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 교전 중지 '하루 4시간' 뿐…난민 몰린 가자 대형 병원 공격 위기

2023. 11. 10. 2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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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 '3일 중지' 제안에도 이스라엘 기존 조치 확장 그쳐…NYT "알시파 병원 공격 땐 수백~수천 사망"

[김효진 기자(hjkim@pressian.com)]
가자지구 사상자 급증으로 인도주의적 휴전에 대한 국제적 요구가 커지는 가운데 미국 백악관이 이스라엘이 하루 4시간 가량의 교전 일시 중지 조치를 도입하기로 했다고 9일(이하 현지시각) 밝혔다.

다만 이스라엘 쪽은 이 조치가 지난 주말부터 열어 온 가자지구 북부에서 남부로의 대피 통로의 연장선일 뿐 정책 변경은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가자시티를 포위한 이스라엘군이 하마스 지휘소가 은폐돼 있다고 주장한 가자지구 대형 병원 인근까지 접근한 것으로 보여 병원 공격과 이에 따른 민간인 참변에 대한 우려가 커진다.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전략소통조정관은 9일 언론 브리핑에서 "가자지구 북부의 적대 행위 지역을 탈출할 수 있는 두 개의 인도주의적 통로가 열릴 것"이라며 "이스라엘이 가자지구 북부 지역에서 매일 4시간의 교전 중지를 시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 조치가 9일부터 시행되고 전투 중지 예정 3시간 전에 이를 미리 알린다고 설명했다. 또 전투 중지 시간 동안 대피 통로가 열릴 뿐 아니라 해당 지역에 인도주의적 지원이 흘러 들어올 수 있다고 덧붙였다.

커비 조정관은 다만 이 4시간 교전 중지가 언제까지 지속될지 구체적 일정은 제시할 수 없으며 "좋은 첫 단계"라고만 했다. 또 "현재로선 여전히 휴전이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한다"며 "휴전은 하마스가 10월 7일에 저지른 일을 정당화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조치는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이 이스라엘 쪽에 요구해 온 3일 이상 교전 중지에 미치지 못하는 것이다. 7일 미 매체 <악시오스>가 6일 바이든 대통령이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의 통화에서 3일 간 교전 중지에 동의할 것을 촉구했다고 보도한 데 이어 <뉴욕타임스>(NYT)는 바이든 대통령이 9일 기자들에게 네타냐후 총리에게 "3일 이상의 교전 중지를 요구했다"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9일 바이든 대통령은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이스라엘의 하루 4시간 교전 중지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는 하나의 단계"라고 평가했다.

이스라엘군은 이번 조치가 정책 전환이 아닌 주말부터 시행해 온 가자지구 북부 주민 대피 통로 일시 개방의 연장선이라며 선을 그었다. 이스라엘 쪽은 그간 하루 4시간 가량 가자지구를 남북으로 관통하는 살라알딘 도로를 열어 민간인의 남부 이동을 촉구해 왔다.

이스라엘 매체 <타임스오브이스라엘>에 따르면 리처드 헥트 이스라엘군 대변인은 9일 기자들에게 "인도주의적 지원을 위한 제한된 시간과 공간의 전술적, 지역적 전투 중지"만을 계획하고 있으며 이는 그간 시행해 온 일일 4시간 통로 개방의 연장선으로 정책 "전환이 아님"을 밝혔다. 그는 다만 이를 더 "확장"하고 이동을 촉진할 뜻을 내비쳤다.

이스라엘이 북부를 포위하고 지상전이 점차 격렬해지며 대피 인원은 급증하고 있다. 유엔(UN) 감시단 추산 지난 6일엔 하루 5000명 가량이었던 살라알딘 도로를 통한 대피 인원이 7일엔 1만 5000명으로 늘었다. 이스라엘 쪽은 8일엔 대피 인원이 5만 명으로 급증했으며 9일엔 8만 명에 달했다고 밝혔다.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OCHA)에 따르면 9일엔 살라알딘 도로 개방 시간도 7시간으로 늘었다. 미 CNN 방송은 이스라엘 쪽이 제시한 대피 인원 수를 독립적으로 확인할 순 없었지만 현장 기자가 8일 대피 인원이 7일보다 많았다고 전했다고 설명했다.

돌아올 기약이 없는 여정이지만 북부를 떠나는 난민 대부분이 간단한 소지품만을 챙긴 채 도보로 이동했다. 지난달부터 이어진 이스라엘의 봉쇄로 가자지구는 심각한 연료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포위된 가자시티에 인접한 해변 난민촌에 살던 칼레드 아부 이사는 거주지가 반복적으로 포격을 당한 끝에 피난길에 올랐다고 <로이터> 통신에 말했다. 그는 피난길에서 "군용차나 하마스 소속이 아닌 우리 같은 민간인과 민간 차량을 이용했던 이들의 부패한 주검을 봤다"고 덧붙였다.

피난길에 오른 팔레스타인인들이 이번 이동이 제2의 나크바(1948년 이스라엘 건국 당시 팔레스타인인들의 집단 실향)과 같다고 한탄하고 있는 가운데 미국의 데이비드 새터필드 중동 인도주의 문제 특사는 9일 언론 브리핑에서 "우리는 기본 원칙상 가자지구 주민의 이주를 지지하거나 원하지 않는다"며 "현재 남쪽에 있는 이들이 안전해지면 북쪽으로 돌아갈 수 있는 모든 능력을 갖춰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스테판 두자릭 유엔 사무총장 대변인은 9일 언론 브리핑에서 전투 일시 중지의 "시기와 장소 문제에 관해 유엔과 조율할 필요"가 있다고 밝히고 "인도주의적 목적을 안전하게 달성하기 위해 분쟁 당사자 모두가 동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알시파 병원 1.2km 지점서 탱크 목격…NYT "국제 비난 커지며 이스라엘 작전 시간 제한"

대피 시간 연장에도 가자지구 북부에서 전투가 잦아들었다는 보고는 없었다고 9일 <로이터>가 전했다. 가자지구 보건부에 따르면 8일 오후 2시부터 9일 오후 2시까지 24시간 동안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가자지구에서 243명의 팔레스타인인 숨졌다.

