순한 목록에 그치지 않는다. 지식을 분류하고 목록화해 접근이 쉬운 정보로 만들어 온 유용한 도구였다. 데니스 덩컨 영국 유니버시티칼리지런던(UCL) 영문학 교수는 고대 이집트 알렉산드리아도서관의 파피루스에서부터 고대 점토판, 중세의 종교저술, 현대 구글과 해시태그(#)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색인의 역사를 탐구해 『인덱스』를 펴냈다.
색인의 먼 조상은 알렉산드리아도서관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적게 잡아도 두루마리 4만 권 이상을 보유했던 당대 최대의 이 도서관 책을 이용하려면 어떤 식으로든 정돈이 필요했을 것이다. 시인이자 학자이면서 이 도서관 사서이기도 했던 칼리마코스는 모든 저술을 장르에 따라 수사학, 법학, 서사시, 비극 등으로 분류하고 각각의 분류 목록 안에서 저자들의 이름을 알파벳순으로 기록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아울러 두루마기가 보관됐던 함 속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를 보여 주는 카탈로그 표제를 만든 것으로 보인다. ‘미래의 색인’을 시사하는 출발점일 수 있는 칼리마코스의 ‘목록 두루마리’ 『피나케스』는 아쉽게도 현존하지는 않지만 후대의 다른 여러 저술에서 언급됐다.
본격적인 ‘색인의 산파’들은 1230년을 전후해서 비슷한 시기에 영국 옥스퍼드와 프랑스 파리에서 탄생했다.
파리 생자크 도미니크회 수도원장인 ‘생셰르의 휴’는 최초의 성경 성구사전 만들기를 지휘했다. 수도원 수사들은 일을 분담해 알파벳을 하나씩 전담하거나 나눠서 맡아 그 알파벳으로 시작하는 모든 단어를 쓰고 그 단어의 용례를 기록했다. 성구 사전은 감탄사 ‘A, a, a’와 함께 시작해 ‘Zorobabel(스룹바벨, 유대의 통치자)’로 끝난다.
우연하게도 비슷한 시기에 나온 두 가지 색인은 두 종류의 대표적인 인덱스를 잘 보여 준다. 그로스테스트는 보편 색인을 대변한다. 그는 교부들의 모든 지식과 아리스토텔레스 등 고대의 이교도 전통을 모두 통합해서 하나의 원천으로 ‘졸여 내기’를 시도했다. 지금 우리가 말하는 주제 색인(distinctio) 혹은 개념에 대한 색인의 시조다. 텍스트에 명확하게 언급하지 않은 개념까지도 확인할 수 있다. 주관적 색인이다.
이에 비해 생셰르의 휴가 창안한 방식은 단어 색인, 용어 색인(concordance)이다. 그 색인에 실린 용어들은 텍스트에 등장하는 단어일 뿐이다. 주관이 개입할 여지가 없다.
본격적으로 색인이 사용되기 위해서는 정확한 위치 표시자가 필요했다. 지금은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는 쪽 번호 표시는 구텐베르크 이후 백 년이 지나서야 모든 책에 찍히게 됐다.
디지털 세계인 21세기는 검색의 시대다. 무엇이든 키워드만 넣고 찾으면 눈 깜박할 사이에 원하는 결과물을 얻을 수 있다. 이런 자동화된 용어 색인의 시대에도 과연 책에 색인이 필요할까. 인터넷이 인쇄된 책을 없애지 못했듯이, 주제 색인과 색인 편찬자들도 여전히 그들의 역할을 활발하게 수행하고 있다. 컴퓨터는 성가신 작업을 제거해 줬고 주제 색인 작성자들의 작업이 전적으로 깔끔하게 진행되도록 도와줬다.
“찾고자 하는 지식이 어디 있는지를 아는 자는 그것의 획득에 근접해 있다”는 경구가 있다. 색인이 걸어왔던 역사의 길을 『인덱스』라는 창을 통해 탐방하노라면 어느새 우리 자신도 지식의 세계에 깊숙이 접근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 것이다.
한경환 기자 han.kyunghw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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