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은 모른다 [詩의 뜨락]
2023. 11. 10. 22:41
정영효
울타리를 넘기 전까지 염소는 온순했다 의심하기 전까지 거짓은 단순했다 무서워지기 전까지 표정은 희박했으며 선택하기 전까지 분명히 기회가 있었다 말하지 못해서, 말보다 자신이 더 확실해서 드러나기 전까지 증거는 숨어 있었다 날씨가 되기 전까지 안개는 자유로웠고 외국인으로 불리기 전까지 그는 어느 도시의 시민이었다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이유가 부족했을 것이다 끝나지 않았더라면 짐작을 멈췄을 것이다 반복할수록 스스로 갇혀버린 생각에는 만족하기 전까지 계획이 없었다 포기하기 전까지 불안은 많았다 시작하는 순간부터 나는 여기서 살아왔고 돌아보는 모습을 붙잡으며 여전히 설명을 미루고 있다
-시집 ‘날씨가 되기 전까지 안개는 자유로웠고’(문학동네) 수록
●정영효 시인 약력
△1979년 남해 출생. 2009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 시집 ‘계속 열리는 믿음’ 등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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