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서도 신당 ‘보폭’...‘유승민 책’ 꺼내든 정의당 전 사무총장 [정치킨 인터뷰]
정의당의 1·2·5기 사무총장을 지낸 권태홍. 정의당의 창당 과정부터 당의 살림꾼과 전략통 역할을 해온, ‘정의당의 어머니’같은 사람이다. 그는 2020년 총선 익산 을에서 낙선한 이후 그는 익산 시내에 조그마한 음식점을 차렸다.
Q. 음식점을 하고 계신 줄은 몰랐다?
2020년 총선 끝나고 코로나 때 가게를 시작해서 만 3년이 넘었다. 음식을 만들고 배달도 하는데, 배달한 집을 따져보니 2만 집이 넘더라. 선거 때 사람들 많이 만나고 다녔는데도 익산을 너무 몰랐구나 싶었다. 원룸도 정말 많고 그 안에도 정말 다양한 분들이 산다. 배달하면서 선거 때보다 훨씬 더 많은 곳을 다녔고, 많은 걸 느꼈다.
Q. 전주시장에 출마했다 낙선한 정의당 서윤근 전 전주시의원은 화물 운전을 하시더라. 정치인들은 쉴 때가 어렵겠다?
정치 생태계가 문제다. 뜻이 있어도 가진 게 없는 사람들이 정치하기가 힘들다. 유럽 같은 데는 정당이나 연구원에 낙선 정치인들이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이 많다. 우리는 낙선하면 반건달. 자산이나 소득이 없는 사람들은 정치를 이어가기 힘들다. 특히 청년들의 진입이 어렵다. 대통령 정도를 하려면 20~30년 이상은 정말 치열하게 공부하고 준비해야 하는데, 혼자서는 한계가 있다. 예능에서 느닷없이 유명해져서 대통령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정책이든 사람 관계든 철학이든 준비된 사람이 정치를 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정당의 역할이다.
Q. 얼마 전 페이스북에 ‘에너지가 고갈되는데 온실 속에 안주하는 것은 죽는 길이다’라고 남겼던데...정의당 이야기인가?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이후 당의 논의들을 보면서 든 생각이다. 정의당 내 많은 분들의 수고와 노력에도 불구하고, 진보 정당을 오래 해온 분들일수록, 핵심 간부들일수록 정의당 내에서 안주하려는 모습들이 너무 안타까웠다. 온실 속 화초처럼 느껴지는 모습들을 종종 봐왔다. 정의당을 넘어서 정치 전체의 변화를 위해 역할을 해야한다. 사실은 대표를 비롯한 집행부들이 봤으면 해서 글을 올렸고, 아마 봤을 것이다.
Q. 지난 대선 때 정의당이 민주당 중심의 범진보 승리에 힘을 보탰어야했다는 의견이 많은데, 동의하나?
작년 대선은 당이 어려워지는 큰 계기였다. 막판 양당 후보의 지지율 격차보다 우리 당 후보 지지율이 클 경우 엄청난 고민에 빠지게 될 것이라고 예측했었다. 물론 총선 위성정당 문제로 정의당이 민주당에게 엄청난 배신감이 있었던 건 사실이다. 그럼에도 정치는 오늘의 현실을 풀어가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필요하다면 적극 연합해야 된다고 생각했고, 지금은 탈당한 천호선 대표와 함께 당에 의견을 개진했다. 정의당이 먼저 민주당에 선거연합을 제안해서 받으면 받는대로, 안받으면 안 받는대로 다음 행보를 이어가야한다고 주장했다. ‘민주당 2중대’라는 비판도 받겠지만, 어차피 이쪽에서 보면 국힘 2중대, 저쪽에서보면 민주당 2중대 항상 흔들릴 것 아닌가. 그러나 정치는 한걸음씩 전진을 해야하고, 정의당도 대선 후 책임을 오롯이 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선거연합을 선제안하자고 했던 것이다. 나중에 몰리면 더 곤란한 입장이 될 것이라고 이야기 했는데 결과적으로 성사되지 않았다.
Q. 민주당과의 연합을 위한 물밑 작업도 있었나?
그동안 밝히지 않은 이야기인데 천호선 전 대표가 여러 가능성 타진을 위해 당시 민주당 송영길 대표를 접촉했다. 천 전 대표가 굉장히 겸손하고 균형감이 높은 분인데, 송영길 전 대표와 통화하고 나서 저랑 통화하는데 너무 화가나셨더라. ‘너무 오만하고 무례하다’고 표현하더라. 그 때 송영길 대표가 선거연합에 열린 자세를 보여줬다면 심상정 후보 찾아가서 적극 설득했을 것이다. 민주당이 그렇게 움직여버리니 설득할 근거가 없었다. 나중에 안철수가 사퇴하고 윤석열 후보와 단일화했을 때가 정말 마지막이었다. 선거연합을 통해서 연합정부 구성을 상의하고, 윤석열 현 대통령의 당선을 막았어야 했다. 진 것은 민주당이지만 사실 정의당도 진 셈이다. 0.73% 차이였는데, 정의당이 2.37% 얻었으니, 정의당이 그에 대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 책임 때문에 지금 이렇게 어렵다고 본다.
