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 바꿔줬으면 남편 안 죽었죠"…K-열풍 이면 (풀영상)

정반석 기자 2023. 11. 10. 2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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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인력을 구하지 못한 우리 기업이 합법적으로 외국인 근로자를 고용할 수 있도록 한 '고용허가제'가 시행된 지 20년째입니다. 저출생으로 갈수록 기업에는 일손이 부족해지고 있는 상황이라, 이제 우리나라에서 외국 인력은 없어선 안될 존재가 됐습니다.

[건설 현장 관계자 : 건설 현장을 기피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외국인 근로자를 쓸 수밖에 없는….]

[홍형기/진우식품 이사 : (외국인 노동자 없었으면) 회사 자체 라인이 멈췄을 것 같습니다.]

[타나폰/태국 노동자 : 내 공장 같아요. 그래서 오래오래 하고 싶어요 일을.]

[나영미/과일 가게 주인 : 한국 사람은요, 나 오늘 처음 만났어요.]
 
보신 것처럼 국내에 거주하고 있는 외국인은 251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5%에 달하는데요. 저희는 한국이 외국인 근로자에게 얼마나 매력적인 나라인지, 또 우리 사회는 그들과 함께 살아갈 준비가 돼 있는지 독일, 일본, 네팔을 직접 찾아가 취재했습니다.

오늘(10일)은 그 첫 번째 순서로, 네팔에 부는 한국 열풍을 정반석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기자>

현재 한국에 가장 많은 고용허가제 인력을 수출한 국가는 네팔입니다.

네팔 제2의 도시 이곳 포카라에선 한국어를 배우려는 학생들이 갈수록 늘고 있습니다.

차로 10시간 거리에 떨어진 농촌 지역에서 물소를 판, 나름 거액의 돈을 들여 한국어 학원이 있는 이곳으로 유학 온 학생도 있습니다.

[채트리/한국어 학원 학생 : 학원비와 월세까지 한 달에 20만 원 정도 들어요. 네팔에서는 한 사람 월급 정도니까 큰돈입니다.]

[(한국말로 부탁드릴게요) 돈을 많이 벌고 싶어요, 기술 배우고 싶어요, 한국 문화를 제일 좋아해요.]


한 해 9만 명 이상 한국어 시험에 응시하고, 그중 10% 남짓만 합격할 정도로 경쟁이 치열합니다.

한국이 기회의 땅으로 인식되는 건 성공의 증거들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카니야 카이라하니 시장은 한국에서 일한 경험과 인적 네트워크를 활용해 빈곤 여성들을 위한 홈스테이 사업을 벌이고 있습니다.

[카니야/치트완 카이라하니 시장 : 한국에 있을 때 '귀국하면 우리 마을도 이렇게 개발하고 싶다' 이런 생각을 했고, 그래서 정치를 하게 됐습니다.]

한국은 더 나은 삶과, 더 나은 사회를 꿈꾸는 주변국의 엘리트들을 끌어들일 충분한 잠재력을 가진 나라였습니다.

[카니야/치트완 카이라하니 시장 : 한국에서 일하다 온 사람들은 한국 드라마를 많이 보고, LG, 삼성, 기아 같은 한국 제품을 사랑하게 됩니다. 결국, 네팔 사회가 한국과 비슷하게 변하고 있는 겁니다.]

(영상취재 : 한일상·유동혁·강동철·윤 형, 영상편집 : 김준희·오영택, 디자인 : 강경림·방명환·서승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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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이렇게 한국에 와서 일하며 더 나은 삶을 꿈꾸는 외국인도 있지만 오히려 한 가정이, 그리고 개인의 삶이 무너지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직접 그 사례를 겪은 네팔인들의 증언을 통해 우리 고용허가제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도 살펴봤습니다.

<기자>

풀라미 씨가 한국에 왔던 길을 되짚어가는데 이동시간만 13시간 걸렸습니다.

코리안 드림을 꿈꿨다가 오히려 좌절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얼마 전 남편을 잃은 크리슈나 씨를 직접 찾아가 보겠습니다.

지난해 9월 전북 익산의 석재공장에 취업한 후 전화 속 남편은 계속 아프다고만 했습니다.

[크리슈나/숨진 노동자 아내 : 항상 배가 아프고 무거운 돌을 옮기느라 일이 힘들어서 못 하겠다는 말을 계속했어요]

결장염 진단을 받고 사업장 변경을 호소했지만 사장도, 한국 정부도 모두 외면했다고 합니다.

[크리슈나/숨진 노동자 아내 : 한국 갈 때 사장님 쓴 돈 있으면 드릴 테니 사업장 변경 신청 서류를 달라고 했대요. 그런데도 남편에게 개처럼 대했대요.]

석 달 뒤 풀라미 씨는 공장 숙소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습니다.

사인 미상의 '돌연사'였습니다.

보상도 없이 크리슈나에겐 22개월 된 딸만 남았습니다.

[사업장 변경의 자유, 보장하라!]

고용허가제에서 사업장 변경 제한은 늘 논란이었습니다.

무슬림 노동자에게 돼지 내장 세척 작업을 시키면서 사업장 변경 요청을 거부한 사례도 있었습니다.

사업장 변경은 원칙적으로 사업주 동의가 있어야 하고, 한 사업장에서만 쭉 일해야 비자 만료 후 다시 한국에 들어와 일할 기회를 잡을 수 있기 때문에 사업주의 부당한 지시를 거부하긴 어렵습니다.

의수를 찬 채 취재진과 만난 산토스도 그랬습니다.

전북 정읍 농장에서 소 키우는 일을 하기로 계약했는데, 사료 기계 수리를 하다 한쪽 팔을 잃었습니다.


[산토스/산재 피해자 : 아들 사장님이 그건 잘못했어요. 왜냐하면 손 빼라고 말해야 하는데 그냥 가만히 딱 스위치 눌러버렸어요.]

배운 적도 없는 기계 수리를 어쩔 수 없이 하다가 사고가 난 겁니다.

[산토스/산재 피해자 : 사장님 말하면 어차피 우리 해야 해요. 화가 나도 어차피 화낼 수 없잖아요.]

대학에서 회계학을 공부하던 유망한 청년의 인생은 송두리째 바뀌었습니다.

[산토스/산재 피해자 : 경영학 공부하다가 일자리도 빨리 잡을 수 있었어요. 이제 내가 어떻게 살아요? 팔 없어요. 이렇게 나쁜 생각만 났어요.]

내·외국인 산재 사망률 차이는 7배, 이렇게 극심한 위험의 이주화가 나타난 건 사업주에 대한 종속을 강화한 사업장 변경 금지 제도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습니다.

[임선영/국가인권위원회 이주인권팀장 : 인권위는 사업장 변경 금지 원칙의 폐지 검토를 권고한 바 있습니다. 열악한 환경에서도 사업주의 동의가 없으면 계속 일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이미 사실상 강제노동에 가깝다….]

(영상취재 : 유동혁, 영상편집 : 오영택, 디자인 : 강경림·최하늘·김정은)

▷ 한국 온 외국인들 "사장님 동의 없인 아무것도 못 해요"
[ 원문 링크 : https://news.sbs.co.kr/d/?id=N1007419137]
▷ "한국은 기회의 땅"…네팔에 부는 K-열풍
[ 원문 링크 : https://news.sbs.co.kr/d/?id=N1007419136]

본 보도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정부 광고 수수료를 지원받아 제작되었습니다.

정반석 기자 jbs@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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