햄릿도 꼬집은 ‘애도를 금하는 사회’[책과 책 사이]

임지선 기자 2023. 11. 10.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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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약이야, 절약, 호레이쇼. 식어버린 장례식 음식으로 곧장 결혼상을 차렸지.”

셰익스피어 희곡 <햄릿>의 한 대목이다. 강태경 이화여대 교수가 낸 <행간의 햄릿>(이화여자대학교출판문화원)을 읽다 보면 <햄릿>에는 ‘살아 있는 고전’이라는 표현이 딱 들어맞는단 걸 알 수 있다. 왕의 의문의 죽음은 서둘러 덮인다. 애도하는 자는 매도되고 장례식에 이어 왕비의 결혼식이 치러진다. 햄릿은 장례식과 결혼식 사이 짧은 애도 기간을 두고 ‘절약(thrift)’이라고 했다. 강 교수는 “비정상이 정상이 된 덴마크 사회의 작동 원리를 냉소적으로 규정한” 단어라고 설명했다. “분별과 상식의 이름으로 애도를 금하는 사회에 대해 ‘이성을 결여한 짐승도 그보단 더 오래 슬퍼했을 것’이라 반박하는 햄릿이 제기하는 문제는 바로 애도의 정치학이다. 애도라는 것은 얼마 동안이나 이루어져야 하는가?”

이태원 참사는 이제 1년하고 열흘쯤 지났다. 세월호 참사는 9년7개월이 지났다. 이태원 참사 1주기 즈음에 열린 국정감사에서 ‘어떻게 더 사과할 수 있느냐’는 고위공직자의 항변이 들린다.

‘1주기’가 지나고, 딱 ‘10주기’가 아니어도 충분히 애도해야 하는 게 지금, 여기를 사는 이들이 해야 할 일이다. 어떻게든 더 사과를 해야 한다.

“한 명쯤은 기억하고 있어도 좋을 뻔했어.” 최근 인터뷰한 정세랑 작가가 자신의 장편 <설자은, 금성으로 돌아오다>에서 가장 좋아한다고 꼽은 문장이다. “천년왕국을 고대하며, 그것이 무엇 위에 세워지는지 이 흥청망청한 거리는 다 잊은 것 같군”이라는 7세기 인물의 말을 지금, 여기서 반복하지 말자. 너무 쉽게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 우리는 참사의 기억을 언제든 사과하고 소환해야 한다.

임지선 기자 visi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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