Q. 이정미 대표가 사퇴했다? 정의당은 선거연합정당을 추진하기로 했고...
그 결정이 과연 현재 정치판을 바꾸는 데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 안타깝다. 정의당을 플랫폼으로 다른 진보 정당들이 들어와서 선거연합정당을 만든다는 것인데, 너무 편한 결정이다. 총선 이후에 가장 어려워지는 결정이다.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 소위 진보정당들을 다 합해 3.4%가 나왔다. 이건 그냥 민심인 거다. ‘진보라는 이름으로 과연 얼마나 진보시켰어?’라는 질문이다. 근본적으로 고민을 해야한다. 정치한다면서 그냥 우리가 하고싶은 운동만 한 것 아닌가 하는 질문을 스스로 했어야 한다.
(파란만장한 진보 정당의 역사에서 내내 중심에 있었던 권태홍 전 사무총장. 그는 기자에게 유승민 전 의원의 책, 「나는 왜 정치를 하는가」를 꺼내보였다.)
최근 유승민 책을 보고 있다. 2015년 새누리당 원내대표 할 때 국회 교섭단체 연설 전문을 실어놨는데 보면서 굉장히 놀랐다. 그 때 제가 사무총장 하고 있을 때다. 유승민 전 의원의 원내 교섭단체 연설을 꼼꼼히 안 봤다. 정치적으로 게을렀던 것이다. 이런 정도 이야기면 오히려 정의당에서 논평을 내서 반기고, 같이 풀어보자고 했어야했던 것 아닌가 싶다. 공무원 연금개혁도 이야기하고, 증세없는 복지는 허구라는 이야기도 한다. 연설문의 제목이 지금 화합의 정치를 하자는 내용인데 지금 현재에도 유용한 메시지다. 왜 유승민 의원이 그 때 새누리당이었나 하는 생각이 드는 거다. 보니까 안동 출신이더라. 만약에 호남에 출생했으면 유승민 의원이 아마 민주당에서 꽤 잘나가는 리더가 돼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
Q. 3당 움직임에 참여하는 건가?
‘3당 운동에 전력을 다할 때다’라는 글을 최근 지역 신문에 썼다. 현재의 여-야, 현재의 보수-진보의 문법을 넘어서야 한다. 정말 ‘진보’하고 싶다면, 세상이 바뀌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다양한 사람들로부터 아이디어와 열정, 가능성을 발견해서 다리를 연결해야 진보를 한다. 그동안 진보 정당 사람들끼리 아무리 모여서 회의를 해도 의회에서 통과될 이유도 없고 여론으로 확산되지도 않잖냐. 이제는 대중 정치를 하자. 연합 정치를 하자. 내년 총선에서는 적어도 국회에 교섭단체 3개 이상을 만들어서 지금과 같은 양당의 적대적 구조를 넘어서는 정치 문화와 생산력을 만들어보자는 생각이 절박하다.
Q. 크게 모여야 영향력이 생길텐데, 유승민․이준석, 금태섭․양향자, 정의당과 민주당의 일부 세력 등 크게 모이는 게 정말 가능한가?
생각의 차이는 있을 수 있고, 그게 자연스럽다. 흠결이 너무 많은 정치인이라면 함께해서는 안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 헌법이 이야기하는 기본 정신, 민주주의와 공화주의 가치에 대해 기본적인 고민을 하는 사람이라면 지금의 위기 앞에서 실효성있는 3당 체제를 만들어 정치를 바꾸자는 데에 같이 갈 수 있다고 본다. 기존에 해결하지 못한 많은 문제에 대해 여-야, 보수-진보를 넘어서 토의의 장을 만들고 3당 체제를 형성해낼 수 있다면 당 하나를 만드는 데 그치지 않을 것이다. 그 당을 만드는 토론 과정에서 정책적, 정치적 격차를 줄여나가는 것들이 향후 정치에 전반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Q. 그렇다해도 당장 페미니즘, 불평등 문제 등은 이준석과 정의당의 간극이 너무 크잖냐.
충분히 제기할 수 있는 문제다. 저는 직접 이야기해봐야 되는 문제라고 보는 것이다. 어떤 이슈든 정책이든 어느 정도의 균형감만 가지고 있다면 차이는 좁혀낼 수 있다고 본다.
Q. 과거 3당의 수명은 다 짧았는데?
생겼다 사라졌던 3당들도 ‘이번 당은 선거용으로 함께 합시다’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본질은 특정 정치인을 위한 선거용 정당이었다. 이번에는 굉장히 넓게 모이지 않으면 국민들이 인정을 안해줄 것이다. 기존의 정치문법, 기존의 정치 구조를 넘어서는 정도여야 한다. ‘쟤들은 뭔가 좀 다르네. 쟤들은 이견을 이렇게 처리하네’...현재 적대적인 정치 문화를 넘어서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각자가 절박성과 처한 어려움이 있기 때문에 자세를 낮추고 이야기할 수 있는 조건은 되지 않나 싶다. 단순히 선거용으로 모인다면, 그 누가 자기 운명을 걸고싶어 하겠나.
Q. 정의당을 탈당할 건가?
정의당이 정의당을 위해서 존재해서는 안 된다. 말 그대로 정치의 변화를 위해서 존재하고 실제 정치의 변화를 만들어내야 진보정당이라 할 수 있다. 저는 그런 정의당의 당원이다. 정의당이 정치 변화에 가장 전면적으로 고민하고 모든 걸 던지지 못하면 그건 제가 생각하는 정의당이 아니다. 지금 3당 체제가 만들어지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면 뭐든 할 생각이고, 만약에 그게 아니라면 이제 정치를 접을 생각이다.
영상취재 : 김유섭, 윤홍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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