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보다 먼저…차보다 빨리 소소한 즐거움, 쏠쏠한 혜택이 도시에선 ‘자전거가 왕’이다[다른 삶]
8월과 9월, 둘째 아이가 태어나며 육아휴직을 신청했다. 이 시기는 베를린의 여름 날씨가 절정으로 치닫던 때였다. 화창한 날씨, 하루가 다르게 짧아지는 여름의 태양이 너무나도 아쉬웠다. 이렇게 좋은 날씨에도, 아이와 함께하는 이동은 쉽지 않았다. 첫째 아이의 유치원은 걸어가기는 멀고, 차로 가기에는 애매한 거리였다. 주차 문제도 피할 수 없었다. 따라서 우리에게 최적의 교통수단은 자전거였다.
여름이면 베를린에는 자전거 인구가 눈에 띄게 늘어난다. 그중 오전 이른 시간에 아이를 유치원에 데려다주는 자전거 행렬이 인상적이다. 아이가 때론 보호자 앞에 타기도 하고, 때론 보호자 뒤에 타기도 하는 풍경. 바구니처럼 생긴 어린이 탑승용 자전거, 말만 자전거이지 삼륜차와 다를 바 없는 덩치 큰 자전거도 함께한다.
나는 성장하면서 자전거로 아이를 통학시켜주는 광경을 본 적이 없었다. 어릴 때부터 스스로 자전거를 즐겨 타고 관리하는 걸 즐겼지만 학교를 오가는 통학수단으로 이용하지는 못했다. 아이들은 아파트 단지에 일렬로 주차된 노란 버스로 오가는 풍경이 익숙해 자전거는 주말이나 방과 후의 레저수단쯤으로 치부했다.
베를린의 천차만별 자전거 인구를 보며 ‘나도 우리 아이와 저렇게 탈 수 있지 않을까’하는 원인 모를 도전 의식이 생겼고 행동에 옮기기로 했다. 자전거가 필요했다. 그것도 그냥 자전거가 아닌, 아이를 태우기 피해 필요한 장비들이 한가득 장착된 자전거가 말이다.
육아휴직 중 처음 타게 된 자전거
유치원으로 향하는 행렬 인상적
도심 곳곳 우선도로 지정하고
지하철에는 별도의 전용칸 마련
대중교통보다 빠르게 이동하고
건강까지 챙길 수 있어 일석이조
만일의 사고 대비 ‘조심조심’
아이와 함께 두 바퀴로 달린다
그러나 인터넷에서 중고거래되는 자전거들을 보고 있으니 단단하던 기세가 꺾였다. 아이와 함께 화창한 날씨를 즐기는 것도 중요했지만 예상에 없는 큰 지출은 또 부담거리였다. 그러다 머리에 번뜩, 이웃이 몇 달째 방치하고 있는 고장 난 자전거가 떠올랐다.
이웃의 다정한 배려로 본체는 섭외됐다. 자잘한 수리가 필요했지만 그조차도 기쁜 마음으로 임했다. 마침내 자전거가 굴러가기 시작했다. 그다음은 아이를 태울 어린이용 시트가 필요했다. 다시 중고거래 사이트를 뒤지고 여기저기 알아본 결과 그냥 새것을 구입하기로 했다. 아이에게는 새것으로 태워주고 싶은 아빠의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몇십년 만에 나에게 자전거가 다시 생겼다. 전적으로 필요에 의한 기능을 장착한 자전거가 말이다. 헬멧을 씌우고 아이를 처음 태우던 그날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까르르까르르 웃음 짓던 아이의 목소리가 너무 기분 좋게 들렸다.
열심히 페달을 밟아 아이를 등원시키던 몇 주의 시간이 지나 다시 복직하게 됐다. 아빠의 육아휴직이 끝나고, 아이의 등원을 엄마가 담당하며 당연히 자전거는 다시 사용할 일이 줄어들었다. 자전거는 밖에서 애꿎은 비를 맞으며 녹슬어가고 있었다. 그러다 아이 셋을 키운 직장 동료가 60대에도 편도 14㎞를 자전거로 출퇴근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강한 자극을 받았다.
이번에도 ‘나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으나, 아쉽게도 집부터 사무실까지의 거리는 자전거로 완주하기엔 너무 멀었다. 출근하자마자 퇴근해야 할 지경이었다. 자전거가 다니기 좋은 길을, 어느 구간을 몇 ㎞정도 타면 좋을지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으로 찾아봤다.
그다음 한 일은 추가 운임 비용 결제다.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다른 이들처럼 자전거를 지하철에 실어야 할 일이 생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독일의 모든 지하철에는 자전거, 휠체어, 유아차 등을 위한 별도의 칸이 마련돼 있다. 베를린의 경우 지역 내 모든 대중교통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월 정액권이 있는데 여기에 약간의 추가 운임비를 내면 자전거도 운반할 수 있다. 2023년 기준, 한 달 동안 자전거 탑승에 대한 추가 운임은 12유로다.
