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대란' 떼돈 번 유럽기업과 다른데 … 횡재세 깃발 든 李

전경운 기자(jeon@mk.co.kr), 이희조 기자(love@mk.co.kr), 정유정 기자(utoori@mk.co.kr) 2023. 11. 10.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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野 횡재세 입법추진 공식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왼쪽)가 10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회 과반 의석을 점유하고 있는 더불어민주당이 횡재세 도입을 공식화하면서 관련 업계에 비상이 걸렸다. 애초 횡재세 도입 가능성을 낮게 봤던 경제단체들도 민주당의 드라이브에 부랴부랴 대응책 점검에 들어갔다. 업계에서는 국내 상황이 횡재세를 도입한 일부 국가들과 다르다며 부작용을 우려하고 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10일 최고위원회의에서 "민생 고통을 분담할 수 있도록 횡재세 도입을 추진하겠다"고 선언했다. 이 대표는 "유가 상승과 고금리 때문에 정유사와 은행들이 사상 최고의 수익을 거두고 있다"면서 "정유사는 전년 대비 영업이익이 무려 87.3%, 은행은 올해 (순이익이) 60조원을 초과할 것이라고 한다"며 정유사와 은행을 정조준했다.

그는 "이미 영국·루마니아·그리스·이탈리아 같은 많은 나라가 에너지산업을 대상으로 횡재세를 도입했다"며 해외 사례를 언급했다. 그러면서 "은행권의 기여금 조성 또는 횡재세 도입으로 만들어지는 세원으로 고금리 고통을 받는 국민의 삶을 개선해야 한다"며 "정유사의 고에너지 가격에 따른 횡재세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실제로 일부 국가에서는 횡재세가 도입됐거나 추진 중이다.

영국은 지난해 5월 석유·가스 기업에 에너지 이익 부담금 명목으로 기존보다 25%의 추가 요율을 매겨 영업이익에 65%의 세율이 적용되도록 했다. 이후 영국은 횡재세율을 종전 25%에서 35%로 올렸고, 기한도 2025년 말에서 2028년 3월까지 연장하기로 했다. 이탈리아는 올해 7월까지 에너지 기업이 낸 초과 이익에 부과하는 세율을 25%에서 35%로 한시 인상했다. 올 8월에는 1년 기한으로 은행이 벌어들인 초과 이익의 40%를 세금으로 걷는다고 발표했다.

거대 야당 대표가 직접 횡재세 도입을 공언하자 산업계에서는 국내 현실을 고려해 신중하게 접근해야 할 문제라는 지적이 쏟아졌다.

특히 국내 정유사에 대한 횡재세 도입은 반발이 큰 상황이다. 원유를 수입해 정제한 뒤 판매하는 국내 정유사들과 원유를 직접 시추하는 해외 석유 기업은 사업 구조 자체가 다르기 때문이다. 쉘, 셰브론, 엑손모빌 등의 석유 기업은 원유 채굴, 판매, 정제 사업을 함께 하지만 비산유국인 한국 정유사는 원유 정제업만 한다. 실제로 정유사에 횡재세를 도입한 영국도 정제 사업만 전문으로 하는 회사들은 횡재세 적용 대상에서 제외했다.

한 정유업계 관계자는 "원유를 시추하는 석유 회사와 달리 국내 정유사들은 유가가 오르면 원가가 올라가 비용 부담이 커진다"며 "국내 업체들은 휘발유, 등유, 경유 등 정제한 제품의 수요가 받쳐줘야 수익을 낼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유럽의 경우 러시아산 원유·가스 도입이 끊기면서 에너지 가격이 급등해 석유 회사들이 천문학적 이익을 거두는 등 횡재세 논란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며 "국내 상황은 유럽과 전혀 다르다"고 강조했다.

다른 정유업계 관계자는 "정유업은 대규모 투자가 필요한 장치 산업이지만 단 한 번도 공적 자금이 투입되지 않았다"며 "적자가 난 시기에도 정부 지원을 받은 적이 없다"고 밝혔다.

한국은 이미 해외 주요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은 수준의 법인세를 거두고 있다.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2020년 기준으로 명목 국내총생산(GDP) 대비 법인세 부담률은 한국이 3.4%로, 횡재세를 도입하고 있는 영국(2.3%), 이탈리아(2.1%), 독일(1.7%) 등에 비해 높은 수준이다.

한국은 법인세 체계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국 중 사실상 유일하게 4단계 누진세율로 운영하는 나라이기도 하다. 과세표준이 커질수록 더 높은 세율을 부담하는 상황에서 초과 이득을 근거로 추가적인 법인세를 과세하는 것은 명분이 약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기획재정부 고위 관계자는 "횡재세 도입은 전혀 검토하고 있지 않다"면서 "기업 수익이 늘어날 때 추가 과세를 하려면 수익이 줄어들 때는 어떻게 할 것이냐는 비판에 직면할 수 있고, 과세 대상 업종을 정하기도 쉽지 않다"고 말했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도 앞서 "기업의 이익을 좇아가며 그때마다 횡재니 아니니 하며 얼마를 더 내라고 하는 것은 시장 원리에도, 경제 기본원리에도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다만 정부는 윤석열 대통령이 최근 은행의 실적 고공 행진을 비판한 데 따른 후속 조치로 독과점 완화 대책을 추가로 검토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은행 간 경쟁을 촉진해 시중금리를 낮추고 저신용자·청년 등 금융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방안이다.

윤 대통령은 지난 1일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우리나라 은행들은 일종의 독과점이기 때문에 갑질을 많이 한다"며 "은행의 이런 독과점 시스템을 어떤 식으로든지 경쟁이 되게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전경운 기자 / 이희조 기자 / 정유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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