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실시간 통역’ 스마트폰
몇 년 전 스페인의 호텔에서 웃기는 장면을 봤다. 생수에 영어, 불어, 한국어로 안내문을 붙여 놨는데, ‘아직도 물’이라고 쓰여 있는 게 아닌가. 탄산이 없는 물이란 뜻의 영어 ‘still water’를 구글 번역기가 오역한 탓이었다. 지난달 말 포르투갈 리스본에선 아제르바이잔 출신 관광객이 석류 음료를 주문하려고 러시아어로 석류(granat)를 입력했더니 포르투갈어 ‘granada’로 출력되었다. 그대로 냅킨에 적어 웨이터에게 건넸더니 무장 경찰이 들이닥쳐 수갑을 채웠다. Granada가 포르투갈 말로 ‘수류탄’이란 뜻이었기 때문이다.
▶실시간 자동 통역기는 ‘바벨탑의 저주’로 언어 장벽을 가진 인류의 숙원 중 하나다. ‘스타트렉’ 시리즈에선 지휘봉 모양 만능 통역기가 나오고, ‘설국 열차’에선 한국인 주인공이 휴대용 통역기를 통해 외국인과 한국말로 대화한다. SF 소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에는 동시 통역 생물인 바벨 피시가 등장한다. 귀에 바벨 피시를 넣으면 어떤 외계인 언어도 이해할 수 있다는 상상이었다. 하지만 실시간 통역기의 기술 장벽은 화상 전화나 레이저 총보다 휠씬 높았다.
▶2000년대 초 삼성경제연구소는 국가 프로젝트로 ‘자동 통역기’를 개발하자고 제안했다. 영어를 배우는 데 드는 막대한 비용과 시간을 아낄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삼성종합기술원이 유선전화에서 한국어로 말하면 일본어로 통역해 들려주는 한·일 자동 통역 서비스를 선보였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이 앱 기반의 자동 통역 서비스를 개발, 인천공항 등에서 시연했지만 서비스 대중화엔 이르진 못했다.
▶인공지능(AI) 기술이 해결사로 등장했다. 인간 뇌를 본뜬 인공 신경망이 통역·번역을 기계 학습해 속도와 정확도를 획기적으로 높이고 있다. 구글 어시스턴트, 네이버 파파고를 활용하면 동시 통역 기능을 맛볼 수 있다. 하지만 구글 계정으로 로그인해야 하고 클라우드 기반이라 통역에 시간 지연 문제가 생기는 점, 대화 내용 보안 문제 등이 약점으로 지적돼 왔다.
▶삼성전자가 내년 초 출시할 갤럭시 스마트폰 신제품에 생성형 인공지능(AI)에 기반한 ‘실시간 통역 기능’을 탑재한다고 발표했다. 클라우드가 아니라 스마트폰에 내장된 AI 반도체가 통역 기능을 수행하기 때문에 정보 처리 속도가 빠르고 대화 내용이 외부로 샐 염려도 없다는 것이다. 해외 IT 매체들이 “갤럭시 AI를 기대하시라”며 앞다퉈 보도하고 있다. 실시간 통역기의 게임 체인저가 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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