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견 연구자로 성장할 사다리를 없애버린 것”

2023. 11. 10.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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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경수 중앙대 약학대학 교수가 본 R&D 예산 삭감
오경수 중앙대학교 약학대학 교수가 11월 1일 연구실에서 주간경향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서성일 선임기자


정부의 갑작스러운 R&D 예산 삭감은 과학계에 큰 충격을 주고 있다. 대통령이 ‘나눠먹기’라고 지적한 소규모 연구개발 과제는 신진 학자들이 실험실을 꾸리고, 기반을 닦는 마중물이었다. 이런 사업을 모두 없애고, 잘하는 일부 연구자, 일부 분야에 연구비를 몰아주자는 것이 정부의 입장이지만 현장에선 연구의 다양성을 죽이고, 미래 연구 역량을 잃게 하는 우를 범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오경수 중앙대 약학대학 교수 역시 이런 생각을 갖고 있다. 그는 지난 11월 1일 주간경향과 만나 연구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일괄적으로 예산을 삭감한 것도 문제지만 기본과제와 생애첫연구사업 등이 사라지면서 신진 연구자들이 중견 연구자로 성장할 수 있는 사다리를 없앤 것은 더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오 교수는 한국의 기초연구가 지난 10년 사이 괄목할 만한 성장을 한 것은 모두 기초과학 분야 지원을 늘린 결과였다면서 연구비 삭감은 이런 성장세를 꺾이게 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오 교수는 정부가 우수 연구집단을 선정해 연구비를 지원하는 선도연구센터 이학 분야 과제수행기관으로 선정한 ‘메타리셉톰(Metarecetome) 제어 연구센터’장으로, 암의 전이 원인을 밝히고 새로운 항암 전략을 수립하는 연구를 수행 중이다. 국내 30개 기초연구학회·단체가 속해 있는 기초연구연합회의 이사이기도 하다. 기초연구연합회는 2017년 창의성·다양성을 추구하는 연구 환경조성과 과학의 저변 확대라는 목표 아래 창립한 단체로 기초연구 진흥을 위한 국가 R&D 정책을 제안하는 활동을 주로 하고 있다.

기초연구의 근간은 다양성에 있는데, 이번 예산안은 그냥 일괄 삭감이다. 기초연구 예산을 모니터링하며 만든 선순환 구조가 갑자기 무너졌다. 연구자나 과학단체, 심지어는 과기부 안에서도 논의가 없었다. 누군가 뚱땅뚱땅 올린 거다.


-연구비 삭감을 어떻게 보나.

“한국에서 대학 기초연구는 99% 교수가 책임을 지고 있다. 교수가 실험실을 꾸리고 연구원과 돈을 끌어와 연구하는데 연구비가 갑자기 줄거나 끊기면 전체 시스템이 멈추게 된다. 연구만이 아니라 우리 실험실에 있는 13명의 생계가 달려 있는 문제이다. 교육의 문제이고, 국제 경쟁력의 문제이다. 선진국과 중국은 물론 개도국들도 굉장히 많은 연구비를 투여해 기초과학 성장을 도모하는데 우리만 지름길에서 벗어나 옆길로 새는 형국이다.”

-연구비 삭감의 폭은 어느 정도로 예상하나.

“계속 과제는 25% 삭감될 것 같다. 개인 과제로 1억원을 받는다면 2500만원은 학교에 간접비로 내고 7500만원을 학생 인건비와 재료비 등으로 쓴다. 요즘은 다 인건비로 나간다. 연구는 사람이 하는 거라 어쩔 수 없다. 여기서 연구비가 25% 줄면 2명 정도는 내보내야 한다. 올해 과제가 끝나면 다시 신규 과제로 들어가야 하는데 신규가 될지 안 될지는 모르는 일이라 갖고 있는 연구비마저 25%가 깎이면 거의 절반 정도의 연구비가 사라지게 된다. 한두 달 정도는 월급을 주고, 다른 소요 비용을 줄이는 식으로 버티겠지만, 그다음에는 어쩔 수 없이 연구원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다른 자리를 알아보라고 하는 수밖에 없다.”

-연구원 연봉은 어느 정도인가.

“박사후연구원은 대략 한 4000만원, 박사·석사생은 2400만원 정도다. 사실 취직해도 되는데 다들 연구에 대한 흥미와 열정이 있어서 버티는 사람들이다. 뜻을 품고 여기서 더 좋은 커리어를 만들어 보겠다고 왔다. 연구는 사람인데, 갑자기 사람이 빠지면 새로 연구원을 데려와도 프로젝트를 진행하려면 전 사람이 했던 만큼의 시간을 또 들여야 한다. 거기서 벌써 예산이 낭비된다. 무엇보다 사람이 바뀌면서 프로젝트가 뒤처지게 된다. 연구자들은 내가 먼저 발표를 하느냐 다른 데서 먼저 발표를 하느냐에 따라 우열이 가려지는 경쟁 속에 있다. 프로젝트가 지연될수록 세컨 티어가 된다. 자존심 상하는 일인데 한국에 있는 대부분의 연구자가 이런 상황에서 앞으로 몇 년을 지내야 한다.”

