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택근의 묵언] 지휘자 김성진의 ‘경계 허물기’
과거와 현재, 동양과 서양의 경계에 서 있는 음악인이 있다. 국악지휘자 김성진이다. 서양음악 전공자로는 최초로 국악관현악단장, 예술감독을 맡았다. 그는 ‘최초’에 늘 부대꼈고, 그의 국악인생은 그 최초를 지우는 것이었다. 나라의 소리를 책임지는 국립국악관현악단 예술감독에 올랐음에도 뒤로 숨던 그가 책을 펴냈다. 바로 <경계에 서>이다. 제목처럼 서양음악을 전공하고 국악에 빠져들었다. 하지만 국악인이 되기까지엔 난관이 많았다. “양악과 국악, 크로스오버의 세계에서 나는 그 어디에도 속하지 못했다. 국악의 명인들에게 문외한 이방인이었고, 양악을 하는 이들에게는 소통하지도, 이해하지도 못할 저 너머의 괴짜 외계인이었다.”(<경계에 서>)
김성진은 1998년 국악관현악단을 처음 지휘했다. 미국에서 지휘법을 공부하고 돌아와 대학원에서 강의를 하고 있을 때였다. 강의를 듣던 정대석 거문고 명인이 KBS국악관현악단을 지휘해 달라고 불쑥 제의했다. 그는 망설이지 않고 수락했다. 국악은 잘 몰라도 악보가 있었다. 지휘자로서 자신과 약속한 철칙 하나가 있다. “악보에서 답을 찾자.” 38세에 떠난 유학이었지만 스승 모리스 페레스를 만난 건 행운이었다. 페레스는 선생을 보지 말고 악보를 보라고 일렀다.
처음 접한 곡이 ‘대바람 소리’였다. 악보와 음원을 받았지만 악보만을 챙기고 음원은 듣지 않았다. 오로지 악보 속에서 대바람 소리를 찾았다. 어린 시절 대밭에서 느꼈던 대나무의 속삭임과 세찬 일렁임을 악보에서 일으켜 세웠다. 그렇게 KBS국악관현악단은 새로운 바람소리를 연주했다. “뭐 이런 놈이 다 있어.” 호평이 쏟아졌다.
그렇게 국악계에 데뷔했다. 하지만 호기심 뒤의 시선은 삐딱했다. 그는 자신의 삶이 ‘외로움 자체’였다고 술회했다. 시골학교를 나왔고, 미국의 음악친구들에게는 이방인이었고, 모국에서는 서양음악이 아닌 국악에 빠졌으니 참 어중간한 인물이었다. 욕도 많이 먹었다. 외로울수록 의지할 것은 악보였다. 악보가 스승이고 친구였다. 김성진만큼 국악관현악 악보를 많이 본 사람은 없다. 그러다보니 고독을 즐기게 되었다. 외로워서 맘껏 공부하고, 외로우니까 자신만의 꿈을 꿀 수 있었다.
점차 그를 알아주는 명인들이 생겼다. 황병기, 정대석 같은 이들은 뒷배가 되어주었다. 국악에 빠져들수록 국악기의 음들이 감겨 들어왔다. 소리에서 향기가 피어났다. 그것은 또 다른 득음이었다. 거문고, 대금, 가야금, 해금, 아쟁 등의 농현(음을 흔드는 기법)은 깊고도 오묘했다. 연주자들은 그의 표현대로 ‘손가락 마디마디가 쓸리고 베여 굳은살이 배고, 피가 나도록 울고 또 울어’ 자신만의 소리를 얻는다. 그래서 농현에는 피가 맺혀있고, 울음이 스며있다.
그런 소리들을 섞는다는 게 얼마나 떨리는 일인가. 알수록 무서웠다. 저마다의 소리가 가슴을 찔러 잠 못 이룰 때도 있었다. 그래도 지휘자는 선택하고 답을 내야 했다. 그는 연주자들에게 곧잘 곡의 느낌을 공유해보자고 했다. “나팔꽃 위에 이슬 두 방울이 떨어져 있는 모습을 표현해봅시다.” “노을을 보고 와서 다시 해봅시다.”
관현악단 연주는 수십 명이 내는 소리가 맞아떨어져야 한다. 하지만 국악기의 여음(餘音)을 양악처럼 잘라버릴 수는 없다. 줄지어 나는 기러기 떼에서 한 마리가 이탈하여 초겨울 풍경을 완성시키듯, 가지런한 음들 속에서 단 하나의 음이 이탈하는 파격을 찾아내야 했다.
그의 음악인생은 “왜 국악을 서양 관현악단의 틀 안에 넣는가?”라는 질문에 답을 찾는 여정이었다. 그것은 ‘오늘날의 우리 음악 만들기’였다. 지금 세계 음악인들이 국악을 K클래식으로 인식하며 영감을 얻고 있다. 그는 머잖아 세계인이 국악을 ‘사랑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 확신한다. 그 한복판에 국악관현악단이 있어야 한다며 단원들을 깨웠다.
김성진은 나라의 소리를 만들고 보관하던 국립국악관현악단 예술감독직에서 물러났다. 이제 무대에서 내려와 인생의 4악장을 지휘하려 한다. 젊은이들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전수해주고 싶다. 그러면서도 스승 페레스가 그랬듯이 ‘나처럼 하지 말라’고 이른다. “우리의 인생은 저마다의 음으로 연주되고 있다. 감히 누군가에 의해 재단되고 평가되기에는 너무 찬란하고 아름답지 않은가!”(위의 책) 그는 경계에 서서 경계를 허물고, 그 경계로 많은 이들을 초대하고 있다.
김택근 시인·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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