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 ‘사회’적 합의
밤늦게까지 일하고 집에 가는 길목에서 익숙한 소리가 들렸다. 생후 6주 된 고양이가 난감해서 우는 소리. 발길을 멈추고 들어보니 건물 담장 뒤쪽이었다. 고양이는 쉬지 않고 빼옥빼옥 했다. 사람들은 흘금 보고 무심히 지나갔다. 까치발을 들어도 잘 안 보였다. 어쩌지. 몰라몰라. 야근러는 피곤하다. 세 걸음 정도 집으로 향하다가 다시 뒤돌았다. 쟤도 ‘걔’처럼 그럴 수도 있으니까….
이건 다 걔 때문이다. 여기서 ‘걔’란 고양이 ‘도레레’로, 생후 6주에 우리집에 왔다. 도레레는 지하주차장에 버려진 오토바이 안에서 꾀죄죄하고 아픈 몰골로 꺼내졌다. 그냥 두면 걔가 죽을까 봐 임시보호라도 하려고 데려왔다. 도레레가 온 첫날 식구는 헙, 하고 작은 소리로 말했다. 얘는 너무 작아서 멀리 떨어뜨려 놓고 자야겠다….
우리집엔 생후 1년6개월 된 고양이 ‘한여름’도 있다. 걔는 틈으로 간식이 들어가도 인간에게 부탁하지 않는다. 혼자 계속 앞발을 휘저으면 결국 내가 간다. 나는 막대기를 쓰며 말한다. 너는 엄지손가락이 없지. 걔랑 살며 나한텐 별 거 아니어도 고양이에겐 세상 장벽인 것이 많이 있다는 걸 알아갔다. 나는 6주 된 고양이보다 80배쯤 크고 엄지손가락도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며 가 보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담장 너머를 들여다보니 나뭇가지와 쓰레기가 너무 많아 헛발을 디딜 것 같았다. 전에 크게 넘어져 지하철을 타고 응급실에 갔다. 그 말을 듣고 누가 알려 줬다. 그럴 땐 119를 부르라고. 그땐 어쨌든 내 발로 지하철을 탈 수 있었다. 이럴 때야말로 누가 도와주면 좋을 텐데…. 되려나? 인터넷에 검색해 보았다가 알게 됐다. 고양이에 대해선 119의 도움을 받을 수 없다는 것과 더 나아가 길고양이를 돕지 말고, 다 죽이자고 하는 사람이 아주 많다는 사실을.
한 사람의 세계는 태도에 따라 완전히 달라진다. 몇 마리 고양이를 돕다가 더 많은 것을 알게 되는 세계가 있다. 어떤 사람의 트렁크에는 늘 담요가 있다. 차에 치여 죽은 고양이를 보면 수습하려고. 이렇게 살다 보면 도시에 동물들이 나타난 게 아니라, 인간이 도시를 만드는 내내 동물들이 있었단 걸 알게 된다. 그 세계 밖에 있는 사람들은 뚝 떨어진 고양이에 대해 말한다. 저 세계에선 도시에서 고양이와 어떻게 지낼지 ‘합의’해 가는 중인데, 자기가 문제라고 여기는 걸 빨리, 완벽하게 해결하라고 ‘요구’ 한다. 그렇게 고양이를 죽여 없애자고 말하게 되는 것이다.
소수자 문제에 대해 말할 수 없는 순간이 있다. 상대가 “내 주변엔 그런 사람 없다”고 할 때. 사회적 합의가 중요하다고들 한다. 합의는 논쟁이다. 그러나 그건 적어도 내 친구가 ‘그런 사람’이고 저 사람의 친구도 ‘그런 사람’일 때나 가능한 것이다. 친구란, 그의 곤란함이 나의 곤란함이 될 가능성이 있는 사람이다. 사회의 핵심은 연결됨이다. 한국은 비용을 발생시키는 존재를 죄악시한다. 약한 것은 다 끊어낸다. 이런 정서가 ‘캣맘’을 때리거나 길고양이 밥그릇을 엎어버리는 어린이를 만들어냈다. 연결감이 없는 사람은 사회에 살면서 사회에 살지 않는 것처럼 행동한다. 그런 걸 반사회적이라고 한다. 사회는 인간, 그리고 인간과 연결된 여러 존재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을 합의할 필요는 없다.
홍혜은 저술가·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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