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CBDC 실험 세계가 주목···한국적 모델 만들자"
(지디넷코리아=김윤희 기자)2단계 모의실험을 앞둔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가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산업계와 활발히 협력해 유용한 활용 사례를 최대한 확보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한국은행은 CBDC의 기술적 구현 가능성 검증 작업을 끝내고 2단계 상용성 검증 실험을 앞두고 있다.
블록체인 기반으로 발행하는 화폐인 CBDC 효과에 대해 다양한 아이디어가 제시되고 있지만, 가상 환경이 아닌 실제 경제에서 유용하게 쓰이는 사례는 아직 미지수라는 평가다. 세계 각국에서 CBDC를 검토 중인 상황에서, 한국이 보다 전향적인 자세로 CBDC 유통을 실험해 유익한 용례를 선도적으로 확보해나가자는 제안이다.
지난 9일 지디넷코리아가 개최한 한국은행 CBDC 정책 현황 진단 좌담회에 참여한 패널들은 이같은 제언을 했다.
좌담회는 방은주 지디넷코리아 AI전문기자가 사회를 보고 윤석빈 서강대학교 특임교수, 조원희 법무법인 디라이트 대표변호사, 진창호 보스턴컨설팅그룹 파트너, 최철 SK C&C 웹3&컨버전스그룹장이 패널로 참여했다.
-방은주 부장(이하 사회) : 한국은행이 지난 달 'CBDC 활용성 테스트 추진 계획' 제안요청서를 공개했다. 긍정적으로 평가할 부분과 아쉬움이 드는 부분은?
- 최철 그룹장 : CBDC에 대한 정책적 접근이 점진적으로 잘 이뤄지고 있는 것 같다. 2년 전엔 기술적 측면의 검증을 진행했고, 이번엔 활용성 테스트다. 이전 모의 실험에선 은행들이 노드 정도만 간단히 구성하는 정도로 참여했다. 이번엔 더 나아가 일부 소비자 대상으로도 테스트한다고 발표했다. 기술적 측면도, 활용성 측면도 검증 대상이 확대됐다는 인상이다. 아쉬운 점은 은행, 일반인 대상 실험은 가상 환경에서만 진행한다는 점이다. 핀테크 업체로도 실험 대상을 확대하면 보다 다양한 사례를 실험할 수 있을 것 같다.
- 진창호 파트너 : 모의 실험 참여를 준비하는 기업들은 공통적으로 다른 일반적인 사업들에 비해 구체성이 떨어진다는 점이다. 긍정적인 점은 BIS와 한은의 협력이다. 한은이 오프라인 CBDC 설계 모델을 많이 보완하면서 국제 시장에서 주목을 많이 받았다고 들었다. 이번에 CBDC 테스트에 BIS가 기술 자문 등을 제공할 예정이라고 하는데, 글로벌 차원에서 이런 정도의 관심을 받는 사업이 그 동안 있었나 싶다.
- 윤석빈 교수 : 홍콩 등 해외 동향을 보면 퍼블릭 블록체인 기반으로 보다 혁신적인 실험을 하는 곳도 있다. 토큰화된 채권이나 디파이와 연계하는 사례도 나오고 있다. 테스트 내용이 보다 다양해졌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다만 한은으로선 인력과 예산이 한정돼 있어 제약이 있었을 것 같다.
- 조원희 대표 : 한은이 CBDC에 관심을 갖고, 연구를 시작한 시점은 다른 나라보다 상당히 빨랐다. 테스트 과정에서 시간이 상당히 지연된다는 느낌이 있다. 우리나라보다 더 늦게 CBDC 연구에 뛰어들었는데 더 진도가 빠른 곳들도 나타났다. 시기에 대한 아쉬움이 있다. 왜 그런가 생각해보면 정부 차원의 명확한 방침이 없었던 때문인 것 같다. 가상자산 이용자 보호법 논의 과정에서 CBDC를 적용 범위에 넣을 것인지 부처 간 논쟁이 일었던 점을 생각해보면 그렇다. 그리고 테스트 범위가 다소 제한적이라 다양한 가상자산과의 연계 가능성은 아직 염두하지 않는다는 느낌이다.
- 사회 : 현재 한국의 CBDC 준비 상황이 해외보다 늦은 편인가?
- 진창호 파트너 : 반반이다. CBDC 관련 중요한 참고 사례로 평가되는 국가는 스위스, 싱가포르, 브라질 정도가 꼽힌다. 선도적인 정책으로는 싱가포르와 홍콩이 언급된다. 이 국가들은 다양한 테스트를 하고 있다. 싱가폴과 홍콩의 경우 이번에 한은이 하려는 테스트들을 이미 진행한 국가다. 다른 국가들은 한국과 비슷한 수준이다.
