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관찰] 투자자들과 희망 중독

2023. 11. 10.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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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자는 대부분 실력 과신
희망이 당위가 돼 현실 왜곡
더 얕은 가능성에 베팅 악순환

투자하는 사람 중에 자신의 투자 실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이를 본 적이 있는가? 적어도 난 본 적이 없다. 팬데믹 당시 많은 사람이 투자에 뛰어들고, 주변에 주식이든 코인이든 다양한 자산에 투자하는 사람이 엄청나게 늘어났다. 그런데 이런 사람이 하나같이 '나는 적어도 평균 이상의 투자 실력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 것이 재미있는 부분이다.

사실 이러한 자기 과신 편향은 당연한 현상이다. 자신의 투자 실력이 평균 이하라고 생각한다면 투자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애초에 내가 평균보다 낫다는 자기 신뢰가 있으니 투자 시장에 뛰어드는 것이다. 물론 자기 신뢰에 근거가 희박하다는 것은 별문제가 안 된다. 심지어는 손실을 보고 있어도 자신의 투자 실력을 의심하지 않는데 근거가 무슨 의미가 있겠나.

운전자들이 평가하는 자신의 운전 실력에서도 동일한 현상이 나타난다. 어느 나라를 불문하고 자신이 평균 이상의 운전 실력을 갖췄다고 답하는 사람 비율은 70~80%다. 운전 실력이 부족하다면 도로에 나서는 걸 두려워할 테니 당연한 현상이다. 하지만 이러한 자기 과신에는 또 다른 요소가 영향을 미치는데, 운전 실력은 평균의 정의가 매우 불분명하다. 애초에 남들의 운전 실력을 모르는 데다 운전 실력의 평균이란 개념을 정의하는 것도 사실상 불가능하다. 타인의 수준과 평균에 대한 모호함이 자신의 실력을 과대평가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 부분에서 투자는 예외다. 투자는 수익률로 결과가 나타나기에 평균이 명확하고 매우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심지어는 나의 투자 성과가 운인지 실력인지 판별하는 수학 공식조차 존재하는 분야다. 하지만 그럼에도 투자자들은 자신의 실력을 결코 의심하지 않는다. 그 이유가 뭘까?

그것은 그렇게 믿지 않으면 희망이 없기 때문이다. 자신의 투자 실력을 부정하는 순간, 자본 시장에서 돈을 벌 가능성은 운에 맡기는 것과 다름없어진다. 잃어버린 원금을 회복할 가능성이 없어지고 그동안 번 돈을 불려나가 앞으로 넉넉하게 산다는 꿈은 좌절된다. 그 근간에 있는 것이 탐욕이든 생존 욕구든 간에 본인이 기대한 밝은 미래가 허상이었다는 점을 인정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내가 가진 자산 가격이 상승하면 내 삶과 미래가 달라질 것이란 희망은 자산 가격이 올라야만 한다는 당위로 바뀌고, 방해되는 요소를 모두 문제로 삼게 된다. 외국인이든 기관이든 다른 어떤 것이든 내가 아닌 것을 문제로 몰아가면 말은 된다. 물론 자산 시장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가 워낙 다양하기 때문에 영향이 없다고 할 순 없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인 나의 판단과 결정에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 것은 그저 현실 도피일 뿐이다. '1만시간의 법칙'으로 알려진 학습이론을 연구한 안데르스 에릭손은 실력의 발전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시간이 아니라 엄격한 피드백을 바탕으로 한 '의식적 연습'임을 이야기한 바 있다. 즉, 원인을 외부 요소에만 돌리는 일은 실력 발전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산 시장의 투자자를 예로 들었지만 이러한 모습은 도처에서 쉽게 목격할 수 있다. 현실에 대한 냉정한 인식 없이 꿈과 희망에 중독되면 현실을 왜곡해서 받아들인다. 희망은 당위가 되고 왜곡된 현실 인식은 다시금 잘못된 판단으로 이어져 현실을 악화한다. 이렇게 되면 더더욱 가능성 없는 희망에 목을 매는 악순환에 빠진다.

분명 꿈과 희망, 긍정적 사고는 현실을 개선하는 데 중요하다. 하지만 현실에 기반해 나의 가능성을 조금 더 개선하는 효과가 있을 뿐, 100m를 20초에 달리는 사람을 우사인 볼트처럼 뛰게 만들지는 못한다. 그건 희망 중독으로 인한 망상이다. 그렇게 수많은 사람이 희망에 중독돼 현실을 왜곡하는 악순환에 빠지는 모습을 볼 때마다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김영준 '골목의 전쟁'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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