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CVC가 주목한 한국 기술…블록체인·수소 그리고 '이것' [긱스]
글로벌 기업형 벤처캐피털(CVC)이 국내 최대 스타트업 축제인 '컴업 2023'이 열리는 동안 한국을 방문했습니다. 참석자 상당수가 한국을 처음 방문했을 정도로 K-스타트업은 글로벌 무대에선 신예입니다. 중소벤처기업부가 주관한 '글로벌 CVC 간담회'에서 주요 CVC가 주목한 딥테크 기술이 무엇인지, K 스타트업이 글로벌 투자자의 선택을 받기 위한 조건은 무엇인지를 한경 긱스(Geeks)가 정리했습니다.
글로벌 기업형 벤처캐피털(CVC)들이 주목할 만한 국내 딥테크 기술로 '수소·블록체인·콘텐츠 생성·AI' 분야를 꼽았다.
소니, 브리티시 페트롤리엄(BP) 등 주요 기업의 CVC 대표자들은 9일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국내 스타트업 축제 '컴업 2023'과 연계해 열린 '글로벌 CVC 간담회'에 참석했다. 이번 간담회는 중소벤처기업부와 한국벤처캐피탈협회 산하 CVC 협의회가 영국 미디어 기업 GCV와 함께 준비한 '글로벌 CVC 콘퍼런스'의 첫 일정이다. 10일엔 JW메리어트 동대문 스퀘어에서 글로벌 CVC 네트워킹 행사인 ‘GCV in Asia'가 진행됐다.
이날 간담회를 주관한 이영 중기부 장관은 "국경과 국적의 구분이 희미해지고 있다"며 "내년부터 한국 국적이면 어디서 창업하든 동등하게 정부 지원을 받을 수 있고, 한국에서 창업하는 외국인에도 비자 규제를 획기적으로 풀고 동등한 지원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K-스타트업이 해외에 진출하는데 글로벌 CVC가 교두보 역할을 해줄 것"을 당부했다.
이 장관은 "한국은 유니콘 기업 보유 수로는 23개 사로 세계 10위인데, 내수와 서비스 중심이라 글로벌 유니콘이라기엔 아쉬움이 있다"며 "딥테크 스타트업을 키우기 위해 2조원 규모 펀드를 만들고 10개 분야에 집중적으로 지원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중기부는 내년 1분기 오픈AI와 국내 스타트업 간 오픈이노베이션을 시작으로, 아마존웹서비스(AWS), 로레알 등 해외기업과의 협력을 진행할 예정이다.
CVC 협의회 초대 회장으로 선정된 허준녕 GS벤처스 대표는 "CVC는 대기업의 인프라를 이용해 스타트업의 아이디어를 검증하고 더 빠르게 확장하는 게 기여한다"며 "대기업도 CVC를 통해 기존 조직을 혁신하고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해외 CVC가 주목한 딥테크 기술
해외 CVC들은 한국 딥테크 스타트업의 기술력을 높이 평가했다. 겐 추치카와 소니벤처스 대표는 "컴업에서 두 곳의 한국 스타트업을 만나봤는데 생성형 AI를 이용해 콘텐츠를 생성하는 게 엄청난 비즈니스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기대했다.
가레스 번즈 BP벤처스 부회장은 "탄소배출 저감 등 글로벌 미션에 부합하는 최고의 회사에 투자하려고 한다"며 "오늘 아침 현대차와 수소에너지와 수소 충전사업에 대해 논의했는데 계속해서 논의가 발전해 나가길 바란다"고 말했다.
SRI(스탠포드연구소) 벤처스를 이끄는 토드 스타비시 매니징디렉터는 "우리는 스타트업뿐만 아니라 지식재산권(IP)에도 투자한다"며 "한국의 KAIST에서 IP가 많이 나와 관심을 갖고 있으며 최근에도 클라우드 보안회사에 투자했다"고 설명했다.
삼성전자의 미국 CVC인 삼성넥스트의 데이비드 리 부사장은 "지금까지는 유니콘이 될만한 스타트업에 벤처 자금이 몰렸지만, 최근 들어 기술만 보고 투자하기 시작했다"며 "한국의 블록체인과 인공지능(AI) 기술 기업이 두각을 발휘하기에 좋은 기회"라고 강조했다.
리 부사장은 "우리가 최근 투자한 '스토리 프로토콜'조차도 한국의 블록체인 인재는 세계적인 수준이라고 평가할 정도"라며 "블록체인과 웹3 스타트업이 크게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반도체 인프라가 있어야 AI 기술 기업이 성장한다"며 "미디어와 엔터테인먼트까지 합쳐진 서울의 스타트업 생태계는 매우 매력적"이라고 평가했다.
한국 스타트업 투자를 주저하는 까닭은
겐 대표는 "일본에서 VC 콘퍼런스가 열리면 영국 정부나 이스라엘은 자국 스타트업을 정말 많이 데리고 오는 반면 옆 나라인 한국의 스타트업은 많이 못 봤다"며 "한국 기술이 훌륭한 만큼 이를 해외로 잘 전달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LG그룹의 미국 CVC인 LG테크놀로지스의 김동수 대표 역시 "한국의 스타트업 생태계는 훌륭하지만, 인지도가 낮아 해외 투자자가 한국 기업에 투자하기는 쉽지 않을 수 있다"며 "한국 VC가 좀 더 적극적으로 해외 진출에 나서는 게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규제의 안정성과 세제지원이 해외 VC를 유인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왔다. 번즈 부회장은 "투자 툴이 지속적이고 안정적이면 리스크를 상당 부분 제거한다"며 "투자 기업을 심사할 때도 이 부분을 중요하게 살핀다"고 말했다. 리 대표는 "실리콘밸리의 성공 뒤엔 엔젤 투자 세액공제가 있다"며 "1000만달러(약 132억원) 미만의 벤처투자 수익에 대해서는 세금이 전혀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외국인이 더 쉽게 투자할 수 있는 세제가 마련된다면 더 많은 해외 투자자가 한국에 올 것"이라고 덧붙였다.
삼성벤처투자 출신으로 미국 실리콘밸리 기반 GFT벤처스를 공동 설립한 음재훈 매니징 파트너는 "미국 VC들이 쉽고 익숙한 것을 찾는 경향이 있는데 기술력이 좋고 전략적 협력이 가능하다면 스타트업이 위치한 국가는 중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벤처정책 국적 허물고 다시 세팅"
1세대 벤처기업인 출신인 이영 장관은 "2000년 창업 이후 투자받으러 해외에 갔을 때 글로벌 기준이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직접 경험했다"며 "글로벌에서 살아남으려면 스타트업들도 해외에서 직접 뛰며 제품화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지난 25년간 정부의 창업 지원정책을 보면 국내에선 성과를 냈지만, 글로벌에선 부족했다고 평가한다"며 "정책 유효성이 끝났다고 보고, 국경·국적 다 허물고 다시 세팅해야겠다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임정욱 중기부 창업벤처혁신실장은 글로벌 CVC를 향해 "더 용기를 갖고 투자해주길 바란다"며 "해외 VC가 한국에 자주 방문하는 것부터가 시작"이라고 당부했다.
제임스 건넬 GCV 매니징 디렉터는 "한국에서 첫 GCV 행사를 열었는데 전 세계 정부 중에서 한국 정부가 압도적으로 적극적이었다"며 "앞으로 한국 스타트업 커뮤니티와도 협업할 것"이라고 말했다.
허란 기자 wh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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