그 동안 한은의 CBDC 정책을 보면 기술과 제도를 종합적으로 다루고, 체계적으로 진행돼온 편이다. 이번 실험에선 예금을 CBDC로 전환해 사용성을 검증하고, 민간에서 발행된 스테이블코인과 연동하는 것도 실험 대상에 있다. 3형 토큰이 중요한 실험 영역이다. 아직 이 부분은 제안요청서에선 모호하게 표현돼 있다. 한은에선 '디지털 바우처'로 표현하고 있다. 가령 지역 화폐 등 특정 목적을 지닌 CBDC의 흐름을 테스트해보겠다는 것으로 읽힌다. 구체적인 것들은 프로젝트 진행 과정에서 결정될 듯하다.
- 사회 : 미국, 일본, 유럽, 중국 등 국가의 CBDC 정책에서 주목할 부분은 없나
- 최철 그룹장: 최근 CBDC를 실 결제에 채택한 나라 중 선진국은 없다. 싱가폴, 홍콩도 아직 실험하는 단계다. 금융 인프라가 열악하거나 여러 사정이 있는 국가들이 CBDC를 직접 도입했다. 반면 미국, 유럽 등 선진국 기존 인프라가 워낙 좋고, 서둘러 CBDC를 도입했을 때 문제점도 예견되기 때문에 진도가 상대적으로 느린 편인다. 그리고 CBDC는 국경 간 결제가 돼야 하는데, 특정 국가만 앞서나가서는 불가능한 과제다. 중국은 통화 패권이라는 아젠다를 중심으로 CBDC를 추진하고 있는데, 그러면 달러와 유로도 빨리 CBDC에 대응해나갈 수밖에 없다. 중국이 정책에 속도를 높이는 상황은 아니다. 일본도 우리나라보다 정책 추진 상황이 빠르진 않다.
-조원희 대표 : 제 생각은 좀 다르다. 우리나라는 블록체인 산업 시작도, 진행도 빨랐다. 그런데 규제 때문에 현재는 산업이 어려움에 빠졌다. CBDC도 향후 글로벌 금융 시장이 주요 화폐로 취급하게 됐을 때 우리나라가 지금처럼 보조하고, 닥쳐올 상황을 준비한다는 관점으로 접근하면 늦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가 앞장서서 선도할 기회가 있는데 그 기회를 살리고 있는지 보면 다소 대응이 늦다고 볼 수도 있다. 한국이 싱가포르나 홍콩보다도 빠르게 갈 수 있었단 점을 생각하면 좀 아쉽다.
- 윤석빈 교수 : 싱가포르 통화청이 진행하는 '프로젝트 가디언'이 있다. 자산을 토큰화하는 테스트로 HSBC, DBS 등 금융사들이 참여하고, 퍼블릭 블록체인인 '폴리곤'을 쓴다. 이런 사례를 감안하면 우리나라 CBDC 테스트도 오픈 이노베이션 형태로 진행할 수도 있지 않나 하는 아쉬움도 있다.
- 최철 그룹장 : 프라이빗 블록체인을 다루는 회사 입장에서 퍼블릭 블록체인 도입은 아직 시기상조라고 본다. 관련 규제나 데이터 보호, 보안 이슈 등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이 있어서다. 퍼블릭 체인은 특히 통제 권한을 정부가 갖고 있지 않은데, 일종의 금융 인프라를 통제권 없이 쓰는 것에 대한 우려가 해소되지 않았다. 나중에 이런 위험 요소들이 해소된다면, 점차 금융권에서 도입이 늘어난 클라우드처럼 퍼블릭 체인 도입도 늘어나지 않을까 싶다.
금융 쪽에서 화두인 토큰증권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 정부는 프라이빗 블록체인을 쓰라고 하고 있는데, 독일 등은 퍼블릭 체인을 쓰는 사례도 있다. 독일처럼 퍼블릭 체인을 쓸 수 있게 하려면 우선 예탁결제원에서 실시하는 총량관리 같은 제도가 먼저 손질돼야 한다.
- 사회 : CBDC 정책에 대해 우리나라가 '퍼스트 무버'와 '패스트 팔로' 중 어떤 전략을 취하는 것이 유리할까.
