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란의얇은소설] 어머니는 집에 혼자 계신다
어머니와 한집에 사는 건 ‘축복’
스티븐 밀하우저, ‘아들과 어머니’(‘밤에 들린 목소리’에 수록, 서창렬 옮김, 현대문학)
화창한 날이었다. 아들은 좀 떨어진 곳에서 어머니의 집을 바라본다. 오랫동안 찾아오지 못한 곳, 어머니의 집이 늘 있던 그 자리에 서 있는 것을 보자 감정에 변화가 인다. 집이 여전히 그곳에 있다는 사실 때문에. 어머니가 여전히 그곳에 혼자 있다는 사실 때문에. 아들이 안으로 들어갔을 때 어머니는 거실 옆 어두컴컴한 방에 등을 돌린 채 서 있었다. 아들이 인사를 하자 어머니는 “어떤 건물을 올려다보는 사람 같은 모습”으로 고개를 들고 아들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어머니는 이렇게 말했다. “너 알아.”
너 알아. 독자로서의 나는 이 문장에서부터 가슴이 쿵, 하는 느낌이었다. 이 어머니, 치매에 걸리셨구나. 언젠가 내 어머니가 나를 뚫어지게, 엄해 보이는 표정을 띠고 너 알아, 라고 말하면 어떤 기분일까. 그제야 나는 이 단편은 아주 느린 속도로, 거의 이 어머니가 집안을 서성거리고 움직이는 속도로 읽어야 한다는 점을 깨달았다. 아무리 작고 협소한 공간이어도 한 편의 서사가 가능한 이유는 인물이 움직이고 멈춰 있는 곳이 환기된 새 공간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어머니는 천천히 어두컴컴한 방에서 거실로, 소파로, 부엌으로, 피아노 옆으로 움직이며 멈춘다. 아들에게 이런 말들을 하면서. “뭘 자꾸 잊어버린단 말야.” “난 얼굴을 기억하는 게 어려워.”
아들은 어머니를 이해시킬 어떤 말을 하고 싶은데 시간은 마냥 가고 어머니는 베란다 의자에서 잠이 들었다. 잠이 든 어머니를, 오늘 아들은 혼자 두고 떠날 수가 없다. 2장은 어느새 같이 잠든 아들이 깨어나며 시작한다. 다시 거실 한가운데 등을 보인 채 서 있는 어머니는 “너무나도 조용해서 마치 움직임이 종말에 이른 사람 같았다.” 아들은 어머니가 작아져서 안경 케이스 같은 새로운 형태로 변하는 상상도 했다. 그러면 어머니가 다치거나 해를 입을 가능성이 없으니 걱정 없이 작별을 고하고 떠날 수 있으니까.
결말에 이르러 어머니는 피아노 옆면에 몸을 기댄 휴식을 취하고 있다. 떠날 시간이 되었다. 아들은 생각했다. 어머니가 보살핌이 필요한 곳에 전화를 걸 작정이라고.
이 글을 쓰고 있는데 약속을 앞둔 선배에게 전화가 왔다. 입원하신 지 이틀 만에 어머니가 돌아가셨다고 경황이 없어서 연락을 못 했다고 지금은 아무것도 할 수가 없으니 다음에 만나자고. 한 달 전에 통화하면서 같이 사는 각자의 우울한 어머니들 걱정을 하고 흉도 보았는데. 선배는 나에게 덧붙였다. 지금 어머니와 사는 일, 축복 같은 시간일지도 몰라. 후회가 남지 않게 하루하루 보내길 바라. 전화를 붙들고 중년의 우리는 같이 소리죽여 울었다. 나는 더는 일을 할 수 없었고 이 원고를 처음으로 이틀에 걸쳐서 썼다.
오랫동안 혼자 지낸, 집에 온 게 언제가 마지막이었는지 기억도 못 하는 아들에게 어머니는 정신이 맑을 때마다 토막토막 말했다. 미안하다. 미안하구나. 괜찮아. 참 훌륭한 내 아들.
조경란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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