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상 빼고 다 먹는다? 홍콩 ‘이색 먹부림’[주식(酒食)탐구생활㉞]
먹는 것은 광저우에서
‘식재광주’라는 중국 속담이 있다. ‘먹는 것은 광저우에서’라는 뜻으로, 광둥요리의 위상과 명성을 입증하는 말이다. 광둥은 천혜의 환경과 입지로 인한 풍부한 물산 덕에 식재료가 넘쳐나고, 일찍이 외부와의 교류가 잦아 음식문화가 그 어느 지역보다도 다채롭다. 이 때문에 광둥의 요리문화나 음식의 다양성을 비유하며 “네발 달린 것은 책상만 빼고 다 먹고 하늘을 나는 것은 비행기만 빼고 다 먹는다” “광둥인은 먹기 위해 산다”는 우스개 같은 이야기가 나왔을까.
홍콩은 광둥 음식의 본산이다. 문화혁명 등으로 침체기를 겪었던 본토와 달리 홍콩은 전통 요리를 꾸준히 발전시켜온 데다 서양과의 활발한 교류로 새롭게 홍콩화한 요리들이 많다. 식재료의 맛과 색을 그대로 드러내 담백한 방식으로 요리하는 것도, 온갖 희귀하고 진귀한 식재료를 활용하는 것도 광둥요리의 특징이다. 샥스핀, 불도장 등 호화로운 중국 요리의 대명사로 여겨지는 것들도 광둥에서 나왔다.
중국 광둥 음식의 ‘본산’ 홍콩
전통요리에 서양과 교류로 새롭게 ‘홍콩화’
생선 부레 수프·비둘기 구이·뱀탕·거북이 젤리…
진귀하고 이색적 식재료로 누리는 ‘맛의 향연’
이색적인 식재료를 구경하는 데는 시장만 한 곳도 없을 터. 홍콩 메리어트 호텔 중식레스토랑 만호의 수석 셰프 제이슨 탕을 따라 홍콩섬 서쪽 셩완에 있는 건어물 시장 구경에 나섰다. 그는 “음식은 건강과 장수를 위한 약이라는 철학이 우리 식문화의 기본”이라고 여러 차례 강조하면서 “말린 해산물은 오랫동안 귀한 연회 자리에 많이 사용됐고, 나 역시 말린 해산물로 요리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말린 오징어나 문어, 멸치, 쥐포 등이 있으리라 예상했던 건어물 시장의 모습은 한국과는 사뭇 달랐다. 일단 천장이나 벽에는 풍등처럼 생긴 누런빛의 무언가가 잔뜩 걸려 있었다. 거의 모든 상점 입구에도 마찬가지로 주렁주렁 걸려 있는 이 물체의 정체는 생선 부레다. 수프나 스튜 요리에 흔히 들어가는 이 부레는 걸쭉한 질감을 낸다. 콜라겐이 풍부해 피부에 좋을 뿐 아니라 혈액순환 개선에도 도움이 된다고 한다. 말린 해삼, 전복도 부레만큼이나 많이 눈에 띄는 재료다. 특히 금괴를 닮은 전복은 부와 장수를 기원하는 의미를 담고 있는 식재료로 꼽힌다. 예전에는 상어지느러미도 많았으나 환경보호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최근에는 많이 줄어들었다고 한다. 불도장의 재료가 되는 제비집은 언뜻 보면 감자칩이나 코코넛칩처럼 생겼다. 관자와 가리비, 새우, 굴, 홍합, 작은 생선류 따위도 잔뜩 쌓여 있었다. 엄지손가락 두께의 말린 해삼 옆에는 팔뚝만 한 호주산 해삼도 놓여 있다. 건어물 외에도 각종 버섯과 육류 말린 것, 도마뱀을 비롯해 엽기적으로 생긴 이름 모를 식재료들이 꽤 눈에 띄었다. 악어와 도마뱀의 중간 모습을 한 듯한 말린 식재료가 호기심을 일으켰다. 나무막대에 꿰어놓은 그것을 가리키자 점원은 자신의 얼굴을 손가락으로 두드리며 피부에 좋다고 이야기했다. 건어물은 혈액순환, 노화방지 등 영양 기능이 뛰어날 뿐 아니라 응축된 감칠맛이 있어 음식의 맛을 끌어올리는 데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재료다. 이 때문에 셩완의 건어물 시장은 홍콩 레스토랑의 셰프들이 즐겨 찾는다. 건어물 시장 구경을 마친 뒤 제이슨 탕은 레스토랑 만호로 일행을 안내했다. 이날 구경한 식재료를 포함해 다양한 재료로 한 상 가득 차려낸 것은 현대적으로 해석한 광둥요리다. 생선 부레로 만든 수프에 대구살을 넣은 만두, 해삼과 버섯으로 만든 페이스트리, 전복과 닭고기를 다져 연잎으로 감싸 오븐에 구운 파이, 채소와 버섯으로 새끼 돼지의 속을 채워 구워낸 광둥식 바비큐 등이 차례로 나왔다.
