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춘추] 색깔론
주초에 내린 비가 야속하다. 하늘이 아니라 땅이 울긋불긋해졌다. 눈이 즐거운 계절이 지나고 있다. 내 짧은 형용사로는 지난 몇 주간 관악산이 보여준 색깔의 향연을 온전히 묘사하기 어려웠다. '아 좋다' 정도의 뭉툭한 감탄사만 입에 달고 살았다.
스치듯 지나가는 계절의 색깔에도 쉽게 눈을 사로잡히는 우리는, 막상 나와 다른 색깔의 사람을 만나면 차라리 눈을 감는다. 다름은 불편하다. 나도 그저 하나의 색깔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부터 어렵다. 살구색이 아닌 색이 살색일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조차 하지 못하던 시절의 우리는 무지했고, 그만큼 배타적이었다. 다양한 색깔의 살색을 떠올릴 수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세계를 만날 수 있다. 다양성을 수용하면 세계관이 확장된다.
기업 조직에서 다양성의 가치는 창조와 혁신의 역량으로 드러난다. 다양한 배경과 조건의 사람들이 서로 다른 경험, 문화, 가치관, 행동양식을 공유하면 시너지를 창출할 수 있다. 경영학 문헌에 따르면 실제로 기업의 다양성 지표들은 재무적 성과는 물론 특허출원 및 인용건수 등 혁신 지표들과 높은 상관관계를 보인다. 창조와 혁신의 결과물은 궁극적으로 기업과 사회가 공유한다.
그러나 다양성의 가치가 저절로 확보되는 것은 아니다. 다양한 목소리가 발화될 수 있고, 발화된 목소리가 빠짐없이 청취되며, 청취된 목소리로부터 기업의 핵심 가치를 합리적으로 정제해 가는 역량이 창조와 혁신의 전제이다. 그러나 이 제반의 과정은 사뭇 불편하다. 남이 나와 다른 색깔인 것을 끊임없이 인지하고 수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배타적인 색깔론은 극복의 대상이다.
우리가 기업 이사회에 성별 다양성을 요구하는 규제를 도입한 것은 조직 내 다양성의 가치가 기업가치를 제고할 뿐 아니라 궁극적으로 사회적 가치를 창출한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공적 기제를 갖춘다고 해도, 다양성을 존중하는 포용적 문화를 조직의 핵심 가치로 추구하지 않는 한 그 효과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실제로 이사회 성별 다양성에 대한 규제를 도입한 여러 나라에서 규제의 효과가 엇갈리고 있다. 여성 직원들의 채용과 승진 기회가 원천적으로 제한된 조직에서, 외부에서 영입된 여성 사외이사 한두 명이 다양성의 가치를 충분히 대변하는 것을 기대하기 어렵다. 규제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올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하버드대의 클로디아 골딘 교수는 여성들의 경제활동 참여를 지원할 수 있는 사회 시스템의 당위성을 역설했다. 다양성을 수용하기 위해서는 온 사회의 품이 든다.
다른 색깔을 배제하고 소외시키는 해묵은 색깔론으로는 다양성을 수용할 수 없다. 다채로움을 동경해야 한다. 매력적인 음색의 가수 스텔라장의 'Colors'라는 노래는 포용적인 색깔론의 정수를 보여준다. '당신의 색깔은 무엇인가요' '당신이 원하는 어떤 색깔이든 되어드릴 수 있어요'라는 가사가 반복된다. 당신의 색깔이 무엇이든 당신은 당신이기 때문에 사랑받을 수 있다. 하나의 색만 강요하는 조직과 사회는 야만적이고, 야만은 문명에 의해 대체되는 것이 운명이다. 다양성은 지속가능 사회의 품성이다.
[이우종 서울대학교 경영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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