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문화] 떠나간 ‘너’, 남겨진 ‘나’
원자 재배열·존재 양식의 변화로
바라본 시각에 뜻밖의 위로받아
끝내지 못한 숙제에 깨달음 얻어
그 어떤 인간도 피해 갈 수 없는 것, 바로 죽음이다. 모든 이에게 공평하게 내려진 운명이라는 사실은 그러나 내게 별다른 위안이 되지 않았다. 겪은 사람은 너무나 많은데, 그것이 정확히 어떤 것인지를 아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다는 사실(죽은 자는 말이 없으므로)이 나를 오히려 더 두렵게 했다. 어린 시절 나는 언제, 어떤 형태로, 불쑥 찾아올지 모를 그 미지의 소멸이 너무나 두려워 한동안 밤마다 울었다. 부모님은 어린 딸이 죽음을 생각하며 질질 짜는 모습에 당황스러워하다가, 신기해하다가, 이내 걱정스럽게 바라보곤 했다.
과학이 가닿지 않는 정신의 세계, 그러니까 ‘철학적인 죽음’에 대해선 여전히 물음표가 남았으나 그럼에도 자연의 이치를 알고 바라보는 ‘생물학적인 죽음’은 전보다 덜 무섭게 다가왔다. 게다가 생명이라는 것이 아주 드문 현상이라면, 우리 모두는 특별한 존재 아닌가. 김상욱 교수는 그래서 죽음보다, “우리가 왜 살게 되었는가”가 더 중요한 문제라고 했다.
죽음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게 해준 김상욱 교수와의 만남 며칠 후, 애도에 대한 새로운 방향을 제시해 주는 사람을 만났다. 지난해 ‘D.P.’로 백상예술대상 남우조연상을 수상하며 “죽음은 존재 양식의 변화”라고 말했던 배우 조현철이었다. 병상에 누워 있는 아버지에게 건넨 수상소감에서 그는 안타깝게 떠난 죽음들을 호명하며 지금도 우리 곁에 있다고, 그들을 기억해내기도 했다. 그리고 1년. 놀랍게도 그가 연출로 들고나온 ‘너와 나’엔 존재 양식은 변했지만, 그럼에도 어딘가에 있을 존재들이 가득하다.
‘너와 나’는 제주도 수학여행을 앞둔 안산에 사는 두 여고생의 하루를 따라가는 영화다. 짐작하겠지만, 세월호를 그린다. 시간과 함께 흐릿해지고 있지만, 결코 잊어서는 안 되는 이야기를 관객에게 들려주기 위해 적절한 화법을 윤리적으로 고심한 흔적이 영화엔 가득하다. 영화는 못다 한 말을 전하기 위해 죽은 자와 산 자의 시간을 중첩시키며 달려나간다. 이런 애도도 가능하구나. “슬픔은 상실에 대한 반응이고, 애도는 이 슬픔을 처리하는 방식”이라고 말한 도리언 리더는 ‘우리는 왜 우울할까’에서 슬픔에 접근할 수 있는 작업으로서 예술이 존재한다고 말했다. 나는 ‘너와 나’가 그 증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한 창작자가 슬픔을 다루는 방법을 보며, 아직 끝내지 못한 나의 숙제를 어떻게 해야 할지를 깨달았다.
정시우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작가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한국처럼 결혼·출산 NO”…트럼프 당선 이후 미국서 주목받는 ‘4B 운동’
- “그만하십시오, 딸과 3살 차이밖에 안납니다”…공군서 또 성폭력 의혹
- “효림아, 집 줄테니까 힘들면 이혼해”…김수미 며느리 사랑 ‘먹먹’
- “내 성별은 이제 여자” 女 탈의실도 맘대로 이용… 괜찮을까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단독] “초등생들도 이용하는 女탈의실, 성인男들 버젓이”… 난리난 용산초 수영장
- ‘女스태프 성폭행’ 강지환, 항소심 판결 뒤집혔다…“前소속사에 35억 지급하라”
- “송지은이 간병인이냐”…박위 동생 “형수가 ○○해줬다” 축사에 갑론을박
- “홍기야, 제발 가만 있어”…성매매 의혹 최민환 옹호에 팬들 ‘원성’
- 사랑 나눈 후 바로 이불 빨래…여친 결벽증 때문에 고민이라는 남성의 사연
- "오피스 남편이 어때서"…男동료와 술·영화 즐긴 아내 '당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