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혜진의 막전막후] 착한 에너지 나쁜 에너지

홍혜진 기자(honghong@mk.co.kr) 2023. 11. 10.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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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는 착한 에너지와 나쁜 에너지가 있다. 고정불변은 아니다. 착한 에너지가 나쁜 에너지가 되기도 하고, 나쁜 에너지가 착한 에너지가 되기도 한다.

착한 에너지인지 나쁜 에너지인지는 정치권이 판단한다. 지난 문재인 정부에서는 태양광이 탄소중립을 앞당겨줄 일등공신이자 착한 에너지였고, 원전은 위험하기 그지없는 나쁜 에너지였다. 그러나 지금 윤석열 정부에서 태양광은 비리가 판치는 복마전이자 비효율적인 나쁜 에너지다. 반면 원전은 깨끗하고 효율적인 착한 에너지로 바뀌었다.

그 자체로 가치중립적인 에너지에 이처럼 번갈아가며 정반대 인격이 부여되는 것은 정치권에서 각자 다른 에너지 정책을 내걸면서 에너지가 이념화됐기 때문이다.

에너지 정책에 이처럼 부침이 크게 발생하기 시작한 계기는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이다. 그전까지 여야 간 이견이 존재하기는 했지만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나 원전이 각자의 장단점 때문에 상호 보완적이라는 공감대가 있었다. 그러나 탈원전 선언과 동시에 신규 원전 백지화, 원전 건설 중단, 수명 연장 불허 조치가 잇따르면서 원자력발전에 급제동이 걸렸다. 반대로 태양광 사업은 예산을 늘리고 전폭적인 지원을 했다. 이 와중에 지난 대선 때 원전 업계는 윤석열 후보에게, 태양광 단체는 이재명 후보에게 지지를 선언하면서 정치색이 더 짙어졌다.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면서 탈원전 백지화 추진과 함께 태양광 산업에 대대적 감사를 실시했다. 신재생에너지 예산도 깎았다. 되살려야 하는 대상이 된 원전은 예산이 대폭 늘고 K수출의 대표 주자가 됐다. 대통령 공약이 국정과제가 되고 정부가 이를 추진하는 것을 생각하면 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정책에 정치색이 반영되는 일은 당연하다. 그러나 모든 국민과 기업에 절대적 영향을 끼치는 에너지 정책이 명확한 방향성과 원칙 없이 정치에 휘둘려 선이 됐다가 악이 됐다가 하는 건 납득하기 어렵다.

어떤 에너지원 비중을 높게 가져갈지는 과학적 분석에 기반해 결정해야 할 문제다. 그리고 에너지원은 일단 다양할수록 좋다. 에너지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는 우리나라는 더욱 그렇다.

에너지 정책을 수행하는 공무원들로서도 불과 한두 해 전에 만든 정책을 완전히 부정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월성 1호기 조기 폐쇄나 재생에너지 정책 결정 과정에 참여한 산업통상자원부 공무원은 대거 감찰을 받고 일부는 형사처벌까지 받았다.

일각에서는 정권이 교체되면 현 정부에서 에너지 업무를 담당한 공무원이 조사 대상이 되는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온다. "산업부 에너지 정책 공무원은 네 부류로 나뉜다. 검찰 수사받는 사람, 재판받는 사람, 감사원 감사받는 사람, 능력 없는 사람"이라는 자조 섞인 우스개도 들린다. 국정과제와 밀접한 업무를 수행하는 공직자에 대한 수사가 반복되면 열심히 일하는 게 손해라는 인식이 퍼지고 부처에 복지부동이 심해지는 건 당연한 수순이다.

손바닥 뒤집듯이 뒤바뀌는 에너지 정책의 불똥은 결국 국민에게 튀고 있다. 착한 에너지도 나쁜 에너지도 없다. 제멋대로 하는 갈라치기가 정말 나쁜 에너지 낭비일 뿐이다.

[홍혜진 경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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