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비 삭감에 기초연구 뿌리부터 흔들…“시약 살 돈도 없을 판”
“파장 0.1나노미터, 새로운 과학의 세계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지난 11월 6일 찾은 포항가속기연구소 4세대 방사광가속기 시설 한쪽에 적힌 문구는 이곳이 과학 연구의 최전선에 속한 곳임을 말해준다. 방사광가속기는 전자를 가속시켜 자외선이나 X선과 같은 빛(방사광)을 만드는 장치다. 순수한 구리에 레이저를 쏘면 전자가 튀어나오고, 이 전자를 빛의 속도로 가속시켜 자기장을 지나가게 하면 전자가 힘을 받아 휘어지고 이때 빛이 나온다. 이 빛을 시료에 비춰 내부 구조를 파악할 수 있다. 인공으로 만들어낸 강력한 빛으로 물질과 생명 현상을 탐구하는 현미경이라고 할 수 있다.
3세대 방사광가속기에서 만든 빛은 바이러스의 단백질 구조를 파악해 코로나19 치료제와 같은 신약을 개발하거나 새로운 촉매를 개발하는 데 활용된다. 4세대 방사광가속기에서 나오는 빛은 태양보다 100경(10의 18제곱) 배 강하고, 파장은 0.1㎚(10억분의 1m)로 짧다. 펨토초 수준에서 깜빡이는 빛으로 극히 짧은 순간 일어나는 생명현상, 자연현상을 관측할 수 있다. 1펨토초는 빛조차 머리카락 두께의 300분의 1밖에 이동하지 못할 정도로 짧은 시간이다. 광합성에서 엽록소가 에너지를 만드는 데 걸리는 시간이 약 350펨토초다. 4세대 방사광가속기를 이용하면 광합성이 어떤 과정을 거쳐 이뤄지는지 실시간으로 파악해 인공 광합성 구현에 필요한 원리나 물질을 알아낼 수 있다.
화학과 바이오 분야 연구자들에게 화합물의 구조나 성분을 분석하는 방사광가속기는 필수적이다. 3세대·4세대 방사광가속기를 국내에서 유일하게 보유한 포항가속기연구소에 국내외 연구자들이 매년 수천명씩 몰리는 이유다. 이날 포항가속기연구소에서 만난 구태영 XFEL(X선 자유전자레이저) 연구단장은 “물질현상과 생명현상이 우연히 펨토초 단위에서 일어나는데, 이를 실험할 장치가 필요해 지은 시설이 4세대 방사광가속기”라면서 “3세대에선 동시에 36개 빔라인에서 독립적인 실험이 가능한데 4세대는 선형이라 한두개밖에 못한다. 하지만 실험영역이 다르고, 매우 도전적인 실험이 이뤄지는 곳이라 비교가 무의미하다”고 설명했다.
R&D 예산 삭감에 가속기연구소도 미래 걱정
4세대 방사광가속기를 활용한 첫 실험인 물 분자구조 변화 연구과제가 ‘사이언스’ 표지에 실리는 등 괄목할 만한 연구성과들이 방사광가속기를 이용해 탄생했다. 신소재 개발, 나노물질 분석, 단백질 구조 분석, 이차전지와 반도체 소재 개발, 광화학 촉매 개발을 통한 에너지 혁신 등 산업에 전방위적으로 활용된다. 이용자들이 협회를 만들어 연구 중요도를 심사해 방사광가속기 이용 여부를 결정할 정도로 경쟁이 치열하다.
하지만 최근 방사광가속기는 전기료 인상을 감당하지 못하고 단축 운영에 들어갔다. 방사광가속기는 연구 지원을 위한 빔타임(190일), 장치성능시험(50~70일), 정비·유지보수(100~110일) 일정으로 운영되는데 올해는 전기료 인상으로 빔타임을 130일로 단축할 상황이었다. 자구노력 끝에 단축 기간을 한 달 정도로 줄였는데, 이날은 가동이 중단된 상황이라 모든 빔라인 전광판에 ‘빔 오프’라는 문구가 쓰여 있었다. 방문 연구원들이 가속기로 찍은 영상을 분석하는 연구실도 비어 있었다. 구 단장은 “내년 전기료 추가분 43억원을 전액 배정하는 등 국가대형연구시설 운영 정상화에 노력하고 있고, 올해 운전단축으로 실험을 지원받지 못한 연구자들에게 해당 실험을 취소하지 않고 내년 상반기에 실험을 수행할 수 있도록 지원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지난 8월 22일 국회에 제출한 국가연구개발사업 예산 배분·조정(안)에 따르면 내년 국가 R&D 예산은 25조9000억으로 올해 31조1000억원에서 5조2000억원(16.6%)이 삭감됐다. 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이나 4대 과학기술원(한국·광주·대구경북·울산과기원), 대학이 직격탄을 받을 것으로 보이는데 가속기연구소는 상대적으로 나은 상황이다. 한해 600억원 정도의 운영비를 전적으로 국가에서 받지만, 포항공대가 위탁경영을 하고 있어서 상대적으로 정부 입김에서 자유롭다. 국내만이 아니라 해외에서도 많은 사용자가 있기 때문에 함부로 할 수 없다.
