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익은 바나나에서 탄생한 상상의 ‘바나나족’ 연대기[그림책]

김한솔 기자 2023. 11. 10. 2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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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나나 왕국
정희정 글·그림
시공주니어 | 각 10쪽 | 2만원 (3권 세트)

까만 밤, 거대한 노란 물체가 바다 한가운데 떨어진다. 넘실대는 파도에 밀려 해변에 안착한 노란 물체는 바나나다. 거대 바나나 말고는 아무것도 없는 해변에서 시간이 흐른다.

얼마나 지났을까. 바나나 겉면의 검은 반점이 점점 늘어나던 어느날, ‘쩍’ 하고 바나나 껍질이 갈라진다. 바나나 속에서 바나나 모양 머리를 한 ‘바나나족’이 탄생한다. 천천히 몸을 일으킨 바나나족은 저벅저벅 숲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바나나 왕국>은 바나나족과 바나나 왕국을 그린 판타지 일러스트북이다. 총 3권으로 구성된 책은 각각 바나나족의 탄생, 바나나족의 건국, 바나나족의 생활을 다룬다. 책은 일반 제본 형식이 아닌, 펼치면 아코디언처럼 길게 펼쳐지는 ‘아코디언북’으로 제작됐다.

매 권 아코디언북의 특성을 살린 편집이 눈에 띈다. 바나나족의 탄생을 다룬 1권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그림이 순서대로 배치됐다. 2권 ‘바나나족의 건국’을 펼치면 바나나 왕국의 전도가 나온다. ‘따사로운 노란 햇살과 넘실대는 푸른 물결이 부드럽게 감싸주는 곳’이라는 바나나족의 노래답게 산과 물에 둘러싸인 바나나 왕국은 평화롭고 풍족해보인다.

3권 ‘바나나족의 생활’은 페이지당 바나나족의 풍습이 한 장의 일러스트로 그려져 있다. 바나나족은 한 달에 한 번 신전에 올라 기도를 한다. 바나나 왕국에는 세 명의 점성술사가 있는데, 이들은 미래를 들여다보는 솥으로 날씨를 점친다. 바나나족 농부의 주력 작물은 당근이다. 바나나족은 자기 키만큼 큰 오렌지색 당근을 키워낸다. 바다에서 탄생한 민족답게, 바닷속 해초는 바나나족에게 중요한 에너지원이다. 바나나족은 앞으로 태어날 생명들을 위해 반짝이는 해초의 빛을 모은다.

정희정 작가는 어느날 마트 매대에 올려진 바나나의 껍질이 갈라진 것을 보고 바나나 왕국의 이야기를 떠올렸다. <바나나 왕국>은 2018년 작가가 리소와 실크 스크린 기법을 사용해 독립출판했던 <BANANA WORLD>가 일반적인 인쇄 기법으로 재출간된 것이다. 인쇄 기법과 종이 재질 등을 바꾸면서 남색과 겨자색의 대비가 더 ‘쨍’ 했던 원판과는 조금 달라졌지만, 귀엽게 펼쳐진 상상의 나래를 따라가다 보면 어딘가에 정말 바나나족이 살고 있을 것만 같다.

김한솔 기자 hanso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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