한국에선 좀체 접하지 못하는 이색적인 식재료로 만든 요리도 홍콩에서는 쉽게 만날 수 있다. 완탕면을 파는 가게나 홍콩식 브런치를 즐길 수 있는 차찬탱만큼 길거리 곳곳에서 눈에 띄는 것은 고기를 구워서 파는 바비큐 식당이다. 진열장 너머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것은 닭, 오리, 거위, 돼지 등이다. 우리나라 재래시장의 통닭집에 튀긴 통닭이 널려 있는 것보다 훨씬 적나라한 모습이랄까. 구운 고기를 통째로 걸어놓기도 하고 부위별로 잘라놓기도 했다. 영롱한 갈색, 연한 갈색, 커리가루에 졸여낸 듯한 노란색 등 구운 방식과 소스도 여러 가지였다. 닭처럼 생겼지만 그보다는 좀 작아보이는 것이 비둘기구이였고, 머리와 함께 길쭉하게 걸려 있는 목의 정체는 거위목구이였다. 비둘기구이는 닭의 식감과 비슷했다. 간장소스에 졸여 구워서인지 간장양념 치킨과 비슷했는데 혀끝에 돼지 간을 먹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 남았다. 비둘기고기에 철분이 많기 때문에 나는 특유의 맛이라고 한다. 특히 비둘기는 유럽사람들에게 인기가 많은 편이어서 프렌치 레스토랑에서도 비둘기고기를 내는 경우가 많다. 거위는 잔칫상에 자주 오르는 요리인데, 가성비 좋은 길거리 바비큐 식당에선 거위목구이를 주로 팔고 있었다. 우리 돈으로 7000원 정도면 두 명이 맛볼 수 있을 만큼 넉넉한 양을 살 수 있다. 중간중간 박혀 있는 뼛조각을 조심해야 하는데, 족발 같은 식감과 맛이 났다.
뱀은 엽기식품, 혐오식품으로 여겨지게 마련인데 의외로 홍콩에는 뱀을 요리하는 식당도 여럿 있었다. 홍콩에서도 호불호가 갈리는 편이긴 하지만 보양식, 건강식으로 즐겨 먹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 현지인들의 이야기다. 타임아웃, 태틀러 아시아 등 글로벌 라이프스타일 매거진에 소개된 홍콩의 뱀 전문 레스토랑 중 센트럴에 있는 ‘서 웡 펀’(Ser Wong Fun)에 들렀다. 2개 테이블에서는 젊은 직장인들로 보이는 무리가 수다를 떨고 있었고 다른 한 테이블에서는 중년 부부가 조용히 식사하고 있었다. 뱀탕(스네이크 뱅큇 보울)과 뱀고기를 넣은 퍼프 페이스트리를 시켰다. 뱀탕은 140홍콩달러(2만4000원)이니 한 끼 식사로는 제법 값이 나가는 편이다. 탕에는 생선 부레를 비롯해 전복, 닭고기, 버섯 등이 함께 들어가 있었다. 유산슬을 조금 더 묽게 조리해 탕으로 만든 듯한 식감이었다. 국물은 여러 가지 재료에서 우러나는 감칠맛이 꽤 좋았다. 뱀고기의 육질은 닭고기보다 조금 더 쫄깃한 느낌이었다. 홍콩 사람들이 흔히 먹는 길거리 간식 중에는 터틀젤리도 있다. 말 그대로 거북이젤리다. 거북이 등껍질과 각종 한약재를 푹 끓인 뒤 식혀 굳힌 것이다. 허브티 등 건강음료를 주로 파는 가게에서 살 수 있다. 센트럴의 복합문화공간 타이쿤 근처에 있는 ‘공리진료죽자수’라는 곳에서 터틀젤리를 한 통 샀다. 짙은 갈색의 젤리에서 특별한 향은 나지 않았다. 맛도 한약재에서 나는 특유의 쌉쌀함이 조금 느껴지는 정도였다. 함께 준 사탕수수 시럽을 끼얹으니 달콤하게 즐길 만했다. 양이 제법 되는지라 한 통을 다 먹으면 상당한 포만감을 준다. 이 젤리는 디톡스와 열기 배출에 효과적이라고 알려져 젊은 여성들도 즐겨 먹는 간식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터틀젤리를 산 가게는 70년이 넘은 곳으로, 배우 장궈룽(張國榮)이 영화 <시티보이즈>를 촬영한 장소로도 유명했다.