구 단장은 “이곳 연구원들도 자기 개인 과제를 할 때는 예산 삭감에 따른 직접적인 영향을 받게 되지만 기본적인 기관 운영에는 큰 지장이 없다”면서도 “외부 연구자와 가속기연구소의 협업이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가속기연구소에서 이뤄지는 연구는 가속기를 쓰려는 외부의 연구자들과 가속기연구소 소속 연구자들의 공동연구 형태로 주로 진행된다. 연구비 삭감으로 이용자들의 연구 수준이나 이용도가 떨어진다면 연구소 역시 간접적인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4세대 방사광가속기 빔라인 추가 건설에 필요한 예산이 제대로 반영될지도 미지수다. 전자를 가속시키는 가속기라인은 공동으로 쓸 수 있어서 방사광을 발생시키는 삽입장치만 추가하면 된다. 이날 방문한 4세대 방사광가속기 내부의 삽입장치가 있는 공간은 추가 라인을 건설할 수 있도록 비어 있는 공간이 꽤 컸다. 4세대의 경우 전 세계적으로 5개가 운영되는데 선형이라 이용할 수 있는 수가 제한돼 있다. 세계적 수준의 연구자들만 기회를 잡을 수 있다. 국내외 연구자들에게 이용 기회를 넓혀주려면 빔라인의 추가 건설이 필요하다.
처음 건설에 든 비용(약 4000억원)보다 훨씬 적은 비용(약 500억원)을 들여 규모를 배로 키울 수 있지만, 예산 삭감 분위기 속에 원하는 만큼 예산이 배정될지는 확실치 않다. 구 단장은 일단 내년 설계비로 할당된 20억원이 반영되길 기대하고 있다. 그는 “비싼 장비를 구축했는데 경쟁력이 떨어지기 전에 활용도를 높이는 게 좋다”면서 “일본의 이화학연구소는 2006년 4세대를 완성 후 3년 만에 라인 하나를 더 지었고, 미국의 스탠퍼드선형가속기센터(SLAC)도 2009년 4세대를 지은 후 3년 뒤 라인을 추가했고, 최근에는 초전도 라인으로 바꿨다. 우리는 세계 3번째로 빠르게 구축했지만, 그후 투자가 전혀 없으니 너무 늦어졌다”고 말했다.
그는 과학 연구에선 시기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같은 돈을 투자하더라도 언제 어느 시기에 투자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완전히 달라진다. 아무리 정교하게 실험하고 아름답게 이론까지 만들어 논문을 내더라도 직관적인 방향을 제시하는 새로운 것, 최초의 가치를 따라갈 수 없다. 이런 성격을 잘 이해하고 투자를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
지난해 10월부터 정부 R&D 심의과정을 거쳐 6월 마련된 예산안은 2023년의 24조9392억원에서 2% 증가한 25조4351억원으로 편성됐다. 지난 8월 22일 제출한 최종예산안에서는 그러나 대폭 삭감된 안으로 바뀌었다. 올해 6월 28일 열린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나눠먹기식, 갈라먹기식 R&D는 제로베이스에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한 후이다. 대통령의 발언 이후 삭감은 어느 정도 예상됐지만, 이렇게 큰 폭으로, 거의 전 분야에서 일괄적으로 삭감될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은 거의 없다.
정부 R&D 예산안을 보면 기초연구(-6.2%), 정부출연연구기관(-10.8%) 관련 예산이 크게 줄었고, 4대 과기원 주요사업비도 약 12% 삭감됐다. 노벨과학상급 기초연구 성과를 키우겠다는 목표로 2011년 설립된 IBS 주요사업비도 올해 2104억8600만원에서 내년 1826억원으로 줄었다.