-새로 연구원을 채용하는 곳이 많이 줄었다던데.

“보통 연구가 2월 말에 끝나고 3월 1일 새로 시작한다. 사람 뽑는 건 1년 365일 진행이 되는데 문제는 사람을 뽑으려면 학교에 이 사람의 인건비 근거를 대야 한다는 점이다.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이 정도 연구비를 받으니 그 돈에서 인건비를 주겠다는 걸 증명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 어느 정도 깎일지 정확히 모르니 증명할 수가 없다. 있는 사람도 내년에 내보낼 수 있는데 새로운 사람을 뽑기란 굉장한 부담일 수밖에 없다. 지금 오프닝을 기다리는 학생들로선 큰 불운을 맞은 거다.”

-1억원 미만 신규과제 지원이 중단된다고 들었다.

“우리나라의 연구 지원 체계는 미국, 일본, 유럽의 장점을 조금씩 합쳐 만들었다. 젊은 사람들, 유행 타지 않는 연구를 위한 것들이 촘촘히 갖춰져 있다. 세계적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연구가 독특해야 한다. 독특하고 도전적인 연구가 대중화됐을 때 명성을 얻는다. 그런 연구를 도와줄 수 있는 연구 시스템도 있다. 무턱대고 돈을 많이 줘서 결과를 내게 하는 것보다 꾸준히 조금씩 돈을 주면서 가능성을 보는 건데 그게 대부분 1억원 미만의 연구 과제들이다. 내가 받는 건 중견 과제인데 2억원, 4억원에서 더 높은 리더급은 7억원까지 받을 수 있다. 그보다 훌륭한 연구자들은 심지어 기초과학연구원(IBS) 과제로 30억~50억원까지 쓸 수 있다. 그 사람의 경력과 연구 분야 특성에 맞게 촘촘한 심사를 거쳐 지원하는데 정부에서 갑자기 ‘나눠먹기’라면서 다 없애겠다고 한다. 1억원짜리 풀뿌리 과제를 주는 이유가 다 있다. 젊은 사람은 앞으로 30~40년 연구를 해야 한다. 유행을 따라가다 유행이 끝나면 그 사람 커리어도 끝난다. 학계에서 원하는 건 차라리 처음부터 너만의 아이디어를 가지고 너만의 분야를 창출하라는 거다. 이런 의미에서 돈을 여러 사람한테 주고 있다. 기초연구의 다양성을 위해서인데 갑자기 수월성 위주로 잘하는 사람 몇명 뽑아서 몰아줘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우리가 쌓아놓은 시스템을 완전히 다른 시각에서 보고 있는 거다.”

오경수 중앙대학교 약학대학 교수가 11월 1일 서울 동작구 중앙대학교 연구실에서 주간경향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서성일 선임기자


우리 분야에서 연구를 잘하는 사람들은 다 중국에 있다. 5년 사이 이렇게 달라졌다. 한 연구실에 50명이 넘는다. 연구비가 끊임없이 들어오기 때문이다. 한국처럼 연구비를 삭감하면 기초과학에서 도태되는 건 한순간이다.


-누가 싹을 틔울지 모르는 상황에서 큰 씨앗 몇개만 뿌린 셈이다. 왜 이렇게 결정이 된 걸까.

“기초연구의 근간은 연구의 다양성에 있다. 기초과학과 거대과학 그리고 응용과학이 각각 성격이 다른데 지금 예산안의 핵심은 그냥 일괄 삭감이다. 기초연구연합회가 만들어진 이유 중 하나가 이렇게 탁상행정을 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우리가 기초연구 예산을 계속 모니터링하고, 문제 제기를 해서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졌는데 올해 갑자기 무너졌다. 두 달 사이 예산안이 바뀌는 사이에 현장 연구자나 과학단체, 심지어는 과기부 안에서도 논의가 없었다. 누군가 얼렁뚱땅 올린 거다. 국감에서도 왜 그랬냐고 물어보면 대답도 잘 안 하고 보여달라고 하면 데이터도 안 보여준다. 왜? 없기 때문이다. 체계적으로 진행됐다면 그 근거가 있을 텐데 그게 아니다. 한 사람이 일괄로 적용한 거다. 1억원 미만 과제가 있어야만 하는 이유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없앤 거다.”

-정부·여당이 현장 의견을 수렴하겠다고 하는데.

“현장 연구자들과 대화해 어느 정도 고치겠다고 하는데 문제는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점이다. 지금 과학계를 대하는 태도가 이런 식이라면 사실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많은 교수가 하고 있다. 새 정부가 조정이 필요하다면 지출을 줄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현장의 연구자들, 우리 같은 단체와 만나 어떻게 줄이는 게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는지 미리 소통했다면 우리가 이렇게까지 자괴감을 느끼지는 않았을 거다.”