자, 이제 자전거를 타면 된다. 아이를 태우지 않아 유난히 덜그럭거리는 아이용 카시트를 착용한 채 페달을 밟았다. 붐비지 않는 자전거도로는 날씨가 좀 궂어도 좋았다. 처음에는 몸풀기로, 두 정거장 정도만 타기로 마음먹었다.
사무실이 위치한 하케셔 마르크트 역은 언제나 사람으로 붐비기도 하지만, 지하철역의 구조가 복잡하다. 또 다른 지하철역인 오라니엔부르거 슈트라세 역은 사무실과 너무 가까워 지하철을 타는 의미가 없었다. 몇 구간 떨어져 있는 브란덴부르크 역에 내리기로 했다.
브란덴부르크 역은 베를린의 대표적인 여행지다. 항상 여행객들로 붐비지만, 행여 복잡하지 않을까 염려했던 것과 달리 이곳의 자전거도로 시스템은 완벽했다. 심지어 ‘자전거우선도로’가 생각보다 많이 지정돼 있어 편했다.
바닥에 큰 글씨로 표시된 자전거우선도로는 건물과 건물 사이의 일반 도로다. 일반 차들과 교차 사용하지만 자전거를 위한 차선이 따로 그려져 있고 이 도로에서 우선순위는 항상 자전거에 있다. 다만 평일 출퇴근 시간에는 자전거 통행량이 많아서 자동차 운전만큼 신경을 써야 한다.
사실 자전거우선도로뿐만 아니라 도심 어느 곳에서도 ‘차량우선도로’는 없다. 일반 도로도 자전거와 이륜차가 함께 운행하기 때문이다. 기능상으로는 도심 내 고속도로가 유일한 자동차 전용도로다. 신호등이 없는 보행자 전용 도로나 일반 차도에서도 사람이 제일 먼저, 자전거가 다음, 그리고 자동차가 제일 나중이다.
이는 외부 충격의 강도를 생각해봤을 때 당연한 순서다. 종종 베를린을 방문하는 이들은 교통법규를 완벽하게 지키는 시민들의 모습에 충격을 받곤 한다. 법이 엄격한 이유도 있지만 어릴 때부터 교육받고 그에 따라 행동하는 시민들 모습을 반복적으로 봐온 결과도 한몫한다.
이곳 학교에서는 초등학교 때부터 자전거와 관련된 교통법 및 숙련에 대해 교육한다. 마치 운전면허 모의시험장 같은 자전거도로를 달리며 수신호 등을 익히고, 사고나 응급 상황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에 대해 배운다고 한다. 자전거 인구가 많고 자전거가 일상 교통수단으로 깊숙이 들어와 있는 만큼 공공차원에서 교육으로 풀어가야 할 부분도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자전거를 위한 도로체계, 시 차원에서 제공되는 주차장 등 관련 인프라 외에도 자전거를 애용하는 이유는 또 있다. 비가 많이 오거나 추운 궂은 날씨에도 사람들이 비옷과 방한복을 챙겨입고 자전거를 이용해 출퇴근과 통학을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시간 단축에 있다. 같은 거리를 대중교통이나 자가용으로 이동했을 때보다 자전거를 이용하는 것이 더 빠르다. 다른 교통수단을 타기 위해 번거롭게 오르락내리락하지 않아도 된다는 장점도 크다. 여기에 일상생활에서 건강까지 챙길 수 있으니 금상첨화가 아닐까.
그러나 이곳 역시 한계는 있다. 자전거 이용과 관련해 법규로 이루어진 내용보다 권고 사항이 많다. 이 때문에 자전거도로에서 위험한 상황을 심심치 않게 보게 된다. 자전거끼리의 추돌, 자동차와의 충돌, 보행자와의 접촉사고, 트램의 트랙에 자전거 바퀴가 끼는 안전사고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그래서일까. 자전거 시트에 아이를 태우고 이동할 때면 나 역시 평소보다 더 긴장하고 조심하게 된다.
주말이면 오히려 내가 아이에게 자전거를 타러 나가자고 권한다. 집 근처 마트에 갈 일을 일부러 만들기도 한다. 둘이 헬멧을 쓰고 마트에 가서 필요한 것을 사고, 군것질거리를 고르는 것도 우리들 교육의 일부다. 내가 자전거에 대한 좋은 기억이 있듯 이렇게 작은 순간들이 모여 우리 아이도 건강하고 안전하게 자전거 타기를 즐길 수 있기를 바란다. 그게 언제, 어느 장소가 되더라도 말이다.
▲신혜광·이은혜
건축설계사무실에 다니는 닭띠 아빠와 그림을 그리는 돼지띠 엄마, 돼지띠 첫째 아이와 최근 태어난 토끼띠 막내까지 베를린에 거주 중인 4인 가족이다. 단독주택에 사는 것, 자동차로 베를린에서 나폴리까지 여행하는 것이 꿈이다. <스페인, 버틸 수밖에 없었다>와 <어느 멋진 일주일, 안달루시아>를 쓰고 그렸다.
신혜광·이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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