정부 R&D 예산 삭감은 신진 연구자들의 연구 환경 전반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25개 과학기술 출연연에서만 약 1200명이 넘는 신진 연구자 감원이 예상된다. 기존 연구자들의 인건비 삭감도 예상된다. 출연연의 한 연구자는 “출연연의 R&D 예산을 깎는 건 사실 임금을 깎는 것과 같다. 우리를 불필요하고, 부도덕한 집단으로 몰아가면서 여기 몸담고 있는 사람들도 박탈감을 크게 느끼고 있다. 사기업보다 처우가 좋지 않아도 국가출연연구소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었는데, 그런 동기마저 뺏긴 상황에서 더 이상 남아 있을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정부는 2019년 일본의 수출규제에 대응해 전략핵심소재자립화기술 개발 예산을 늘려왔는데 이번에 대폭 삭감했다. 1486개의 계속사업 중 54.7%인 813개 사업이 전년 대비 감액됐다. 절반 이상 감액된 사업이 전체의 39.2%를 차지한다. 신소재를 연구하는 이 출연연의 연구원은 정부가 소재자립화 관련 예산을 깎은 데 대해 “소재혁신선도본부를 만들며 집중하다 문제가 표면적으로 사그라드니 그 예산을 빼는데, 문제가 다시 발생하면 이런 일을 반복할 것인가. 겉과 달리 소재·부품·장비 분야는 해결된 게 전혀 없다. 소위 카르텔이라는 명분 아래 예산을 깎고 있는데 무슨 철학을 갖고 일을 벌이는 건지 의문스럽다”라고 말했다.
정부는 ‘나눠먹기’ 운운하며, 소규모로 여럿을 지원할 게 아니라 잘하는 일부에 연구비를 몰아주자는 입장이다. 그 결과 1억원 미만 연구과제에 대한 신규지원이 사라졌다. 기초연구사업에서 신진 연구자에게 주는 생애 첫 연구과제와 기본연구과제가 전액 삭감됐고, 비전임 연구자가 참여할 수 있는 창의도전과제도 없어질 예정이다. 소규모 실험실에서 이루어지는 연구가 사라지면서 연구의 다양성이 줄고 연구자가 신진에서 중견으로 성장할 수 있는 사다리가 없어졌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에 대해 과기부 측은 오히려 신진 연구자 연구비와 인프라 구축 지원을 확대했다는 입장이다. 과기부는 주간경향의 문의에 “신진 연구자들의 초기 연구 정착을 위해 연구비 확보와 최초 연구실 구축을 위해 최대 8억원까지 지원을 대폭 확대했다”고 말했다. 과기부에 따르면 우수신진 연구비는 올해 2142억원에서 내년 2632억원으로 22.9% 늘었고, 연구실 구축 지원은 올해 53억원에서 내년 600억원으로 늘었다. 다만 여전히 우수신진과제를 얻지 못한 경우 가능한 생애첫과제나 기본과제 등은 빠져 있다. 과기부 측은 “경쟁률과 성과가 낮은 과제나 연구자가 독립적으로 수월성 있는 연구를 하기 위한 최소한의 규모가 되지 않는 소규모 과제는 효율화했는데 정부가 미처 살피지 못한 사항이 있다면 국회 심의과정에서 보완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한 과기원 소속 교수는 연구비 삭감에 따른 우려를 이렇게 토로했다. “연구비 삭감으로 다음 세대의 연구자가 될 학생들에게 이쪽 분야 전망이 좋지 않은 것처럼 느껴질까봐 그게 걱정이다. 대부분의 교수나 연구자들이 동일한 생각이다. 기존에는 연구자의 경력 단계별로 프로그램이 잘 돼 있었다. 내가 어느 수준이 되면 어떤 과제를 해야겠다는 게 있었고, 그에 맞춰 경력을 설계했는데 예상 불가능한 상황이 됐다. 학회 갈 때마다 뒤에서 교류하면 그가 서울대 교수든 카이스트 교수든 다 같은 생각이다. 경제 상황을 볼 때 삭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어느 정도 합리적으로 진행되는 게 아니라 갑자기 절벽처럼 연구비가 끊긴다면 연구실을 운영할 수 없다. 출연연에 있는 분들은 IMF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고 말한다. 그때도 힘들었지만 미래를 대비해 삭감은 안 했다. 지금은 그런 상황도 아닌데 갑작스레 삭감되고 그것도 ‘카르텔’이라는 불투명한 이유를 대고 있다. 부정하게 썼다면 그 부분을 드러내거나 관리를 잘하면 되는데 이상하게 접근하고 있다. 연구는 원래 모르는 문제를 파악하고 답을 찾는 과정이라 실패가 많다. 100번 하면 한번 성공한다. 우리가 따라가는 게 아니라 남들이 하지 않은 걸 하려면 실패할 확률이 높을 수밖에 없다. 그런 상황에서 성과가 없다고 하는 건 어폐가 있다. 안정적인 분위기여야 실패를 감안하고 연구하는데 이렇게 되면 도전적인 연구를 하지 못하고, 너무나 당연한 연구만 하게 된다. 그게 과연 국가 연구 역량에 좋을 것일까.”