홍콩, 광둥요리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딤섬이다. 딤섬(點心)은 마음에 점을 찍는다는 뜻으로, 차와 함께 먹는 간단한 요리를 의미한다. 국내에선 주로 만두 종류가 알려져서 ‘딤섬=만두’라는 고정관념이 있는데, 만두도 딤섬의 한 종류라고 보면 된다. 하가우, 샤오마이, 춘권뿐 아니라 쌀가루를 얇게 말아 쪄낸 청펀, 닭발구이, 연잎밥, 달콤한 케이크나 타르트 등 차와 함께 먹는 것은 무엇이나 포함된다. 이 때문에 홍콩에서는 ‘얌차(飮茶·차를 마시다)’라는 말로 딤섬을 먹는다는 의미를 표현한다. 홍콩 전역에는 수많은 종류의 딤섬이 있고 지금도 계속 새로운 딤섬이 나오고 있다. 딤섬은 전통적으로 아침이나 점심용이지만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레스토랑에서는 저녁에도 딤섬을 내는 경우가 있다. 홍콩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에게 특히 인기가 높은 차이니즈 라이브러리에서는 락사(싱가포르식 국수)나 윈터멜론(동과) 등으로 만든 딤섬도 내놓는다. 홍콩식 딤섬 문화를 즐기려면 현지인이 주로 가는 곳을 찾아야 한다. 홍콩섬 노스포인트 지역에 있는 ‘봉성주가’는 딤섬을 앞에 놓고 느긋하게 차를 마시며 신문이나 잡지를 보는 현지인들로 아침부터 북적이는 곳이었다. 하가우와 샤오마이, 청펀, 차슈바오, 닭발 등을 주문했다. 철관음과 보이차를 곁들여 딤섬으로 채우는 아침 식탁. 옆자리에서는 알아들을 수 없는 중국말이 오가고, 눈앞에선 딤섬을 담은 작은 대바구니를 실은 수레가 오간다. 비로소 진짜 홍콩에 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천천히 딤섬을 먹은 뒤 식당을 나왔다. 오전 10시가 아직 안 된 시간인데 좁은 보도에는 끝없는 줄이 늘어서 있었다. 딤섬집 바로 옆에 있는 에그롤 상점 ‘덕성호’ 앞에서 시작된 것이다. 족히 2시간은 기다려야 살 수 있다는 에그롤 맛이 궁금했지만 엄두가 나지 않았다. 외국인 관광객과 젊은이들이 많이 모이는 센트럴의 유명 빵집 베이크하우스나 팥빙수집 샤리샤리 앞에 늘어선 줄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줄을 서 있는 사람들의 상당수는 현지인으로 보이는 나이 지긋한 이들이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이튿날 아침에도 가봤지만 역시나였다. 한순간에 잦아들 열풍이 아니었다. 먹는 것에 진심인 이들이 꼽은 ‘찐 맛집’을 그냥 지나쳐야 하다니. 누군가 홍콩에서 가장 구하기 어려운 기념품이라고도 했다는데, 이 에그롤 때문에 다시 홍콩에 와야 할 이유가 생겼다.
홍콩 | 박경은 기자 ki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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