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주식시장이 존재하는 이유를 곱씹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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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매도를 전면 허용하는 것이 옳다고 이야기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공매도 전면 금지를 발표한 것은 공매도가 옳은지 그른지를 떠나 좀 더 근본적인 고민을 하게 만든다.
미국 주식시장에 상장된 회사들의 시가총액은 우리나라 주식시장에 상장된 회사들의 시가총액보다 약 20배쯤 더 많지만 미국 주식시장의 하루 거래대금은 우리나라 주식시장의 그것보다 600배나 더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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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이진우 MBC 《손에 잡히는 경제》 앵커)
공매도를 전면 허용하는 것이 옳다고 이야기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공매도 전면 금지를 발표한 것은 공매도가 옳은지 그른지를 떠나 좀 더 근본적인 고민을 하게 만든다.
미국 이야기를 해보자. 지난 2년간 가파른 금리 인상에도 미국 기업들의 부도율이 낮은 수준을 유지한 배경에는 미국의 주식시장이 큰 몫을 했다는 걸 부인하기 어렵다. 시중 금리가 올라서 대출을 받기 부담스러운 상황이 되더라도 상장회사들은 이자율이 낮은 전환사채를 발행해 자금을 조달할 수 있기 때문에 높은 금리 속에서도 숨통을 틔울 수 있었던 것이다.
투자자들이 그런 회사들의 전환사채에 투자하는 이유는 나중에 빌려준 돈을 상환받는 대신 그만큼의 액수에 해당하는 주식으로 바꿔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어려운 시기를 무사히 넘기기만 하면 주가가 많이 오르기 때문에 전환사채 투자자들은 큰돈을 벌 수 있다. 그러니 매우 낮은 이자율을 감수하더라도 기꺼이 전환사채에 투자하는 것이다.
그들의 그런 탐욕(?) 덕분에 전환사채를 발행한 회사는 낮은 금리로 자금을 조달해 위기를 넘길 수 있었고, 그보다 더 신용이 낮은 회사들도 은행 문을 두드려서 대출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은행들 입장에서도 은행을 찾아오는 그런 회사들보다 신용이 좀 더 좋은 회사들은 전환사채를 발행해 자금을 조달하고 있으니 어쩔 수 없이 그보다 한 단계 더 신용이 낮은 기업들로 눈길을 돌려 대출 영업을 할 수밖에 없었다.
주식시장을 운영하는 모든 나라에서 다 이런 선순환이 벌어지는 것은 아니다. 투자자들이 별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주식시장은 거래가 잘 안되고 거래가 잘 안되므로 투자자들이 주식시장에 별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악순환을 겪는, 자꾸 쪼그라드는 주식시장이라면 그런 주식시장을 가진 나라의 기업들은 전환사채를 발행하기도 쉽지 않다. 그래서 올해 전 세계에서 발행된 전환사채의 절반가량은 미국 기업들이 발행했다. 그게 전 세계에서 거래량이 가장 많은 미국 주식시장의 힘이다. 미국 주식시장에 상장된 회사들의 시가총액은 우리나라 주식시장에 상장된 회사들의 시가총액보다 약 20배쯤 더 많지만 미국 주식시장의 하루 거래대금은 우리나라 주식시장의 그것보다 600배나 더 많다.
그런 거래량의 대부분은 이른바 주식 투기꾼들이 만들어낸 것이다. 그들은 하루에도 수십, 수백 번씩 주식 거래를 하고 테마를 쫓아 몰려다니는 불나방 같은 존재들이다. 하지만 돈을 벌어보려는 그들의 욕심이 주식시장을 풍성하고 건강하게 만든다. 주식시장의 거래량이 풍부하다는 건 주식을 팔고 싶을 때 언제든지 제값에 팔 수 있을 만큼 주식 수요자가 많고 그래서 거래가 쉽게 이루어진다는 뜻이다. 팔 때 쉽게 팔 수 있으면 살 때도 별 걱정 없이 산다.
투기꾼들이 주식시장에 발을 못 붙이게 할 방법이 없지야 않겠지만 불법이 아니라면 좀 요란하고 신경 쓰여도 그냥 놔두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주식시장은 유사시에 기업의 생명줄이 되기 때문에 주식시장을 잘 키우고 유지하는 건 당장 표가 나지 않더라도 생각보다 중요하고 의미 있는 일이다
주식시장은 참가자들이 돈을 벌어가기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라 주식시장이 존재하고 유지되도록 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참가자들을 돈으로 유혹하는 구조임을 이해하고 뭐가 더 중요한 것인지 잘 구별하는 사려 깊음이 아쉽다. 선거에 활용하기 위해 다양한 정책을 펴는 걸 이해 못 하는 건 아니지만 건드리지 말아야 하는 영역은 분명히 있다.
※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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