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근대화의 서사 해부… 젠더화된 민족주의를 추적하다
지식인 남성의 나약함 그린 작가 이광수
박정희·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사도 분석
무력 숭상부터 강인한 정신력까지 변천
한 시대의 의식 흐름 집약적으로 보여줘
애국의 계보학/실마 미요시 야거/조고은 옮김/나무연필/2만원
“어떻게 새 국민을 만들어야 할까? 강건하고 용진하는 국민을 만들어야 한다. 왜 그런가? 칼산 칼물이 도처에 종횡하고 백 가지 괴물과 천 가지 마귀가 곳곳에 가득한 이 시대에 강건한 국민이 아니면 저것에 맞서기 어려우며, 용진하는 국민이 아니면 저것과 싸우지 못할지니라.”
반면, 기생으로 살아가던 영채는 신여성 병욱의 도움으로 목숨을 구한 뒤 새 나라를 위해 헌신할 것을 다짐한다. 사적 사랑을 애국으로 환치시키는 지점이다.
젊은 시절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의 연인으로 알려져 화제가 된 미국 오벌린대 동아시아학 교수인 저자는 책에서 개화기 및 일제강점기부터 김대중 전 대통령 시대까지 대한민국 정체성 또는 민족주의 서사의 계보를 추적한다.
저자는 이를 위해 발터 벤야민의 ‘몽타주 이론’을 채용, 일제강점기의 신채호와 이광수부터 해방 이후 박정희 대통령과 1980년대 학생운동권, 전쟁기념관을 거쳐 김대중 전 대통령의 텍스트나 담화 속에 담겨 있는 민족주의 서사, 한국 근현대사의 내적 논리를 탐색한다.
해방 이후 국가 정체성 서사는 군사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대통령과 군사정권에 맞선 1980년대 학생운동권, 1994년 설립된 전쟁기념관을 중심으로 살펴본 뒤, 영웅적인 남성성 서사가 박정희 대통령과 1980년대 학생 운동권 등에서도 지속적으로 변주된다고 분석한다.
“신라 때부터 전승된 꿋꿋한 호국 민족정신인 국선 ‘화랑도’의 지행합일의 지도자상을 무너뜨리고 문약에 빠져 광개토왕의 웅대한 고구려적 웅위는 사라지고 계속되는 외적의 침입을 받은 것이 이조이다…. 그 화랑도의 이조적 중흥이 이 충무공의 찬란한 호국 행적이다.”(1962년, ‘우리 민족이 나아갈 길’)
저자는 박정희 대통령이 정력적으로 추진한 새마을운동에서도 군사적인 남성성이 극적으로 드러난다고 분석한다. 박정희는 사상적으로 신채호와 대척점에 서 있지만, 이순신을 비롯해 군사적 남성성을 강조하는 서사 전략은 닮아 있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군부독재에 맞서 민주화를 주장한 1980년대 학생 운동권도 유약한 남성성, 군부독재의 잘못된 아버지를 넘어서려 했으면서도 민족사와 가족 사이의 연결고리를 강조함으로써 가부장적, 효성을 다하는 아들 상을 제시했다고 분석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남성성은 과거 한국이 경유해온 남성상의 계보와 다르다고 분석한다. 즉, 이전의 남성상이 무력을 숭상하는 군사적 남성상(신채호, 박정희 등)이나 무력한 남성상(이광수 등)이었다면, 김대중의 남성상은 기독교적 용서에 기반한 정신적으로 강인한 남성성을 드러낸다는 것이다.
“용기 있는 사람만이 용서할 수 있습니다. 국민 외에는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 올바른 사람은 반드시 승리한다는 확신을 가진 사람만이 진정한 용기를 낼 수 있습니다. 용서야말로 최대 승리라는 철학과 신념을 가진 자만이 자신 있게 용서를 할 수 있습니다.”
저자는 1987년 여름 샤머니즘을 연구하기 위해서 한국을 방문했다가 6월 항쟁을 목도한 뒤 자신의 연구방향을 선회, 인류학에서 역사학으로 전공을 바꾸고 한국 학생운동을 주제로 박사논문을 작성했다. 논문은 이 책의 원형이었다.
“전혀 다른 정치적 의제를 가진 사람들이 전혀 다른 이데올로기적 목적을 위해 다양한 방식으로 동일한 서사를 활용하는 경우도 상당하다. 학생운동 세력과 국가 민족주의자들은 각기 자신의 정통성을 표명하기 위해 특정한 주장을 펴면서 매우 유사한 수사 표현을 재현하는 전략을 구사했다.”
책은 한국 근현대사 서사를 이해하는 데 독창적인 시각을 제공해주지만, 총체성이나 정확성 측면에서 다소 아쉽다. 일제강점기에는 근대화 과제와 함께 식민지배 청산, 해방 이후에도 근대화와 함께 민주주의라는 이중 과제 속에 있었던 역사를 너무 단순하게 파악하거나, 1980년대 학생 운동권을 북한 김일성에 소구된 것으로 쉽게 단정한 점 등이 보이기 때문이다. 이는 결과적으로 한국의 근대화 서사를 남성성 비판, 젠더의 문제로 단순화시킨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김용출 선임기자 kimgij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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