과학계는 정책 수립과정의 합리성·투명성이 부족하다며 반발했다. 변화를꿈꾸는과학기술인네트워크(ESC)는 지난 9월 26일 발표한 대정부 질의서에서 “8개월 동안 수렴된 예산안이 한 달 반 만에 급작스럽게 대폭 수정됐는데 그 근거와 이유를 밝혀주시기 바란다”면서 “정부가 주장하는 R&D 카르텔의 실체는 무엇인지, 정부에서 파악하고 있는 카르텔 자료를 공개하고, 그것이 이번 R&D 예산 대폭 축소를 해야 하는 근거가 되는지 밝혀주시기 바란다”고 밝혔다. 국가 연구개발 계획·사업에 대한 조정, 연구개발 예산의 운영 등을 심의하는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한 관계자도 “솔직담백하게 세수가 부족하니 고통 분담 차원에서 연구비를 줄여야 한다고 말했다면 문제가 되지 않았을 텐데 정말 나쁜 방향으로, 황당할 정도로 예산을 깎았다. 나뿐만 아니라 관련된 사람들도 전혀 예상을 못 했다”고 말했다.
두 달이 안 되는 사이 예산안이 증액에서 감액으로 바뀐 변곡점은 국가재정전략회의이다. 과기부 측은 “재정전략회의는 정부의 예산 편성방향을 결정하는 최고 의사결정기구라 당연히 그 결과를 반영할 수밖에 없다”면서 “기초과학 분야에서 전체 연구자에게 고루 기회를 주는 보편성 트랙에서 크게 삭감되긴 했지만 전략기술분야를 비롯해 증액된 사업도 많다”고 밝혔다. 지난해 11월 말 대통령과 과학계 원로와의 오찬에서 나눠먹기식 배정에 대한 원로의 지적을 받은 이후 대통령의 생각이 그 방향으로 굳어졌다는 해석도 있다. 국회 관계자는 “설사 원로들이 주문했다고 해도 몇 사람의 말을 듣고 수십조원짜리 예산안을 하루아침에 뒤집는 건 말이 안 된다. 수립과정에서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등 전문가 의견을 수렴할 제도적 장치가 정착돼 있다. 왜 멀쩡한 본선을 두고 비선의 말을 듣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강제적인 글로벌 연구로 기술 유출 우려
정부는 소규모 연구지원사업의 성과가 없다고 하지만, 기초과학을 연구하는 이들의 생각은 다르다. 연구비 투입 대비 가장 효율적인 사업이 기초연구사업이라는 것이다. 실제 2021년 국가연구개발사업 성과분석보고서를 보면 정부 R&D 비용의 8.2%를 차지하는 기초연구사업이 정부 R&D 논문 성과 논문 수의 43.7%, 정부 특허출원 성과의 15.4%, 기술료 징수액의 19.3%에 기여했다.
한국 기초과학의 국제적 위상도 지난 10년간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일본 문부과학성이 지난 8월 발표한 ‘과학기술지표’에서 한국은 피인용 상위 10% 논문 수가 4100편으로 전년도 조사보다 한 계단 상승한 10위를 기록했다. 반면 일본은 13위로 한 계단 떨어졌다. 지난해 수학계의 노벨상인 필즈상 수상자도 나왔다.