8일 가자시티 주거용 건물에 대한 공습으로 19명, 자발리아 난민촌에 대한 공습으로 15명이 숨졌고 9일 칸유니스 동부 한 건물도 공격 받아 6명이 숨졌다. 가자지구 보건부 집계에 따르면 지난달 7일부터 이달 9일까지 이스라엘군 공격으로 가자지구 주민 1만818명이 사망했다.

특히 이스라엘군이 하마스 작전 센터가 은폐돼 있다고 주장한 가자지구 대형 병원에 대한 공격이 임박한 것으로 추정됨에 따라 우려가 커진다. <로이터>는 9일 가자지구 주민들이 가자시티에 위치한 알시파 병원에서 불과 1.2km 떨어진 곳에서 이스라엘군 전차(탱크)를 목격했다고 증언했다고 보도했다.

이날 가자지구 보건부 대변인은 이스라엘군이 알시파 병원 안뜰을 타격해 사상자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수천 명의 피난민이 대피한 알시파 병원 안뜰은 사실상 난민촌이 돼 있는 상태다. 알시파 병원장 모하마드 아부 살미야는 카타르 알자지라 방송에 이번 공습으로 4명이 부상을 입었고 병원 인근에서 극심한 충돌과 폭격이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이스라엘군은 이미 지난주 알시파 병원 앞에서 구급차를 폭격해 15명을 숨지게 했고 이에 대한 비난이 일자 구급차에 하마스 대원이 타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가자지구 보건부, 병원, 팔레스타인 적신월사 등은 이를 부인하고 구급차가 부상자를 태우고 이집트 대피를 희망하며 가자지구 남부로 향하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알시파 병원 쪽은 지난 6일엔 병원 옥상이 폭격 당해 사상자가 발생하고 태양광 패널이 파괴됐다고 밝혔다. 이스라엘 쪽은 부인했다.

알시파 병원으로 환자 뿐 아니라 수천 명의 피난민이 모여 들어 사실상 난민촌이 형성돼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병원 및 병원 인근에서 본격 전투가 벌어질 경우 민간인 피해가 극심할 것으로 보인다. 9일 <뉴욕타임스>는 한 미국 고위 당국자가 이스라엘군이 알시파 병원을 공격할 경우 수백~수천에 이르는 팔레스타인인들이 사망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고 전했다.

<로이터>는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 대변인이 "우리는 병원이 국제인도법에 따라 보호 받는 건물임을 알고 있다"며 "예를 들어 병원이 군사적 목적으로 사용되고 있다고 해도, 한쪽의 행동에 관계 없이 다른 쪽은 적대 행위에 대한 국제 인도주의 규칙을 준수해야 한다"고 경고했다고 전했다.

알시파 병원 뿐 아니라 가자지구 북부 다수 병원들도 위험에 처한 것으로 보인다. <로이터>는 10일 인도네시아 외무부가 성명을 내 이스라엘이 하마스 지휘소를 은폐하고 있다고 지목한 또 다른 병원인 가자지구 인도네시아 병원 인근에서 밤사이 폭발이 발생해 병원 일부가 손상됐다며 "가자지구의 민간인, 민간 시설, 특히 인도주의 시설에 대한 야만적 공격을 규탄한다"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이슬람권의 적십자 격인 팔레스타인 적신월사는 8일 알쿠드스 병원 인근이 이스라엘의 폭격을 당해 병원으로 향하는 모든 도로가 폐쇄됐다고 밝혔다.

이스라엘이 강경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지만 민간인 사상자가 급증해 국제적 비난이 커지며 미국 관리들은 사실상 이스라엘의 군사 작전 시간이 제한돼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고 9일 <뉴욕타임스>가 분석했다.

매체는 이스라엘이 지상 작전을 서두르며 민간인 위험을 완화할 사전 계획을 세울 시간이 거의 없었고 민간인 사망 규모가 클 수 밖에 없었다고 미 당국자들이 지적했다고 전했다. 매체는 작전이 길어질수록 휴전을 요구하는 전 세계 국가들에 둘러싸여 이스라엘과 그 동맹인 미국은 더 고립될 수 있으며 이스라엘이 목표를 달성할 시간은 무한하지 않다고 짚었다.

알자지라를 보면 이날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주도해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서방 및 아랍 국가, 국제기구, 비정부기구 등이 모인 가자지구 인도적 지원 관련 회의에서 마크롱 대통령은 "매우 빠른 인도주의적 전투 중지가 필요하며 휴전을 향해 노력해야 한다"고 촉구하기도 했다.

한편 지난달 바이든 대통령이 가자지구 보건부가 제시한 사상자 통계의 신뢰성에 의문을 제기한 가운데 <로이터>를 보면 9일 바버라 리프 미 국무부 근동 담당 차관보는 하원 외교위원회에서 가자지구 사망자 규모가 "인용된 것보다 더 클 수 있다"며 정확한 규모는 "총성이 진정된 뒤에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9일(현지시각)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북부 주민들이 이스라엘 쪽이 일부 개방한 대피 통로를 따라 남부로 향하는 피난길에 올랐다. ⓒ로이터=연합뉴스

[김효진 기자(hjkim@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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