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은 존중과 보상으로 지탱하는 현대사회의 돌봄을 묻다[안주연의 래빗홀]
사랑의 노동
매들린 번팅 지음 | 김승진 옮김
반비 | 464쪽 | 2만2000원
1년 전부터 ‘육아 번아웃’에 대해 공부해왔습니다. 사전 경험 없이 시작되어 많은 것을 감당해야 하고, 퇴근과 휴가도 없이 일과 반복에다 역할 업그레이드를 거듭해야 하며, 위임도 어렵고 보상도 받기 힘든 육아는 소진과 가장 가까이 있는 직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얼마 전 유아교육전 박람회에서 부모님들께 육아 번아웃 강연을 하면서, 새로운 경험을 했습니다.
육아의 어려움과 피곤함, 소중함에 대한 강연에 고개를 끄덕이고 경청하며 참여자들 사이에 묘한 연결감이 만들어진 느낌이었는데요. 질의응답 시간이 되어 한 참여자가 질문을 하자, 비슷한 경험을 한 다른 참여자가 손을 들어 공감하였고, 이어서 그 시기를 헤쳐온 또 다른 참여자가 자신의 노하우를 말해주는 것이었습니다. ‘부모님의 육아 간섭이 버거워요’라는 질문에 대해서만 그렇겠지 했는데, ‘아기 말 배우는 시기라 과한 청각 자극에 힘들어요’라는 질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어려움을 말하고, 듣고, 각자의 경험을 공유하면서, 그 순간 우리는 서로를 보살피고 있었습니다. 제가 가장 중요하다고 주장해온 “돌보는 이에 대한 돌봄(Care for carer)”이 자연스럽게 일어났던 것입니다.
이후 저는 돌봄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좀 더 깊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인생 중 가장 피곤한 상태일 양육자들이 어떻게 다른 이들에게도 따뜻하게 손을 내밀 수 있었을까. 제가 찾은 한 가지 이유는 그때 우리가 돌봄과 육아와 노동에 대해 깊이 이야기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돌봄은 언어나 통계만으로는 다 표현하기 어려운 활동이자 경험이며, 속도와 자극, 재화의 생산에 관심이 있는 현대사회에서 문화적으로도 충분히 다뤄지지 못하는 가치입니다. 그래서 돌봄이라는 힘들지만 특별하고 본질적인 경험을 한 양육자들은 이를 표현하고 나눌 수 없다는 점에서 더 외로워지고 좌절하게 되기도 합니다. 강연 질의응답 시간의 경험을 통해, 돌봄 당사자들을 위한 지지는 ‘돌봄의 경험에 대해 드러내어 이야기하는 것’에서 시작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굳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문득, “돌봄은 자신과 타인의 인간성을 경험하는 날 것의 질료”라는 구절이 떠올라, 이 책 <사랑의 노동>을 다시 펼쳐보게 되었습니다.
저자 매들린 번팅은 많은 부분 ‘암묵적 지식’에 기반하며 “마음과 촉감으로 느끼는 것”인 돌봄을 생생히 전달하기 위해 간병인, 의료인, 사회복지사, 아이를 키우는 부모와 부모를 돌보는 자녀 등 수많은 당사자들의 이야기에서 돌봄의 구체적인 순간과 감각을 퍼올립니다.
‘사랑의 노동’을 해나가는 이들의 통찰력 있고 따뜻한 목소리를 듣다보면 타인과 공동체를 위해서만이 아닌 나 자신의 사람됨과 지혜를 위한 필연적 활동으로서의 돌봄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됩니다. 그리고 말해지기 어려운 것들을 묻고 듣고 표현하려 애쓰는 저자와 돌봄 당사자의 대화가 또 다른 형태의 공감이자 돌봄이라고도 느꼈습니다.
사적으로든 공적으로든 돌봄의 자리에 있는 이들의 소명과 인간됨에 기대어 적은 존중과 보상으로 지탱해가는 현대사회에 대한 이 책의 문제 제기에도 주목하고 싶습니다. 돌봄이란 나와 타인의 약함과 괴로움을 인정하고 받아들인 후 이를 적극적이고 효율적으로 돕는 일입니다. 생명을 가진 것들은 강함과 약함을 오가는 숙명 또한 타고났고, 이를 보완하고 유지하기 위해 자기·상호 돌봄은 필수적입니다. 그런데 약함을 부정하고 약함이 곧 도태와 실패가 되는 상황에서는 돌봄의 보편적 필요를 논하기가 어려워지고 맙니다. 도움받는 것, 타인이나 시스템에 의지하는 것은 열등한 일이라는 분위기가 팽배하니까요. 전체주의적 사회의 특성이 있는 한국에서는 도움을 요청하고 받는 것은 곧 공동체에 피해를 주는 일이라는 사고까지 더해져 약함을 토로하는 일을 이기적인 것으로 보기도 합니다.
그런데 한번 생각해보세요. 우리가 누구에게도 건강이나 생활을 의지하지 않고 최고의 효율로 일이나 수입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될까요? 길어봐야 20~30년을 넘기가 어렵습니다. 약을 먹거나, 물리치료를 받거나, 운동 지도를 받거나, 의식주 지원을 받거나, 거동에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독립적인 산업사회의 구성원’이라는 개념이 허상인 이유입니다. 인간은 자신의 취약성을 인정하고 서로 의존하고 소통하면서 비로소 독립적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우리 사회는 많은 삶의 중요한 가치들이 그렇듯 꼭 필요하지만 힘들고 부담스러운 일이기도 한 돌봄을 어떻게 적절히 나누어 주고받을 것인지에 대해 적극적으로 이야기를 시작해야 합니다. 그리고 왜 언제나 빨라야 하는지, 새로운 것을 만들어야 하는지, 유지하는 일이 기획하는 일보다 덜 중요하게 취급되는 것인지에 대해 고민해야 합니다.
정신분석학자 앤디 홀웨이의 “모든 이들에게 돌봄은 자아를 받쳐주는 바닥을 만들어낸다. (…) 돌봄의 관계는 우리의 신체 기억에 지속적으로 남아 있으면서 미래의 모든 만남에 쓰일 자원이 된다”는 이야기를 곱씹어봅니다. 드러나지 않게 돕고,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이며, 함께 있어 주는 것의 가치에 대해, 이 사랑의 노동이 많은 이들의 삶을 보이지 않게 지탱한다는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면 좋겠습니다.
안주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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