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옥시, 손해배상 해라" 판결에 애경산업·SK케미칼 소송 영향은?

대법원. 연합뉴스

피해인정자가 5000명이 넘는 가습기살균제 대참사 발생 이후 12년이 지나서야, 가습기 살균제 제조사와 판매사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한 판결이 나오면서, 진행 중인 다른 재판에 미칠피 영향에 피해자들과 전문가들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2007년부터 옥시레킷벤키저의 가습기 살균제를 써 오다 2010년 '간질성 폐질환' 진단을 받은 김옥분 씨가 옥시와 납품업체를 상대로 소송을 낸 지 9년만에 최종 승소했다. 제조·판매업자의 배상 책임이 가습기 살균제 참사 12년만에 인정된 것이다.

김 씨는 정부로부터 총 4단계의 피해등급 중 3단계 등급(가습기 살균제의 영향을 배제할 수는 없으나 이로 인한 폐질환 가능성은 작다고 분류된 등급)이다. 이에 옥시는 김 씨에 대한 보상을 거부했다. 한국 정부로부터 1단계와 2단계 판정을 받은 피해자 중 옥시 제품 사용자를 대상으로 한다는 옥시의 방침 때문이다. 이에 김 씨는 옥시와 납품업체를 상대로 3000만 원의 위자료 청구 소송을 냈고, 1심에서 패소했지만 2심은 옥시가 500만 원을 지급하라고 판시했다. 옥시의 가습기 살균제가 유해 성분을 사용해 설계상 결함이 있고, 그러면서도 인체에 안전하다는 문구를 표시한 것은 '표시상 결함'으로 인정된다고 본 것으로, 대법원도 같은 결론을 냈다.

10일 이번 판결에 대해 전문가들과 피해자들은 이번 판결이 배상 액수와 관련해선 아쉬운 부분이 있으나, 다른 판결에 미칠 영향을 고려하면 상당한 의미를 가진다는 견해다.

과거 서울중앙지검 부부장 시절 해당 조사를 담당했던 한태화 법무법인 솔 대표변호사는 "제조사 과실을 처음으로 인정한 판결이라는 점에서 이번 판결은 의미가 크다"며 "다른 후발 피해자들의 구제를 위한 길이 열렸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이어 "다만 손해배상을 위자료에 한정한 것이 아쉬운 부분이다. 피해정도가 중한 사람들은 정부의 구제조치로 충분히 보전되지 않은 측면이 있다. 그런 부분에 대한 보상을 인정하지 않은 것은 아쉽다"고 덧붙였다.

또 옥시 가습기살균제 제품 피해자인 김경영씨는 "손해배상을 하라는 결론이 난 것 자체가 의미있다"면서 "옥시는 스스로 종국성(조정이 이뤄지면 기업에 더이상의 부담을 지우지 않는다는 뜻)을 완성하고, 조정위에도 참여하지 않고, 더 이상의 구제기금도 내지 않겠다고 하는 등 움직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과거 '폐질환 2단계'에 해당되는 피해자들이 환경부로부터 속속 피해인정을 받고 있음에도 옥시가 이들에 대해서도 법이 개정됐다는 이유만으로 '더 이상 합의하지 않겠다. 자신들의 합의는 끝났다'고 하고 있는 상황에서 나온 이번 판결은 피해구제 협상이 완성되지 않았다는 것을 시사해준 것이고, 더 이상 기업은 '종국성' 뒤에 숨을 수 없게 된 것"이라고 했다.

현재 기술원의 피해등급 기준에 따라 민간조정위원회인 가습기 살균제 피해구제조정위원회가 가해기업으로부터 받을 금액(조정안)을 도출한 상태인데 옥시레킷벤키저, 애경산업 등 두 가해기업의 비동의로 인해 논의가 멈춘 상태다.

특히 피해자들로서는 가해기업들과 소송을 진행하는 데 있어 돌파구가 생긴 셈이다.

김경영씨는 "이번 판결이 CMIT·MIT 성분을 사용한 애경산업, SK케미칼 등 다른 가해기업들과의 항소심에도 방향성을 제시해 줄 것으로 보고 있다"면서 "이들은 질환과의 인과관계가 나오지 않았다며 버티고 있는데, 1심 법원이 얘기했던 '100% 확실한 인과관계'가 성립되지 않더라도, 일반적인 인과관계만 성립된다면 이 피해는 가해기업이 입혔다고 볼 수 있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결론이 이번에 나온 것이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PHMG와 PGH 성분을 주원료로 한 옥시 살균제에 대해서는 옥시 대표의 유죄가 대법원에서 확정된 상태다. CMIT와 MIT 성분을 사용한 SK케미칼과 애경산업은 질환과의 인과관계가 입증되지 않았다며 업체 대표들에 대해 1심에서 무죄 판결이 나왔으며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한편, 가습기살규제 피해로 인해 신고된 사망자는 1800명이 넘는다. 가습기 살균제 제조사들을 상대로 현재 민사 소송을 진행 중인 피해자는 파악된 것만 300명 가까이에 이르고 있다.김수연기자 newsnews@d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