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중 학교에 붕어빵 냄새 솔솔~시장 경제 체험하는 대구 학생들
급여 받고 수익금 기부도
대구교육청 “경제금융교육 효과”
지난 6일 오후 대구 달성군 한울안중. 저녁 6시가 되자 기숙사에 머물던 학생 40여명이 교실 두 곳에 각각 일렬로 줄을 섰다.
한 곳에선 학생들이 붕어빵을 구웠고, 다른 교실에선 팝콘 튀기는 소리가 들렸다. 한동안 줄을 서서 기다리던 학생들은 간식이 만들어지자마자 ‘룰루랄라 매점부’ 친구들에게 학교 화폐인 ‘울’을 건네 붕어빵과 팝콘을 사 먹었다. “팝콘에 캬라멜 많이 뿌려주면 50울 더 줄게” “50울로는 어림도 없다!” 서로 흥정을 하는 모습도 곳곳에서 보였다.
한울안중은 오후 6시부터 2시간 동안 학생들이 저축과 물건 매매 등 각종 경제 활동을 벌이는 시장으로 변한다. 돈을 벌거나 쓰는 과정에서 학생들이 실물 경제를 몸으로 직접 체험하도록 하자는 취지다. 대구교육청이 올해부터 도입한 글로벌 경제금융교육의 현장이다.
◇밤이 되면 학교가 시장으로
같은 시간 2층에선 학교 은행이자 총무국 역할을 맡는 ‘경제금융부’에 학생들이 몰렸다. 학생들은 경제금융부 친구들에게 은행 입금 내역을 보여준 뒤 현금을 울로 환전했다. 환율은 현금 10원당 1울. 학교 화폐의 공급량에 따라 환율도 유동적으로 변한다. 학생 간 경제적 형평성을 고려해 한달 최대 환전 가능 금액은 1만원(1000울)으로 한정했다. 서백토(15)군은 “오늘 만원을 환전했는데 붕어빵과 팝콘 먹는데 다 썼다”며 “내가 소비를 한만큼 시장이 잘 돌아가고 더 나은 간식 품질로 보답받더라”고 말했다.
학생들이 운영한 간이 매점도 호황이었다. 매대에 비치된 초콜릿 등 간식류와 노트와 펜 등 문구류에는 울로 환산된 가격표가 붙어있었다. 매점을 운영한 박지훈(14)군은 “하루 평균 15만원 정도를 번다”면서 “사람이 몰리면 계산하는게 힘들지만 장사가 잘되는 보람도 크다”고 했다.
학교가 학생들에게 기본 제공하는 월 급여는 1500울(1만 5000원). 여기에서 교육과 환경 미화 등 명목으로 250울이 세금으로 공제된다. 경제 활동 외에도 학교 청소, 독후감 쓰기 등 각종 활동에 따라 화폐를 추가 지급한다. 11월 기준 최다 저축 학생은 2600울(2만 6000원)을 보유했다. 경제 활동 담당 심규성 교사는 “화폐를 벌기 위해 책을 읽다가 독서에 취미를 붙인 학생들도 많다”고 했다.
대구 북구의 교동중과 관음중에서도 이 같은 시장 경제 시스템을 도입했다. 교동중이 학령 인구 감소로 통폐합되자 남은 학생들 일부는 관음중으로 전학하기도 했다. 대구교육청 관계자는 “경제 활동을 흥미로워 한 학생들이 전학 대상 학교로 관음중을 선택한 것”이라고 했다.
◇경제 활동으로 목표·상생 모두 잡아
대구지역 학교의 경제 교육 열기는 대구교육청이 올해 1월부터 추진한 ‘글로벌 경제금융교육’에서 비롯됐다. 지난해 재선한 기업가 출신 강은희 대구교육감은 공약으로 학생들의 경제 역량 강화를 내세웠다. 현재 한울안중·관음중을 비롯한 경제금융 동아리 및 경제금융교육 중점학교는 초·중·고 합쳐 48개교가 선정돼 운영 중이다. 내년 2월까지 체험활동과 전문가 특강, 교원 역량 강화 등 경제 프로그램이 추진된다. 이미영 대구교육청 중등교육과 장학사는 “향후 대구 전체 456개교로 프로그램을 확대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경제 프로그램은 학생들의 진로와 사회공헌 활동에도 도움을 주고 있다. 한울안중 황원민(15)군은 “직접 붕어빵이나 와플을 구워보면서 제과·제빵 분야를 전공하겠다는 목표를 확정하게 됐다”고 말했다. 도아라(14)양은 “창업에는 관심도 없었는데 친구들과 협업해 장사해보니 생각이 바뀌었다”며 “멋진 회사를 만들어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고 싶다”고 했다. 한울안중은 경제 활동 수익금 94만원을 연말 불우이웃돕기 성금으로 쓸 예정이다. 올해 창업동아리를 운영한 삼영초도 수익금 84만 5000원을 기부했다.
강은희 대구교육감은 “다변화하는 세계 경제 속에서 학생들이 대응력을 갖추려면 교과서를 넘어 실생활에서 경제금융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힘을 길러야한다”면서 “대구 학생들이 이웃과 상생하며 세계 경제를 선도하는 인재로 자라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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