- 진창호 파트너 : 선진국들의 CBDC 상용화 시점은 한참 남았다. CBDC가 원래 각광 받았던 건 페이스북(현 메타)이 스테이블코인 '리브라'를 발표하면서 각국이 통화 패권 잃을 위기감을 느낀 탓이 크다. 그런 측면에서 통화 패권을 가진 미국, 중국은 속도를 내긴 힘들다. 반면 홍콩, 싱가포르 등 금융업이 핵심인 국가들은 정책에 속도를 내고 싶어한다. 우리나라보다 한 단계 정도 앞서 있다. 한국도 이번 실험을 하면 싱가포르, 홍콩의 현 수준을 따라잡는 정도로 진도를 빼게 된다.
BIS가 한국의 CBDC 실험에 관심을 가진다는 건 좋은 기회라고 볼 수 있다. BIS가 오프라인 상황에서도 동작하는 CBDC 모델들을 고려하고 있는데 한은이 그 중 한 가지를 테스트할 예정이다. 우리나라는 특히 IT 인프라와 산업이 잘 갖춰져 있으니 다양한 금융 자산과 연계하는 실험을 한다면, 우리나라 모델이 세계적으로 널리 전해질 가능성도 있다.
- 최철 그룹장 : 최근 스웨덴이 우리나라처럼 BIS와 논의를 하고 CBDC 테스트를 했는데, 노르웨이와 이스라엘도 참여해 국경 간 거래를 테스트했다. BIS는 그 다음 단계를 우리나라에게 기대할 거다. 핀테크처럼 기존 금융 인프라를 보유하지 않은 산업에 CBDC 테스트 참여를 할 수 있게 하면 어떨까 싶다. 핀테크 업계는 자체적으로 결제망을 만들지 못해 엄청난 비용을 내고 은행의 결제망을 쓴다. 이런 상황에서 CBDC가 새로운 인프라 역할을 할 수도 있을 거다.
- 조원희 대표 : 우리나라 정부 태도를 보면 퍼스트 무버가 될 가능성은 사실 없는 것 같다. 금융 분야에선 이용자 보호에 가장 높은 우선 순위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글로벌 금융 시장에서 선두 주자가 되자는 생각을 가져본 적이 없다. '일단 지켜보자'는 게 기본적인 방침이다. 일단 CBDC의 활용성을 고민하면서, 핀테크나 블록체인 업계와 협업하는 방안을 고민해나갔으면 한다. 제도적으로 산적한 문제들이 많아서 어떻게 이를 풀어나갈지에 대해 회의적이긴 하다. 외환에 대한 법적 정의에서 CBDC는 어떻게 규정할 것인지, 법을 고쳐야 하는 문제들이 많다.
- 윤석빈 교수 : 복합 금융 시대로 나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월급 반은 원화로 받고, 반은 이더리움으로 받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JP모건 등 글로벌 금융사들도 이런 가능성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CBDC는 이런 복합 금융 시대로 가는 징검다리 역할을 한다. CBDC가 혁신 금융의 아이디어를 실현하는 중간 역할을 할 수 있었으면 한다. 업계에선 정책의 진정성을 의심하는 시선도 있다. 비트코인, 이더리움 등 가상자산을 무조건 배제할 게 아니라 정책에 받아들일 건 받아들였으면 한다.
- 진창호 파트너 : 이번 CBDC 활용성 테스트 내용 중 외부 연계 시스템에서 발행되는 특수 목적 토큰인 3형 토큰은 재밌는 것들을 테스트해볼 여지가 많다. 테스트 참여 대상을 확장할수록 여러 아이디어들을 검토할 수 있다. 단순 정책에 그치는 것이 아닌, 'K-CBDC'로 브랜딩할 수 있는 플랫폼 사업으로 해야 한다는 의견도 당국에 피력한 적이 있다. 한은이 조폐공사의 기술력을 해외에 수출하고 있는데 이처럼 한은이 테스트한 CBDC 모델이 타국에도 전수되는 비즈니스 모델로 기능할 수도 있다는 거다. 한은에서 그런 욕심을 갖고 테스트를 추진했으면 좋겠다.
- 최철 : 동의한다. 최근에 전자정부 수출액 더 증가했던데, CBDC도 금융 인프라로서 끝나는 게 아니라 수출상품이 될 수도 있다.
- 윤석빈 교수 : 저도 동의한다. 챗GPT가 흥행하면서 '머신 커스터머'를 토대로 기계 간 거래에 대한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CBDC가 접목될 부분도 있을 것이다.
김윤희 기자(kyh@zd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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