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빨대, 폐기된 ‘쓸모’…직원 전원이 퇴사했다[‘종이빨대’업체들의 눈물]

박채연·이유진 기자 2023. 11. 10. 2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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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집힌 친환경 정책에 ‘날벼락’
“설비·생산량 늘려놨는데…” 절망
소상공인 부담 해소? “기준 뭔가”
소규모 업체들 ‘줄도산’ 위기
지난 9일 찾은 경기 화성시의 친환경 종이빨대 제조업체 리앤비 공장에서 한 직원이 종이빨대를 정리하고 있다. 한수빈 기자

지난 9일 오후 경기 화성시 종이빨대 제조회사 리앤비의 창고엔 빨대 5000개가 들어 있는 박스 1만4000여개가 빨간 물류용 팰릿마다 켜켜이 쌓여 있었다. 1500평 부지에 들어서 있는 건물 3채는 공장과 창고, 사무공간 등으로 활용되고 있었다. 이날도 공장에선 한창 종이빨대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기계 10대마다 마스크와 헤어캡을 착용한 직원 두세명이 짝을 이뤄 작업 중이었다. 이렇게 만들어지는 빨대가 하루 500만개에 이른다.

2018년 설립된 리앤비는 독자 기술로 친환경 종이빨대를 생산해 주목받았다. 접착제를 사용하던 기존 공정에서 접착제를 쓰지 않고 빨대를 제조하는 방법을 개발했다. 최광현 리앤비 대표(63)는 “스타벅스의 요청으로 사업을 본격화했다”고 했다. 그는 “당시 종이빨대 대부분이 중국산이었고, 국내 생산제품이 없었다. 친환경 정책 기조에 맞춰 산업군으로서 역할도 하고 환경보호에도 기여한다는 생각으로 일해왔는데…”하며 말끝을 흐렸다.

환경부가 지난 7일 이미 예고한 일회용품 규제를 사실상 폐지하는 일회용품 관리정책을 전격적으로 내놓으면서 종이빨대 제조회사들은 그야말로 ‘날벼락’을 맞았다. 계도기간 종료(23일)를 보름가량 앞두고 생산량을 늘려놨는데, 편의점과 커피전문점 등에서의 플라스틱 빨대 사용 금지 단속이 무기한 유예된 것이다. 하루아침에 손바닥 뒤집듯 바뀐 정책에 최 대표는 “우리는 생존이 달린 문제”라며 한숨부터 내쉬었다. 종이빨대 제조업체 대표 10여명은 오는 13일 환경부 청사 앞에서 집회를 열 예정이다.

최 대표는 “정부 발표 전까지는 창고 물량의 40~50%가 꾸준히 출하됐는데, 지금은 재고 7000만개 중 20%만 출하가 확정된 상태”라며 “계도기간이 끝나는 11월부터 고객이 3~5배 늘어날 것이라고 보고 설비를 대거 증설했는데 난감하다”고 했다. 리앤비는 최근 자동으로 생산량을 점검하는 전산화 장비 2대도 새로 들였다. 최 대표는 현재 상황을 ‘정책에 의한 피해’로 규정하며 “정책에 의한 피해는 정책으로 풀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환경부 대응 방식에도 분통을 터뜨렸다. 최 대표는 “환경부에 계속 문의를 했다. 일부 소상공인들이 규제에 불만 제기를 한다는데 어떻게 하냐고. 지난달 통화에서는 기조가 변할 것 없다는 답을 들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런데 11월2일부터는 전화를 받지 않더라. 오늘까지도 연락이 닿지 않고 있다”고 했다.

직원들은 ‘소상공인 부담 해소’라는 명분에 의문을 표했다. 직원 A씨는 “구멍가게도 이런 행정은 안 한다. 갑작스러운 정도가 아니라 상식 밖의 일”이라며 “누구를 위해 소상공인을 기준 삼아 정책을 왔다 갔다 하는지 모르겠다. 소상공인의 기준이 어디에 있는가. 기준이 없는 행정”이라고 비판했다.

리앤비는 스타벅스 등 대형 커피전문점에 종이빨대를 납품하고 있어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라고 했다. 이보다 작은 소규모 종이빨대 제조업체들은 ‘줄도산’ 위기에 놓였다. 우뭇가사리를 이용해 친환경 종이빨대를 만들어온 누리다온은 정부 발표 하루 만인 지난 8일 직원 11명 전원이 퇴사했다. 누리다온 대표 한모씨는 10일 통화에서 “앞이 안 보이는 상황에서 직원들에게 조금만 더 버티자고 말할 면목이 없었다”며 “3개월 유예라든지 기간이라도 밝혔으면 ‘조금만 더 기다려보자’고 했을 텐데 무기한이라고 하니 눈물을 머금게 됐다”고 했다.

박채연·이유진 기자 applaud@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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