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작가 신양란의 좌충우돌 해외여행 7] ‘분 보 후에’의 유쾌한 추억
[여행작가 신양란] 2007년에 베트남의 역사 도시 후에에 갔을 때 일이다.
하루는 가이드북을 펴 놓고 갈 만한 음식점을 찾는데, '분 보 후에(BUN BO HUE)'에 대한 설명이 눈길을 끌었다.
가이드북 소개에서 ‘현지인으로부터 인기를 얻고 있는 전문점’이라는 말이 날 유혹했다. 현지인이 즐겨 찾는 곳이라면 믿을 만하다고 판단했다. 더구나 우리 가족은 호치민시에서 쌀국수를 맛있게 먹은 터라, 후에의 쌀국수에도 호기심이 생겼다. 한 끼는 거기 가서 먹기로 의견을 모았다.
그렇게 가이드북에 나온 식당을 찾아가 보니, 현지인에게 인기가 있다는 말이 과장된 게 아닌 듯했다. 우리가 찾아간 때가 저녁 식사 시간이기도 했지만, 사람들이 바글거렸다. 우리는 일단 분 보 후에를 주문했다.
가이드북에는 쌀국수 한 그릇에 5000동(지금은 272원)이라고 나와 있는데, 그때 가격은 1만동으로 오른 상태였다. 대강 당시 우리 돈으로 1000원 정도. 하여간 가격에 비해 양이 푸짐했고, 큼직한 바게트 빵까지 주니 더욱 풍성한 느낌이 들었다. 물론 맛도 좋았다.
우리 집 식구들은 대부분 국수 귀신이라 아주 맛나게 먹었는데, 문제는 남편이었다. 국수 귀신에서 제외된 그는 얼큰한 국물에 따끈한 밥을 먹고 싶어 했지만, 거기는 베트남이다. 그런 게 있을 턱이 없다.
결국 남편은 자신의 식솔이 맛있는 만찬을 즐기는 걸 바라보고 있어야만 했다. 나는 두어 차례 건성으로 권했을 뿐, 그의 식성을 아는지라 강권하지는 않았다. 싫어하는 걸 알면서도 자꾸 권하는 건 괴롭히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식구들이 먹는 걸 지켜보기만 하던 남편이 지루했던지 국수 위에 고명으로 올린 돼지고기를 한 점 집어먹고는, 얼굴에 화색이 도는 것이었다. 그건 입에 딱 맞는다는 거다.
“돼지고기 삶은 것만 달라고 하면 안 될까?”
“돈을 주고 산다고 하면 안 될 거야 없겠지만, 그것만 사서 뭐 하게?”
“숙소에 가서 술안주로 먹게.”
"그럼 한번 말해 봐."
잠시 망설이던 남편은 기어이 주방으로 가서 의사소통을 시도했다.
그러나 식당 종업원 중에 영어를 알아듣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주방까지 들어와 낯선 말로 자꾸 뭐라고 떠드는 외국인이 무엇을 요구하는지 전혀 알아듣지를 못했다.
그는 손짓 발 짓을 섞어 서툰 영어로 이렇게 말했으니까.
“국수는 말고, 고명으로 올린 돼지고기만 사고 싶다. 돈은 따로 내겠다.”
종업원은 한참이 지나서야 눈치로 알아들은 것 같았다. 드디어 1만동을 주기로 하고 돼지고기 고명을 사는 데는 성공했다. 그런데 문제는 그게 다가 아니었다. 삶은 돼지고기를 찍어 먹자면 소금이 필요한데, 소금을 달라는 말을 또 못 알아듣는 거다. 그 사람들은 돼지고기 삶은 걸 소금에 찍어 먹지 않는가 보았다.
한바탕 소동을 벌인 다음에야 간신히 의사소통이 되어 소금을 얻을 수 있었는데, 그 과정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에서 ‘생쇼’였다.
그때는 웃음도 나고 진땀도 났는데, 지나고 보니 잊히지 않는 여행의 추억이 되었다. 여행은 매끄럽게 진행되는 것보다 실수도 하고, 고생도 하는 게 오래 기억나는 비법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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