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나···“빈곤 대물림은 사회적 살인”[책과 삶]
고통을 딛고 성장한 이들에게
흙수저·비행 청소년·개천의 용은
가난한 아이들을 규정하는 말뿐
·
‘어떻게 살아 성장했나’엔 무관심
25년 경력 교사가 이들의 곁에서
10년간 만나 담아낸 생생한 사연
“학교 안에 복지 인력이 들어와야”
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
강지나 지음|돌베개|280쪽|1만7500원
우리는 ‘가난한 아이들’과 ‘가난한 어른들’은 알지만 가난한 아이들이 ‘어떻게’ 어른이 되어가는지는 모른다. ‘어떻게’를 모른다는 것은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빈곤의 세습’ ‘흙수저’ 같은 표현이 흔하게 쓰이지만 현상을 가리키기 위한 수사에 그칠 뿐, 그들의 삶을 깊숙이 들여다보려는 노력을 기울이지는 않는다. 입시와 경쟁 위주의 교육이 이뤄지는 학교에서도 가난한 아이들은 주된 관심사가 아니다.
이들이 관심을 받을 때는 두 가지 경우뿐이다. 비극적이거나 폭력적이거나. 빈곤 때문에 목숨을 잃거나 학대를 당하거나, ‘문제아’ ‘비행 청소년’으로 낙인찍혀 범죄를 저질렀을 때다. 빈곤 포르노적 접근, 혹은 청소년들의 일탈과 폭력에 대한 선정적 접근을 넘어 이들이 어떻게 삶과 사회로 복귀할 수 있을지에 대한 장기적 관심은 부족하다. <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는 우리 사회에 부재한 ‘어떻게’의 공백을 채우기 위한 10년간 노력의 기록이다. “제목이 곧 메시지다. 더 나은 공동체를 위해 던져야 할 단 하나의 물음”(은유)이다.
25년 경력의 교사인 강지나는 교실에서 가난한 아이들을 만나 돕고 싶었지만, 학교 지원 체계와 관심의 부족으로 한계에 부딪혔다. 직접 답을 찾고자 대학원에 진학해 학교사회복지를 전공했다. 강지나는 아이들이 열예닐곱 살 때부터 20대 초반이 되고, 20대 후반과 30대가 되는 성장의 길목에서 이들을 만났다. 빈곤가정에서 자란 8명의 아이들을 10년 동안 만나며 ‘어떻게’ 어른이 되어가는지를 지켜봤다. 강지나를 9일 전화로 인터뷰했다.
“교사가 되면 아이들에게 많은 권한도 있고 도움을 줄 수 있을 줄 알았어요. 그런데 교사가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더라고요. 가정에 개입하기도 어렵고, 학교라는 조직이 교사에게 그런 걸 원하지 않았어요. 아이들을 얌전히 교실에 데리고 있고, 성적이 잘 나오도록 관리하는 것을 바랐죠.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을 위해 뭘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학교사회복지 제도에 대해 알게 됐고, 공부를 하게 됐어요.”
박사논문을 토대로 쓰인 책은 빈곤 청소년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담은 소중한 르포이자, 학자로서 사회 비판과 정책적 제안을 담은 날카로운 보고서다. 한 아이가 결핍과 한계 속에서 어떻게 한 사람의 자리를 찾아가는지를 보여주는 성장담인 동시에 이들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지켜보고 귀 기울이는 어른(혹은 사회)의 존재가 왜 필요한지를 보여준다. “성장하고 싶은 어린 생명이 가난이란 굴레와 가족으로 인해 어떤 영향을 받고 굴절되고 다시 일어나는지 그들의 목소리로 기록하고 싶었다. 그 안에는 세상에서 흔히 통용되는 가난에 대한 인식이나 이미지와 다른, 삶에 대한 통찰과 지혜가 있었다. 그 통찰과 지혜를 학문적으로 담아내고 싶었다”는 저자의 의도는 성공했다.
“빈곤은 경제적 문제가 아니라 역량의 박탈”
책에 담긴 청(소)년 8명의 이야기는 ‘가난한 아이’에게 부여되는, 가난을 극복하고 자수성가하거나 가난 때문에 고통받는 불쌍한 아이라는 이분법적이고 얄팍한 서사를 해체한다. 절대적 빈곤이라는 점은 동일했지만, 이들이 처한 상황과 고민, 사회적 자원을 이용하는 방법과 대응 방식은 저마다 달랐다.
조부모부터 대를 이어 내려오는 우울증과 중독으로 대학에 진학하고 직장을 구한 뒤에도 심리적 고통을 겪는 소희는 가난이 이들에게 진짜로 앗아가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소희의 가족들은 우울증, 폭력, 알코올·도박 중독 등 문제행동을 보였고,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한 합리적 판단과 장기적 계획을 세우고 실천하는 일을 어렵게 했다.
“빈곤은 단순히 재화의 부족이 아니라 자유로이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려는 역량의 박탈이다.”