기초과학 분야 연구자들은 정부가 국제협력사업(글로벌)을 주요기초연구 사업에 획일적으로 추진하는 것도 문제라고 본다. 이미 높은 수준의 연구는 국제 공동연구로 진행되는 상황에서 이들 연구비 지원은 줄이면서 새롭게 ‘글로벌’을 붙여 예산을 늘리는 게 앞뒤가 맞지 않다는 주장이다. 가령 정부가 우수연구 집단을 선정해 연구비를 지원하는 선도연구센터의 경우 모두 글로벌 사업을 하도록 강제됐다. 사업 목적에 맞지 않은 분야에까지 획일적으로 글로벌 사업을 강요하는 건 오히려 R&D 예산 낭비라는 지적이다. 가령 지역혁신 분야(RLRC) 경우 지역 사회의 문제 해결을 위한 연구인데 글로벌 협력으로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 의문이고, 국가 안보와 관련된 핵심기술을 연구하는 혁신연구센터(IRC)에서도 글로벌을 강제하면 지적자산의 유출이 우려된다는 것이다.
기초연구연합회 이사인 오경수 중앙대 약학대학 교수는 이를 강제화된 글로벌이라고 비판했다. “선도연구센터는 중요한 과학적 난제가 있을 때는 이를 해결하기 위한 집단연구를 맡는다. 굉장히 연구를 잘하는 사람들의 모임이기도 하지만, 국제적으로도 굉장히 역량이 있고 국제 공동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 상태다. 기초의과학 분야(MRC)나 이학 분야(SRC) 같은 경우에는 신약 개발이나 아주 민감한 최신 정보를 바탕으로 제품과 초고난이도의 기술을 축적하는 사업이다. 물론 국제공동연구도 하지만 우리만의 기술이기 때문에 이걸 굳이 공개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이번에 집단연구를 일괄적으로 25% 삭감한 후 거기에 글로벌 집단연구라는 걸 모두 넣었다. 융합 분야(CRC)는 다양한 사회 문제와 국민 요구를 받아 세계적 수준의 신지식을 창출하는 게 목표다. 그러니까 우리 사회의 문제이고 우리 국민이 요구하는 문제를 풀라는 것 아닌가. 그런데 거기에 글로벌을 붙였다. 해외에 나가서 ‘우리 문제를 좀 해결해 주세요. 아이디어 있습니까’라고 얘기하라는 거다. 이미 하고 있는 건 필요에 의해 하는 거지 억지로 하는 게 아닌데 앞으론 무조건 해야 한다. 그리고 그에 따라 평가한다는 건 완전 허구다. 이미 국내에서 나오는 논문 10개 중 3개가 해외 사람들하고 같이 내는 거다. 우리 같은 나라가 없다. 잘하고 있는 걸 예산을 깎으면서 강제하는 형국이다.”
글로벌 협업 사업에 대한 비판에 과기부는 “국제협력이 활발한 선도연구센터 등 기초연구도 글로벌 R&D로 포함했으며, 글로벌 협력 활동을 보다 장려하기 위해 평가체계와 관리방식 등을 보완하려는 것”이라면서 “글로벌 R&D로 발생하는 연구성과 관리, 보안 문제 등에 대해서는 관련 제도를 준비 중”이라고 답했다.
과학계는 예산안이 국회로 넘어간 이후 여야를 만나면서 예산안 감축의 여파를 줄이려고 하고 있다. 국회 논의 과정에서 일부 증액 가능성도 예상되지만 큰 변화는 기대하기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이준영 대학원생노동조합 수석부지부장은 “현재 약 8만명의 대학원생이 국가연구개발사업에 참여해 학생인건비를 수령하거나 연구 장비구입비, 연구 재료비, 간접비를 지급받고 있다. 정부 R&D 예산 삭감은 대학원생의 경제적 환경을 비롯한 연구 환경 전반에 악영향을 미친다. 대학원생은 국가연구개발사업을 통해 수행한 연구를 바탕으로 학위 논문을 작성하거나 졸업에 필요한 자격 요건을 채우는데 이번 예산 삭감으로 연구를 수행하지 못하거나, 연구를 급하게 마무리하고 임팩트팩터나 인용지수가 낮은 학술지에 제출하여 졸업하라고 강요받는 사례도 있다”고 말했다. 학문후속세대가 연구를 포기하지 않고, 또 연구자로서 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줄어들지 않도록 우리 사회가 대책을 마련해야 할 시점이다.
주영재 기자 j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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