-대통령은 카르텔을 언급했다.

“그동안 투자했는데 나온 성과가 뭐냐는 식으로 말하는데, 기초과학의 세계 랭킹, 대학교 랭킹이 올라가고, 수학계의 노벨상이라는 필즈상 수상자가 동시다발적으로 나왔다. 기초연구가 물건을 만드는 것도 아니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좋은 페이퍼를 내는 역량 있는 연구자들을 만드는 거다. 그 사람들이 어디 가겠나. 삼성, 현대, 셀트리온 이런 회사들은 조상님이 아니라 우리가 키운 인재로 먹고사는 거다. 그런 건 다 빼고 당장 눈앞에 보이는 결과를 달라고 하는데, 결과를 줘도 이해를 못 한다. 논문 수가 줄어든 건 사실이지만 상위 25%의 영향력 있는 저널에 내는 논문은 늘었다. 그 비율은 이미 지난해 일본을 따라잡았다. 일본이 충격을 받아 연구비를 올렸을 정도다. 우리나라는 12위권에 있는 그 자체가 기적이다. 교수 개개인이 자기를 갈아넣어서 여기까지 올라왔다. 그런 교수 몇명만 무너뜨리면 연구그룹이 무너지는 건데 지금 어떻게든 이 교수들을 무너뜨리려고 하는 것 같다. 갑자기 교수 연구 사회를 카르텔화됐다고 몰아붙이면서 자존심을 꺾고 있다. 아무리 우리가 그동안 투자한 기초연구비가 우리를 이렇게 성장시켰다고 얘기해도 듣지를 않는다.”

-과학계 대응책은.

“적어도 국회에서 예산 심의를 할 때 삭감의 폭이 좁아질 수 있도록, 더불어서 R&D 시스템 변화의 폭을 줄이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과기부도 어느 정도 방향성에 공감을 하고 있는데 워낙 정부의 기조가 있어서 그 기조를 뛰어넘기는 힘들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래서 피해를 최소화하고 어떻게든 원래 모습대로 조금이라도 돌려놓는 게 최대치라고 생각한다. 이상적으론 2023년 6월 예산으로 복귀하는 건데 그게 안 된다면 일단 기본과제, 생애 첫 과제를 살리고 과제별 단가의 삭감 폭을 줄일 생각이다. 돈에 관해선 그렇고, R&D 시스템을 완전히 뒤바꾸는 건 강력 반대한다. 강제적으로 글로벌 연구 지원 기준을 획일적으로 적용하겠다는 정부 방침도 바꿔야 한다.”

-앞으로 과학계 인재 확보가 더 어려워 보인다.

“지금 있는 사람들마저 이런 식으로 실망시켜 과학에서 등을 돌리게 하면 의대쏠림은 더 심각해진다. 아이들에게 너는 과학에 잠재력이 있으니 과학자가 되라는 말을 어찌 할 수 있겠나. 연구비 삭감 흐름이 올해, 내년 이렇게 한시적이라면 그나마 버틸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게 방향성이 되고, 사람들이 과학에서 등을 돌리는 결과로 이어지면 그때는 더 이상 돌이킬 수가 없다. 내년부터 출산율이 높아지더라도 지금 애들이 태어나지 않는 데서 오는 악효과를 20년 후 온몸으로 버텨야 하는 것처럼 과학도 한 번 뒷걸음질 치면 다시 나아가기가 매우 어렵다.”

-정부에 바람이 있다면.

“최근 중국 상하이에 다녀와서 한참을 울었다. 중국을 마지막으로 간 게 5년 전인데 그땐 그렇게까지 자존심이 상하진 않았다. 비슷한 수준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번에 상하이에서 열린 국제학술대회를 가니 우리 분야에서 제일 연구를 잘하는 사람들은 모두 중국에 있었다. 지난 5년 사이 이렇게 달라졌다. 한 연구실에 연구인력이 50명이 넘었고, 작은 규모라고 해도 20명 수준이었다. 연구비가 끊임없이 들어오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한국에선 연구비 깎을 생각만 하고 있다. 연구비가 줄어 남아 있는 사람 몇명 데리고 중국의 과학기술과 어깨를 나란히 하겠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안 되는 일이다. 결국 투자가 돼야 하는데 이런 식으로 자꾸 연구비를 삭감하면 기초과학에서 도태되는 건 한순간이다. 5년 만에 중국이 천지개벽했는데 지금 여기서 2~3년 더 지체하면 그 차이는 훨씬 벌어질 것이다. 정부가 이런 상황을 자각했으면 한다. 그게 우리 기초연구 하는 사람들의 바람이다.”

주영재 기자 j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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