저자는 경제학자 아마티아 센의 말을 빌려 빈곤에 대한 관점의 변화를 촉구한다. 대를 이어 내려오는 장기적 빈곤가정의 아이들은 건강한 관계 형성과 욕구 발현의 기회가 좌절되고 박탈되면서 문제행동을 보이기 쉽다. 빈곤 대물림은 박탈의 경험이 대를 이어 축적되고 불평등한 사회구조로 고착되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소희는 대학에 진학해서도 과거 가출과 비행을 저지르던 자신의 모습을 용서하지 못하고 스스로 소외감을 느낀다.
여성 청소년에겐 성적대상화 문제 더해져
학교로 돌아와도 ‘이중 낙인’
중학교를 중퇴하고 가출해 오랫동안 방황하는 혜주의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혜주는 어머니가 집을 나가고, 아버지도 돈을 벌러 타지로 가면서 조부모와 함께 살게 됐다. 할아버지는 걸핏하면 폭력을 휘둘렀다. 어릴 때부터 자신의 모습을 인정하고 사랑해주는 존재를 갖지 못해 자아존중감이 낮은 혜주는 또래 아이들에게 휩쓸렸으며, 의존적이고 착취적 관계에서 오랫동안 벗어나지 못했다. 피부관리사, 애견미용사가 되고자 노력하지만 집안의 지원 부족과 외부의 시선을 견디지 못하는 심리적 문제로 안정된 직업을 구하기 어려웠다. 혜주에게는 새로운 도전을 지지해줄 지원 체계가 부재했으며, 학교생활과 졸업에 성공하지 못했다는 사회적 낙인에서 오는 좌절감과 실패감은 혜주의 자아존중감을 더욱 위축시켰다.
혜주에겐 여성 청소년에게 더해지는 외모에 대한 집착, 성적 대상화의 문제가 중첩됐다. 덩치가 크고 살집이 있는 혜주는 진한 화장과 과장된 옷차림으로 외모에 대한 콤플렉스를 극복하고자 했다. “여성이 성적 대상으로 상대에게 호소해야 이롭다는 것은 학교 밖 청소년들에게 중요하게 통용되는 원칙”이며 돈을 벌기 위해 ‘조건만남’ 등에 쉽게 노출된다. 가출한 여자 청소년들이 학교로 돌아가면 혐오의 시선을 받으며 이중의 낙인에 시달린다.
천성이 성실한 영성은 ‘노력한 만큼 보상받는다’는 믿음으로 대학까지 왔지만, 아르바이트를 하며 높은 학점을 받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깨달으며 불안에 시달린다. 영성의 꿈은 ‘화목한 가정’인데 저자는 역설적으로 우리 사회의 강력한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취약한 어린 시절 가족이 해체되면서 겪은 불안과 차별이 이들에게 정상가족을 이루고자 하는 열망을 불러왔다는 것이다. 하지만 가난한 청(소)년들은 가족에 의지하는 동시에 착취당하기도 한다.
특성화고에 진학해 기업에서 일을 배우는 도제학교에 들어간 우빈은 현장실습에서 이뤄지는 착취와 ‘일하는 청소년’에 대한 무시에 회의를 느끼고 아르바이트로 하던 식당일에서 전망을 찾는다. “돈이 없으면 불안하다”는 우빈은 현금을 손에 쥘 수 있는 일을 원했다. 식당일, 배달업같이 당장 돈을 손에 쥘 수 있는 일을 선호하는 것은 이들에게 소위 좋은 일자리에 진입할 수 있는 기초학력이나 가정환경의 뒷받침이 부재한 현실 탓이다.
“빈곤의 대물림은 ‘사회적 살인행위’”
학교와 지역복지 연계해 ‘복지 생태계’ 만들어야
여기까지가 이야기의 끝은 아니다. 이들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성장하며 자신의 자리를 만들어갔다. 지현은 경제적 궁핍 속에서도 그것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필요한 복지와 지원 체계를 찾으며 진로를 개척해나갔다. 빈곤을 자신의 잘못이 아닌 사회구조적 문제라고 인식하면서 높은 자아존중감 속에 자신의 관심 분야를 알아가며 사회에 진출하고자 했다.
저자는 불평등이 고착화된 사회구조, 학력 위주의 교육 제도, 실종된 청소년 정책, 붕괴된 지역사회 공동체, 부실한 교정 정책 등을 강도 높게 비판한다.
“빈곤 대물림의 불평등한 과정 안에서 청소년이 성장한다는 것은 우리 미래 세대를 고갈시키고 피폐하게 만드는 것과 같다. 정체감을 형성하고 진로 전망을 꿈꿔야 하는 청소년들에게 대를 이어 빈곤을 경험하게 하는 일은 사회적 살인 행위인 셈이다.”
저자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일이 무엇인지 물었다. 그는 “학교에 복지 인력이 들어와 아이들을 지역사회와 함께 돌보는 복지생태계가 형성되어야 한다. 학교사회복지를 법제화해서 지역복지관·아동센터와 연결해 아이들을 생애사적으로 지원할 수 있어야 한다”며 “학교와 교육 당국이 가장 소극적이다”라고 말했다.
“이야기를 들어주고 지지해주는 단 한 사람만 있으면 아이들은 제자리로 돌아옵니다.” 저자는 10년 동안 아이들의 목소리를 들었다. 이제 학교와 사회가 귀 기울일 차례다.
이영경 기자 samemind@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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